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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장교 부친 말실수에 꽃제비로…체험담 출간한 탈북자 이성주씨

중앙일보 2017.06.04 13:34
최근 강남역에서 본지 기자와 만난 탈북자 이성주씨가 힘차게 뛰어오르고 있다. 그는 꽃제비, 탈북 경험을 담은『에브리 폴링 스타』의 한국어 번역본 『거리 소년의 신발』을 최근 냈다. 김춘식 기자

최근 강남역에서 본지 기자와 만난 탈북자 이성주씨가 힘차게 뛰어오르고 있다. 그는 꽃제비, 탈북 경험을 담은『에브리 폴링 스타』의 한국어 번역본 『거리 소년의 신발』을 최근 냈다. 김춘식 기자

 
'우리는 걸어서 도시를 빠져나왔다. 등 뒤로 노을이 내려왔고, 길은 점점 함경북도 어랑군의 구불구불한 진흙길로 변해갔다.'

미 학부모협회 권장도서『에브리 폴링 스타』
한국어 번역본 『거리 소년의 신발』 1일 출간
조지프 나이 같은 국제정치학자 꿈꿔
"내년 국제관계학 박사 계획"

 
탈북자 이성주(30)씨가 쓴 『거리 소년의 신발』(씨드북)의 일부 내용이다. 지난 1일 출간된 이 책은 그가 미국에서 낸 영문서 『에브리 폴링 스타』(Every Falling Star)의 한국어 번역본이다. 지난해 말 미국의 학부모협회가 선정한 '권장도서상'(비소설분야 은상)을 받아 현지에서 화제가 됐다.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어릴 적 믿음을 떠올려 '별똥별'을 영문서 제목(에브리 폴링 스타)으로 붙였고, 닳고 낡은 신발로 꽃제비(거리를 떠도는 북한 노숙 아동) 생활을 하던 기억을 떠올려 한국어 번역본 제목(거리 소년의 신발)을 지었다.
 
이 책에는 북한 고위 집안에서 태어난 이씨가 어린 나이에 가족과 뿔뿔이 흩어지며 산전수전을 겪은 경험이 담겨 있다. 꽃제비로 4년 간 생활한 그는 '일인칭 시점'으로 책을 썼다. 현장감과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서다. "한국어 책 번역은 직접 참여했어요. '친구'를 '동무'로, '여행허가증'을 '여행증명서'로 바꾸는 등 북한식 언어를 최대한 살렸지요."
 
<span style="""""""""""""""letter-spacing:"""""""""""""" -0.245px;"="""""""""""""""""""""""""""">최근 강남역에서 만난 탈북자 이성주씨가 해맑게 웃고 있다. 김춘식 기자</span>

최근 강남역에서 만난 탈북자 이성주씨가 해맑게 웃고 있다. 김춘식 기자

 
4년 간의 꽃제비 생활, 그리고 목숨을 건 탈북의 시작점은 북한 고위 장교였던 아버지의 '말실수'였다. 술자리에서 "조선민주주의공화국(북한)엔 희망이 없다"고 토로한 사실이 당국에 적발된 것이다. 평양에 머물던 세 식구는 졸지에 경성으로 쫓겨났다. 이씨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두 부모는 "식량을 얻어 오겠다"고 이씨를 떠났고, 11세의 나이로 홀로 남겨진 그는 꽃제비 생활을 시작했다.
 
"경성을 떠나 또래 꽃제비 6명과 함경도 일대를 돌아다녔어요. 다른 꽃제비 무리와 싸우거나, 농장에서 식량을 훔치다 걸린 친구가 맞아 죽기도 했죠." 4년간 동거동락 한 꽃제비들을 이씨는 '피 안 섞인 가족'이라고 칭했다.
 
이씨가 '진짜 핏줄'을 만난 건 15세 때다. "꽃제비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경성역에서 우연히 만난 한 노인이 '외할아버지'라며 신분을 밝히더군요. 전 그 말을 안 믿었고, 꽃제비 친구들과 함께 그의 집을 털고자 그를 따라갔죠. 그런데 노인이 집에서 보여준 가족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진짜 제 할아버지였던 거죠. '손자를 만날 것'이란 막연한 바람에 매주 일요일 경성역에 나와있던 겁니다."
 
한국에 정착해 살던 아버지의 주선으로 2002년 탈북한 이씨는 또래에 비해 3년 늦게 '정상 학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09학번'으로 진학한 서강대 정외과를 3년반만에 조기 졸업했고, 전액 장학금으로 영국 워릭대에 석사 유학도 다녀왔다. 이씨는 "캐나다 작가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에브리 폴링 스타』를 쓴 건 영국 유학 이전에 캐나다 하원 인턴 경험 덕분"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출간된 이성주씨의 『거리 소년의 신발』 표지.

지난 1일 출간된 이성주씨의 『거리 소년의 신발』 표지.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312쪽에 달하는 자신의 한국어 책에 담은 이씨는 내년 미국 유학을 떠날 계획이다. 현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해, 조지프 나이 같은 국제정치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는 '소프트파워'(무력 대신 설득, 문화 교류 등를 내세우는 연성 외교)란 외교학 이론을 설계한 이다. "언젠가 찾아올 통일을 대비해 남북한 사람들의 정서 차이를 줄여나가는 건 중요하다고 봅니다. 북한에 남아 있는 제 어머니도 제 모습을 보고 기특해 하실 거라 생각합니다.(웃음)"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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