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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 우려에도 대안 없어 한국 시장에 투자

중앙선데이 2017.06.04 02:04 534호 21면 지면보기
[투자은행의 세계] 지정학적 위험의 딜레마
2일 서울의 한 은행에서 딜러들이 환율을 확인하고 있다. 외국인이 코스피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이며 달러값은 전날보다 0.2원 내린 1121.8원으로 장을 마쳤다. 코스피 지수는 2371.72로 또 한 번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AP=뉴시스]

2일 서울의 한 은행에서 딜러들이 환율을 확인하고 있다. 외국인이 코스피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이며 달러값은 전날보다 0.2원 내린 1121.8원으로 장을 마쳤다. 코스피 지수는 2371.72로 또 한 번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AP=뉴시스]

16%, 7%. 올해 코스피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의 중간 성적표다(5월 27일 기준). 주요 선진국은 물론 어느 신흥국가와 견줘도 월등한 성과를 올리는 중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탄광 속 카나리아(canary in a coal mine)’인 우리나라 수출이 올해 급반등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과 채권에 자금을 쏟아부은 결과다. 글로벌 경제라는 탄광 속에 경기 상승 가능성이라는 산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조기에 알려주는 카나리아가 다시 살아난 게 신호탄이었다. 조기 경보가 청색 신호를 보내니 글로벌 경기 회복 기대감에 해외 금융시장도 반색했다.  
 

위험지수 9·11 테러 후 최고 수준
한국 주식과 원화 가치는 상승세

'꼬리 위험' 피할 뾰족한 방법 없어
중앙은행 대응 믿고 상승에 베팅

하지만 두 달여 전까지도 다수의 투자은행들이 저출산, 가계부채발 내수 침체, 정치적 불확실성 등 암울한 얘기를 쏟아 내며 성장률을 하향 조정하고 한국은행의 연내 금리 인하까지 예상했던 상황을 돌이켜 보면 현재 성적은 매우 놀랍다. 더군다나 ‘최고 압박’을 내건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전면전 불사’의 북한이 일촉즉발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과연 이게 합리적 시장일까 하는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골드만삭스가 매달 주요 고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설문인 ‘마퀴 서베이(Mar quee Survey)’ 5월 조사에 따르면 1088명의 응답자 중 20%가 북한 사태를 금융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미국 정치 이슈로 꼽았다. 외교·안보 전문가인 크리스토퍼 힐 전 6자 회담 미국 대표는 “파키스탄 등의 경험으로 볼 때 압박은 핵 개발을 가속화할 뿐”이라며 “테러에서 무력 분쟁까지 현재 국제 안보의 위협 요인 중 그 어느 것도 북핵 위험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말했다. 결국 국제 안보의 최대 위협이 북핵이고, 이는 곧 금융시장의 최대 악재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 세계 주가 지수는 연일 고점을 갱신하고 있다. 특히 지정학적 위험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자리 잡은 우리나라의 주가지수와 환율이 선두를 달리는 ‘정경 분리’ 추세가 확연하다.
 
북핵 위험의 중심인 한국이 상승장 주도
‘공포지수’라 불리는 한·미 양국의 주가지수 옵션의 내재 변동성 지수(VIX)를 봐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며 국내외 언론이 미국과 북한의 긴장 구도를 연일 대서특필하는 가운데도 슬금슬금 흘러내리던 VIX는 프랑스 대선의 불확실성과 겹쳐 반짝 반등하더니 다시 급락했다. 미국 VIX는 지난달15일 9.6을 기록해 역사적 저점을 깨기도 했다. 과연 북핵 위험은 금융시장으로부터 이렇게 소홀한 대접을 받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 대상일까. 아니면 현재의 지정학적 위험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과 달리 실제는 훨씬 약한 게 아닐까.
 
먼저 후자의 의문을 살펴보자. 테러·전쟁 등과 같은 위험을 지수화한 것으로 ‘지정학적 위험 지수(GRI)’가 있다. 미국 연준(Fed) 이코노미스트인 다리오 칼다라와 마테오 야코비엘로가 개발한 이 월간 지수는 9·11 뉴욕 테러와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2000년 이후 최고치인 390을 찍었다. 그 후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2015년 파리 테러에서 200을 넘어섰다가 하향 안정세에 있던 지수는 지난해 말부터 다시 상승해 150 근처를 맴돌았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나온 공식 수치가 올해 3월이라 지난 4월과 5월 두 달 동안 미국과 북한 간 설전 및 군사력 시위가 최고조에 달했던 점과 시리아 공습 등을 고려하면 지금은 200 수준에 근접했을 걸로 추측된다. 과거 200 이상을 기록한 경우는 테러 또는 물리적 충돌 등 실제 사건이 터진 경우이기 때문에 사전에 이렇게 높은 수치를 기록한다는 건 지정학적 위험이 이미 매우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한다.
 
전자의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먼저 ‘꼬리 위험(tail risk)’을 알아야 한다. 지난 금융위기 이후 금융권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용어인 이 위험은 ‘어떤 사건의 발생 가능성은 극도로 희박하지만 일단 현실화되면 그 여파로 금융시장이 막대한 충격에 휩싸일 위험’을 뜻한다. 꼬리 위험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규분포곡선에서 발생 확률이 매우 낮은 좌·우 양극단에 위치하는데, 좌측 꼬리 위험은 극단적 손실로, 우측 꼬리 위험은 극단적 수익으로 이어진다. 물론 탁월한 예측과 동물적 본능으로 좌·우 양방향 파고를 잘 타고 넘는 게 최고다.  
 
하지만 “투자의 제1원칙은 절대로 돈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제2원칙은 제1원칙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는 워런 버핏의 조언처럼 투자은행 트레이더나 자산운용사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좌측 꼬리 위험을 최소화하는 게 최우선이다. 대박 맞을 기회를 놓치는 건 용서되지만 쪽박을 차면 회사는 존폐 위기에 몰리고, 회사는 물론 업계에서도 퇴출 위기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꼬리 위험을 없애기 위해 하는 거래인 ‘헤지(hedge) 거래’가 여러 제약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먼저, 헤지 거래는 비용이 많이 든다. 대부분의 헤지 거래는 보험 계약과 유사해 보험료 격으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보험과 같이 만기가 길어질수록 비용이 많이 들고, 만기가 돌아오면 연장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 프랑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꼬리 위험이 터졌을 때(미국 S&P 500 지수가 20% 이상 하락한 경우) 가장 효과적인 헤지 거래는 공포지수 S&P 500 VIX를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비용도 가장 많이 드는 거래였다. 다행히 꼬리 위험이 발생하지 않으면 거래 비용만 날리는 셈이 되고 만다. 위험을 줄이려 보유하던 주식을 팔아 예금을 하거나 무위험 미국 국채를 사도 비용은 발생한다. 무탈하게 넘어가 이미 팔아버린 주식은 다시 강해졌는데 자신은 예금과 국채의 초저금리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기회비용이 바로 그것이다.
 
다음으로, 완벽한 헤지가 불가능하다. 기존 포트폴리오에 담긴 자산을 꼬리 위험에 따른 가치 하락으로부터 지켜줄 완벽한 헤지는 자산을 다 팔아 버리는 방법뿐이다. 비현실적인 얘기다. 그래서 자산의 일부를 금이나 국채 같은 안전 자산으로 교체하거나 과거에 보유 자산과 밀접한 가격 움직임을 보였던 파생상품을 이용한 ‘교차 헤지(cross hedge)’ 전략을 택한다.  
 
그런데 만약 꼬리 위험이 발생했을 때 안전 자산이나 교차 헤지 거래의 가치가 기대에 못 미치거나 오히려 떨어진다면 난감한 지경에 처한다. 소시에테제네랄의 분석도 안전 자산이라 여겨지는 금과 미국 10년 국채는 안정적 헤지 수단이 아니라는 걸 보여 준다. 주식이 20% 이상 하락했는데 금과 국채의 가치도 함께 떨어진 경우가 다수였고, 평균적으로도 각각 2%, 4% 상승에 그쳤다.
 
사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자체가 꼬리 위험은 아니다. 이미 수차례 있어 왔던 도발이라 과거 데이터로 금융시장에 미칠 여파를 예측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핵·미사일 실험, 남북 간 무력 충돌에도 코스피와 원화는 하루에서 2주 사이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자연히 저가매수와 버티기의 학습효과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맞대응 방식에 따라 꼬리 위험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즉 꼬리 위험은 미국이 북한의 도발에 대해 과거와 같은 경제·외교적 대응이 아닌 군사적 대응을 취하는 경우다. 이 꼬리 위험은 핵무기가 연관되어 있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중·일 3국이 얽혀 있고, 미국 본토 공격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차원의 위험이다. 과거 데이터를 가지고 통계적으로 위험을 분석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그에 못지 않게 헤지 거래에 수반되는 제약 조건도 최악이다.
 
 
주가 달리는데 저수익 상품 투자도 난감
비용을 감안하면 헤지 기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진입 타이밍을 잡기가 영 쉽지 않다. 꼬리 위험의 방아쇠가 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좌충우돌하는 탓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랜만에 맛보는 경기 회복의 순풍에 온전하게 올라타지 못할까 하는 조바심 탓이 가장 크다. 헤지 거래로 인해 지불할 거래 비용과 기회비용의 역풍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가뜩이나 저금리와 저조한 수익률로 투자자들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헤지 펀드와 자산운용사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은 성과의 주요 비교 대상인 주가지수가 내달리는데 한가하게 헤지를 논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비용 문제뿐만 아니라 헤지 전략도 불투명하다. 이전 다른 꼬리 위험의 헤지 거래에 사용된 안전 자산과 교차 헤지 거래가 이번에도 같은 효과를 발휘할지 불안한 형국이다. 미국이 이 위험의 핵심 이해당사자라 달러 자산이 안전 자산 역할을 제대로 할지, 일종의 보험을 제공하는 미국계 거래 상대방이 사건이 터진 후 무사히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을지 등 불확실한 변수가 너무나도 많다. 그 동안 수퍼 안전 자산 노릇을 톡톡히 해 온 일본 엔화도 마찬가지다. 일본도 영향권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금융시장은 북핵 관련 지정학적 위험 수준은 매우 높아 염려되지만 글로벌 경제 사이클이 우호적이고 꼬리 위험의 헤지 거래에 나서기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상황의 결과물로 요약된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그동안 꼬리 위험이 터질 때마다 보여 준 화끈한 위기 대응에 대한 신뢰도 한몫 하고 있다. 여차하면 중앙은행들이 전통적·비전통적 정책을 총동원해 금융시장을 구제해 줄 ‘풋 옵션(기초자산을 사전에 정한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을, 그것도 공짜로 들고 있다는 믿음이다.
 
이런 환경에선 어떻게 위험관리에 나서야 할까. 무엇보다 지정학적 위험으로 인해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계속 업데이트하고 따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지금 현재 자산별 상대 가치를 파악하는 데 있다. 금융시장이 흔들리면 고평가된 자산부터 크게 하락하기 때문이다. 낌새가 이상하면 그 자산을 제일 먼저 팔아야 한다. 경제 지표도 매의 눈으로 관찰해야 한다. 현재 시장의 버팀목인 경기 상승 기운이 꺾이면 지정학적 위험의 존재감이 더욱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론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외교 면에서 우리나라의 탄광 속 카나리아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는 지금도 카나리아가 보낼 조기 경보에 주목하고 있다.
 
 

최정혁
전 골드만삭스은행 서울 대표
경영학박사. 씨티은행, 크레디트 스위스, UBS에서 FICC(Fixed Income, Currencies and Commodities, 채권·외환·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현재 대학에서 국제금융과 금융리스크를 강의하며 금융서비스산업의 국제화를 연구하고 있다. jungcho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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