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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양부모 학대로 숨진 현수 동상, 미국에도 세워진다

중앙일보 2017.06.04 11:35
 
‘현수 조각상’이 오는 6월 12일 메릴랜드주의 장애인학교 린우드센터에 세워진다. 지난 4월 서울 내곡동의 다니엘학교에 세워진 지 두 달 여 만이다. 지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던 현수는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2014년 양아버지의 폭행으로 숨진 5살 아이다. 

“숨진 현수는 60년 전 내 모습 입니다”
토마스·원숙재단 설립 토마스 클레멘트
혼혈로 태어나 자신도 입양돼 성장
빈곤 어린이 돕기 등 나눔의 삶 실천
“한·미 양국에 세워진 현수 조각상이
입양인들에게 ‘피뢰침’ 역할 해주길”

 
지적장애아였던 다섯살 현수는 미국인 양부의 학대로 숨졌다. 12일 미국 메릴랜드 장애학교에 세워질 현수조각상.<div><br></div>

지적장애아였던 다섯살 현수는 미국인 양부의 학대로 숨졌다. 12일 미국 메릴랜드 장애학교에 세워질 현수조각상.


한·미 양국에 조각상을 설립하며 두 장애인학교는 자매 결연을 맺고 앞으로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을 모은다. 그 중심에는 이 조각상을 직접 만든 한국계 입양인 토마스 클레멘트(65) 멕트라 랩스(Mectra Labs) 대표와 아내 김원숙 화가 겸 조각가가 있다. 3년 전 토마스·원숙재단을 설립하고 나눔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맨해튼 자택에서 만났다.  
 
‘악마’라고 불리던 혼혈아 


60년 전 6·25 직후 서울의 한 시장 길 모퉁이에 엄마와 토마스가 서있다. 
 
“여기서부터는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혼자서 달려 가는 거야.” 5살 토마스는 저항하지도 이유를 묻지도 않고 달렸다. 여전히 그는 이유를 묻지도 생모를 찾지도 않은 채 묵묵히 입양인들을 돕고 있다.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 후 거리 생활이 시작됐어요. 당시 혼혈아는 미국의 흑인 노예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았죠. 거리의 아이들은 내가 ‘악마’라며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들기도 했고 눈을 떠 밤까지 도망 다니는 생활이었어요. 의료 선교 간호사가 저를 고아원으로 보내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요. 그는 한국말을 모두 잊어버렸지만 ‘뭘봐’ ‘죽을래’ 같은 거리 생활 시절 단어들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고 했다. “고아원 생활이라고 나을게 없었죠. 그러다 미국 입양이 결정됐는데 그게 저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에요.” 60여 년 전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이 난다는 그는 온 몸으로 겪어야 했던 전쟁 당시의 폭탄 터지는 장면을 아직도 꿈에서 본다고 했다. 
백인 혼혈로 태어나 미국가정에 입양된 토마스. 공항에서 만난 아버지에 안겨 장난감 자동차를 들고 있다. 

백인 혼혈로 태어나 미국가정에 입양된 토마스. 공항에서 만난 아버지에 안겨 장난감 자동차를 들고 있다.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해 울었던 일, 뉴욕의 한 공항에 도착해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운전해 온 새아버지에게 태어나 처음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 받고 어리둥절했던 일… 토마스는 새 가족인 형과 누나들 사이에서 비교적 행복하게 자랐다고 했다. “그래도 입양인들이 자라면서 상처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형이나 누나들은 왕자나 공주처럼 사립학교에 가는데 저는 집안의 온갖 잡일을 다 했죠. 직업학교에 진학했고 ‘나는 바보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인생이란 게 정말 알 수 없어요. 그 후 대학에 가서 전기공학을 공부하면서 배움에 흥미를 느꼈고 끊임없이 발명했죠. 80개의 발명품에 43개의 특허를 가진 의료기기업체 오너가 됐으니까요. 토마스는 “사립학교 교육을 받은 형은 오히려 의대를 중퇴해 거의 무직으로 살고 있고 자신이 집을 사줬다”고 했다.
 
나눔의 삶 계기 된 생일파티 


토마스는 입양인들과 부모가 동시에 서로를 찾기 원할 경우 DNA매칭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세계 모든 입양인들이 무료 검사 키트를 신청해서 받을 수 있도록 관련 기관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매일같이 기적이 일어나요. 수집된 DNA키트를 통해 수십 년 만에 엄마를 찾기도 하고 쌍둥이 자매를 찾기도 해요. 이복 형제를 찾은 적도 있구요.” 자신은 어머니의 삶을 존중하기 위해서 찾기를 시도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다른 이들이 기적을 만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북한 어린이 돕기, 모교인 메사추세츠주 버크셔커뮤니티칼리지에 토마스어워드 설립, 인디애나에서 점심 급식비를 못내는 아이들의 빚 청산 운동 등 다양한 나눔 활동을 펼쳐 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입양되고 첫 생일파티 때였어요. 부모님이 친구들을 잔뜩 불러 파티를 해주셨는데 아이들이 나에게 선물을 주는 거에요. 근데 난 그걸 방 한 귀퉁이에 쌓아놓고는 파티 내내 지키고 서있었어요. 누가 가져갈까 봐 안절부절 하는 동안 하나도 즐기지 못하고 파티는 끝나버렸죠.” 토마스가 나누는 삶을 선택하게 된 계기였다. “고아원에서는 ‘내 것’이라는 게 없었죠. 자기 전에 신발을 벗어놓고 자면 신발이 없어져있고,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자지 않으면 담요도 없어져 있어요. 내 것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게 습관이 된 거에요. 근데 그 생일 이후 깨달았죠. ‘다시는 어리석게 생일파티를 놓치지 않겠다고’요.”  
조각가인 한국인 아내 원숙씨와 포즈를 취한 토머스 클레멘트. 

조각가인 한국인 아내 원숙씨와 포즈를 취한 토머스 클레멘트. 

 
현수 조각상은 내 모습  
 
이미 두 차례의 출판과 입양인 단체들에서의 온·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수천 명의 입양인들과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는 그는 최근 한국으로 추방된 입양인 아담 크랩서와도 친구라고 했다. 입양인들 관련 뉴스는 늘 챙겨본다는 그는 지난 달 한국으로 추방돼 자살한 한국인 입양인 사건에 애도를 표했다. “국제 한국인 입양인들의 자살, 폭행 등 슬픈 뉴스들은 생각보다 굉장히 자주 나와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을 뿐이죠. 현수 이야기가 그렇게 묻혀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조각으로 만든 거에요. 현수 조각상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두 장애인·고아 학교가 자매결연을 맺고 이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것처럼, 이 조각상이 일종의 피뢰침 역할을 하길 바란 거죠.”  
 
조각상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온통 손으로 만지고 다듬는 일에 손이 너무 아파 그만두려고까지 했다. 조각가인 아내가 존경스럽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회색 점토를 붙여 만드는데 어느 날 붉은 색이 나오는 거에요.” 폭행으로 멍든 현수의 피부 같다는 느낌이 들며 소름이 끼쳤다. 결국 다시 시작해 9개월만에 동상 두 개를 완성했다. “다시 만들라면 못할 것 같다”며 웃는 그는 한국 정부의 해외 입양 제도에 일침을 가했다. 제도 자체가 과거의 답습이라는 것. “생김새도 피부색도 다른 가정에 입양된 한국 아이들은 당연히 혼란과 방황을 겪을 수 밖에 없어요. 해외 입양아들의 높은 자살률이 이를 반증합니다. 해외 입양 정책이 바뀌어야 해요.” 한국 정부가 입양인, 싱글맘들에 대한 예산을 배정해 더 이상은 타국으로 입양돼 불행을 겪는 아이들이 없게 하는 것. 토마스와 원숙 부부의 바람이다.  
황주영 기자  
hwang.jooyoung@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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