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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이라크 파병도 반대했던 인권위...지금 모습은

중앙일보 2017.06.05 02:00

"정권이 바뀌면 조직의 위상도 강화될 것이라 예상은 다들 하고 있었죠. 근데 그 시점이 생각보다 빨라 내부에서도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혼란이 다소 있긴 합니다."(인권위 사무처 직원 A씨)

 
지난달 25일 문재인 대통령의 '인권위 강화 지침'을 조국 민정수석이 발표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의 내부 분위기는 고무됐다. 설립 이후 처음으로 업무보고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정부에선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특별보고도 부활할 예정이다. 두 차례의 보수 정부를 거치며 '잃어버린 8년(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을 경험한 인권위로서는 그만큼 지금의 상황이 반가우면서도 낯설다.
 
그러나 인권위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많다. 여러 인권단체와 전문가들은 국가 차원의 인권보호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현재 인권위가 그 역할을 할 준비가 된 조직인가’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달고 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달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 제고 방안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발표했다. 김성룡 기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달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 제고 방안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발표했다. 김성룡 기자

인권위로서는 '뼈 아픈' 지적들이 이어지고 있다. 인권위는 정부의 '위상 강화' 발표 이후 공식 입장을 통해 "위원회 권고는 권고적 효력이 있을 뿐 구속력이 없다. 국민의 기본권과 밀접하게 관련된 주요 권고를 수용하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새사회연대 신수경 대표는 "인권위 입장에는 '왜 위상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내부 반성보다는 피권고기관에 대한 하소연이 주를 이뤘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인권위원은 "지금 인권위의 가장 큰 문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사무처 직원들의 전문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정권 눈치 보는 데 급급해졌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권위 직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던 상당수의 공무원들이 그동안 많이 그만뒀다. 쫓겨난 거나 다름 없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초대 인권위원장인 고 김창국 변호사. 사진은 그가 2004년 8월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을 때의 모습이다. [중앙포토]

초대 인권위원장인 고 김창국 변호사. 사진은 그가 2004년 8월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을 때의 모습이다. [중앙포토]

 
2001년 고 김대중 대통령 정부에서 출범한 인권위는 초대 인권위원장인 김창국 위원장을 거쳐 최영도·조영황 위원장 등 인권변호사 출신들이 주로 위원장직을 맡아왔다. 
 
인권위원 자리는 시민사회운동가로 활동했던 유시춘 작가, 초대 유엔 인권대사인 박경서 동국대 석좌교수 등 어느 정도 '인권 전문성'이 검증된 인물들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위의 인력과 권한을 축소하는 조치가 진행됐다. 인권운동 경력이 '전무'한 현병철 전 한양사이버대 학장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때부터 용산참사·민간인 사찰 등 민감한 사회 문제에 있어서 인권위의 입장 표명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반발한 위원들의 '줄사퇴'가 이어졌다. 조국 민정수석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들이 빠진 자리는 '인권운동' 경력과는 거리가 멀거나 오히려 논란이 있는 인사들로 채워졌다.
 
위원장 포함 총 11명인 인원위원 자리는 대통령 지명 4명(위원장 포함), 국회 지명 4명, 대법원장 지명 3명으로 구성된다. 2014년엔 새누리당 지명으로 당 당협위원장이던 유영하 변호사(현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가 인권위원이 됐다. 오는 11월까지가 임기인 인권위원 최이우 목사(박 전 대통령 지명)는 '성소수자 반대 운동을 한 전력이 있다'는 지적에도 임명이 강행됐다.
 
박래군 인권중심사람 소장은 "인권위원 선임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상황이라 결국 정부와 여·야의 '제 사람 앉히기'식이 되풀이 되고 전문성과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2012년 8월 '자질 논란'에도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됐던 현병철 전 위원장과 2014년 여당 지명으로 인권위원 활동을 한 유영하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 [중앙포토]

2012년 8월 '자질 논란'에도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됐던 현병철 전 위원장과 2014년 여당 지명으로 인권위원 활동을 한 유영하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 [중앙포토]

 
인권위원에 법조인의 비중이 높아지는 점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신 대표는 "인권위는 현행 법이 미처 다루지 못한 인권 문제를 반 발자국이라도 앞서 나가야 하는 기관인데 위원들이 법조인들로 채워지다보면 실정법 테두리 안에 갇혀 소극적인 결정 혹은 뒷북 결정을 내릴 때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권위는 2014년 육군 제28사단에서 발생한 '윤 일병 사건'과 관련해 사고 발생 엿새 만에 성명 발표를 해 '뒷북 성명' 논란을 낳았고 세월호 사고 때는 사고 120일 이후에야 입장을 내놨다. 지난해 4월 '테러방지법 시행령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의결한 것도 국회에서 테러방지법이 통과하고 한 달 이상 지났을 때였다.
 
현직 인권위원들 역시 이성호 위원장을 포함해 11명 중 8명이 법조인 출신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위가 준사법기관의 성격을 가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인권위원 자리에) 법조인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권위의 위상과 신뢰에 논란이 계속되면서 권고 효력은 갈수록 약화됐다. 지난해 12월 인권위가 발간한 '2015 인권통계'를 보면 2013년~2015년 인권정책 권고 수용률(일부 수용 제외)은 36.3%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54.6%에서 크게 낮아졌다.
 
전문가들은 인권위원 임명 절차나 전원위원회 회의 과정의 투명성 확보 및 개선 등을 강조했다. 전 인권위원 출신의 한 인사는 "인권위의 결정은 위원 한 명, 한 명의 의견이 다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 전원위원회의 시민 방청을 허용하고 각 위원들의 의견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장을 잘 아는 인권·시민단체와의 소통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명숙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집행위원은 "인권위 위상 강화에 앞서 그동안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인권위 차원의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내부 쇄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힘만 주어진다면 결국 인권위는 또 정권의 알리바이 기구로 전락할 것이다"고 말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위 안에서도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아무래도 내부의 문제이다보니 입장을 표명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다"고 말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절인 2003년 인권위는 정부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당시 국회에서 '항명 행위'라는 비난까지 나왔던 인권위의 이같은 행보는 정권이 바뀐 뒤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때 정부 방침에 반대한 인권위를 두고 노 대통령이 한 말은 현재의 인권위가 다시금 새겨 들을만 하다. "인권위는 그러라고 존재하는 겁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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