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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文의 사드'는 '盧의 파병'과 데자뷔…숨은 코드는 한미동맹

중앙일보 2017.06.04 12:55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과 문재인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 문제.
 

사드 문제와 이라크 파병의 핵심은 '한미동맹'
盧, 지지층 반대에도 불구 이라크 파병 결정
'국내 문제' 들어 '시간 벌기' 요청한 공통점
文, 저서서 "국익 위한 파병…국가경영은 달라"

별개의 사안으로 보이는 두 사건은 14년만에 반복된 데자뷔(Deja-vuㆍ旣視感)다. 배경에 한ㆍ미 동맹에 대한 정부 차원의 핵심 철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①‘사드’와 ‘파병’의 숨은 코드, 한ㆍ미 동맹
 
2003년 3월20일,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그날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은 취임 한 달도 안 된 노 전 대통령에게 개전(開戰)을 통보하며 지지를 요청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사단을 '깜짝 방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사단을 '깜짝 방문'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전쟁은 물론 파병(派兵)에는 더욱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파병을 결정했다.
 
노 전 대통령의 ‘필사’였던 윤태영 전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의 책 『기록』엔 당시의 고민이 담겨 있다.
 
노 전 대통령 국회연설을 앞두고 연설문을 강독(講讀)했다. 참모진 앞에서 그는 “나는 명분과 현실이 어긋날 때 명분을 고수해왔다. 중요한 고비마다 명분을 택했다. 그런 내가 파병을 결정했다”는 대목을 읽은 뒤 한참 창밖을 봤다.
 
그리곤 “나는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안위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나는 달라졌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파병을 결정하자 파병동의안 국회상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파병을 결정하자 파병동의안 국회상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원칙론자인 노 전 대통령이 신념과 다른 결단을 내린 이유는 북핵 위기 속에서 한ㆍ미 동맹에 균열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현실적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은 노 전 대통령의 미국관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네오콘을 중심으로 북폭(北爆)이나 대북공격설까지 제기됐다.
 
노 전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원했지만, 미국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의 국제정세는 지금과 유사하다. 북한은 지금도 미사일을 발사하며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그때마다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선거 내내 사드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피력해온 문 대통령에 대한 시선 역시 14년전 상황과 같다.
 
문 대통령이 사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는 지난달 25일 첫 수석ㆍ보좌관 회의에서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14년전) 이라크 파병은 정무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안인데 상당기간 안보실에서만 논의가 됐고,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이후 비판여론이 생기니 그 다음에 정무쪽에서 논의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새 정부 청와대 공식 회의의 첫 메시지가 14년전 파병 결정 과정에 대한 반성이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이어 “(당시) 일찍 정무가 논의에 참여했으면 결정이 다르게 흘러갔을 수도 있고, 똑같은 결정을 하더라도 조금 더 여론에 대한 설득도 해가면서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고 했다.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에 사용되는 군 장비가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 성주골프장으로 향하고 있다. 경찰 병력 80개 중대가 국도부터 마을회관 주변까지 에워싸고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주민을 차단하며 통로를 확보했다. 성주=프리랜서 공정식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에 사용되는 군 장비가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 성주골프장으로 향하고 있다. 경찰 병력 80개 중대가 국도부터 마을회관 주변까지 에워싸고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주민을 차단하며 통로를 확보했다. 성주=프리랜서 공정식

14년전 파병을 결정하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지층의 강한 반발을 샀다. 문 대통령 역시 현재 자신의 핵심 지지층으로부터 ‘사드 배치 철회’ 요구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첫 회의의 화두로 파병 결정 과정에서의 ‘정무적 판단’과 ‘설득’을 택한 것은 의미가 있다.
 
당시의 파병 결정 과정을 현안인 사드 문제 해결을 위한 벤치마킹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②文과 盧이 꺼내든 ‘국내적 절차’라는 같은 카드
 
실제로 문 대통령은 과거 노 전 대통령이 파병을 앞두고 미국에 했던 것과 거의 동일한 방식의 대응을 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달 30일, 사드 발사대가 추가 반입된 사실이 한민구 국방장관의 보고에서 누락된 데 대한 진상조사를 지시한 대목이다.
 
대통령의 지시는 미국은 물론 중국의 우려를 샀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추가 반입 관련 '진상조사' 지시를 한 다음날인 지난달 31일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을 만나 "지시 조치는 국내적 조치"라고 선을 그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추가 반입 관련 '진상조사' 지시를 한 다음날인 지난달 31일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을 만나 "지시 조치는 국내적 조치"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자 하루 뒤인 31일 문 대통령은 딕 더빈 민주당 상원의원을 만나 “(진상조사) 지시는 전적으로 국내적 조치”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국회 논의 이전에 거쳐야 할 것이 환경 영향 평가인데 시간이 소요 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라면 치러야할 비용이라고 생각한다”며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미국이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2003년.
 
노 전 대통령은 그해 5월 673명의 최소한의 비전투병을 파병하며 한ㆍ미 동맹의 파국을 막았다.
 
그러나 미국은 9월 또다시 추가 전투병 파병을 요청했다. 반대 여론이 들끓자 노 전 대통령은 재차 고민에 빠졌다.
 
그때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이 연루된 ‘SK 비자금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10월10일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 "재신임 국무투표를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당시는 한미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시점이었다. 그는 200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재신임 투표 시점을 12월로 제안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 "재신임 국무투표를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당시는 한미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시점이었다. 그는 200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재신임 투표 시점을 12월로 제안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 대통령은 자신의 책 『운명』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부속실에서 황급히 전화가 왔다. 재신임을 묻는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이었다. 당장 갈테니 대통령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도착할 때까지 막고 있으라고 했다”
 
재신임 투표가 노 전 대통령의 독단적 결정이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결정에 대해 “참모로서 참으로 착잡했다”고 썼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결정은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열흘 앞두고 있었다. 열흘 뒤 정상회담에서는 추가파병의 구체적 규모와 시기 등에 대한 압력이 나올 것이 확실했다.
 
재신임이라는 '폭탄'을 던진 노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틀전인 10월18일 파병을 결정한 뒤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재신임 국민투표라는 국내적 문제가 있으니 파병에 대한 구체적 결정은 미루자”는 입장을 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10월 20일 태국 방콕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조찬 정상회담에서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10월 20일 태국 방콕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조찬 정상회담에서 했다.

 그런데도 부시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에게 ‘미국의 친구이자 나의 친구’라고 했다.
 
회담 직전 '추가 파병을 하겠다'는 대전제가 결정된 상황에서 ‘국내적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납득시킨 결과였다.
 
결국 추가파병은 정상회담 1년여 뒤인 2004년 8월 3000여명 규모로 이뤄졌다. 이미 전쟁의 위협이 어느정도 가라앉은 뒤였다.
 
이라크와 쿠웨이트 지역에서 귀국한 자이툰 다이만 부대 장병들이 동료 장병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 지역에서 귀국한 자이툰 다이만 부대 장병들이 동료 장병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 역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첫 정상회담부터 사드 배치에 대한 압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교롭게 문 대통령도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진상조사를 지시하면서, 환경영향평가와 국회 공론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내적 절차’라는 선결조건 카드다. 
 
문 대통령은 다만 “기존의 결정을 바꾸려거나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결정은 박근혜 정부가 결정한 사드 배치를 뜻한다.
 
이 역시 정상회담 직전 추가파병을 결정했던 노 전 대통령의 판단과 동일하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한미정상회담을 조율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출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한미정상회담을 조율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출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2일 정상회담 일정 조율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환경영향평가를 철저하게 하려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귀국길에 기자들을 만나서는 “(맥매스터 보좌관에게) 사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소상히 설명했고 며칠 사이 일어났던 상황도 오해가 없도록 설명했다”고 전했다.
 
환경영향평가로 사드 배치가 늦어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미국 측의 우려는 없었다. 시간이 걸릴 것으로 설명했고 그걸 충분히 이해한다는 반응이었다”고 했다.
 
결국 국내적 절차의 목적은 파병 시기를 늦췄던 노 전 대통령과 같이 사드 배치와 관련한 ‘시간을 벌자’는 데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③국익을 위한 결정, 결론은 ‘미정’
 
문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에 반대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파병을 결정하는 과정을 지켜본 뒤에는 평가가 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식 날인 5월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사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첫 한미 정상간 통화를 하고 있다. 두 정상은 30여분간 통화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식 날인 5월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사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첫 한미 정상간 통화를 하고 있다. 두 정상은 30여분간 통화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는 『운명』에서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지만 파병을 계기로 북핵문제는 바라는대로 갔다. 미국의 협조를 얻어 6자회담이라는 다자외교 틀을 만들었다”며 “북폭까지 주장했던 네오콘의 강경론을 누그러뜨리면서 위기관리를 해 나갈 수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진보ㆍ개혁진영은 노무현 정부가 잘못한 일 가운데 대표 사례로 파병을 꼽는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라며 “더 큰 국익을 위해 필요하면 파병할 수도 있다. 그것이 국가경영이다”라고도 했다.
 
이라크 주둔 자이툰 부대의 파병기한 만료를 앞두고 임종석 전 의원 등이 자이툰 부대의 철군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당시 브리핑을 했던 임 전 의원은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다.

이라크 주둔 자이툰 부대의 파병기한 만료를 앞두고 임종석 전 의원 등이 자이툰 부대의 철군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당시 브리핑을 했던 임 전 의원은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초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은 중앙일보에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의 고민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며 “노 전 대통령이 지지층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념이라는 것은 정치인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외교적 실리나 실익과 관련해선 야당 정치인일 때와 대통령이 된 뒤의 판단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후보 시절부터 “결론을 내지 않고 국회 비준 등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는 ‘모호성 전략’을 펴고 있다.
 
핵심 참모들은 “모호성 전략의 핵심은 국익의 극대화”라고 말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출간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트럼프의 외교정책이나 대북정책이 어떤 방식이든 우리는 실용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며 “이념으로만 북한을 보니까 국익을 위해 실용적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사드 배치 문제는 실용적 측면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사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입장에 대해선 “사드를 배치할 수도 있다. 다만 배치한다해도 절차와 과정이 공식적이고 투명해야 한다”며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 탑재기술을 고도화하면 한ㆍ미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도 사드 배치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중국에 강조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핵동결, 즉 추가적 핵실험을 하지 않도록 북한에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해달라, 그렇지 않으면 (사드 배치가) 부득이하다는 식으로 외교적 노력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며 “그러면 사드 배치로 간다 해도 중국이 한국에 경제 제재를 할 명분이 없게 된다”고 적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110분간에 걸친 오찬 회동을 했다. 문 대통령은 회동 뒤 정상회담과 사드와 관련된 전략에 대해 "(언론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110분간에 걸친 오찬 회동을 했다. 문 대통령은 회동 뒤 정상회담과 사드와 관련된 전략에 대해 "(언론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에는 미국에 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정상회담 전 미국의 입장을 파악해보려는 포석이다.
 
 반 총장은 정상회담을 앞둔 문 대통령에게 “정중하면서도 당당하게 임하는 것이 좋다. 한ㆍ미동맹이 초석이란 인식을 가져야 한다. 북핵에 대한 한ㆍ미간의 공통분모를 잘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반 전 총장과 2시간 가까이 오찬을 하며 정상회담과 사드 문제 관련 조언을 들은 뒤 ‘전략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니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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