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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개혁 뒷받침돼야 실질적 성과 난다

중앙선데이 2017.06.04 00:47 534호 10면 지면보기
20년 만에 방향 전환하는 비정규직 정책
노량진 학원가에서 공시 준비생들이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중앙포토]

노량진 학원가에서 공시 준비생들이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중앙포토]

29명. 현재 인천공항공사가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 근로자 수다. 그 대신 46개 협력업체 소속인 간접고용(아웃소싱) 형태 근로자 6903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3100만원으로 공항공사 정규직 평균(7905만원)은 물론 정규직 신입사원(4200만원)보다도 낮다. 지난달 12일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화답해 정일영 사장이 정규직 전환을 선언한 지 20여 일이 지났지만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놓고 혼란은 여전하다. 익명을 요청한 한 직원은 “정규직은 1166명인데 1만 명의 비정규직이 새로 들어온다”며 “지금도 대졸·고졸 정규직 사이에 임금과 근무 조건 등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는데 앞으로 수십 가지 부문의 인력들이 합류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IMF 후 노동시장 유연화 수용
노무현 정부서 비정규직 급증
새 정부는 ‘정규직 전환’ 추진

기업의 늘어난 인건비 부담과
기존 직원, 구직자와의 갈등 등
사회적 대타협으로 조정해야

 
사실 지난 정부까지만 해도 인천공항공사는 아웃소싱을 늘렸다. 2001년 개항 당시 건설비(7조8000억원) 중 40%만 국가에서 지원받고 60%는 차입했기 때문이다. 부채(지난해 말 기준 2조7815억원)를 줄이기 위해선 인건비를 아껴야 한다는 논리를 들었다. 인천공항의 간접고용 인력은 2012년 5990명에서 현재 6903명으로 5년 만에 15% 증가했다. 여기에 올해 말 탑승동 건너편에 제2터미널이 개통되면 아웃소싱 인력은 9924명까지 늘어난다. 정규직 전환 대상 1만 명에는 이들 모두가 포함된다.
 
자회사 설립은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을 막론하고 정규직 전환의 대표적인 형태다. 지난달 SK브로드밴드가 설치기사 등 아웃소싱 인력 5000명에 대한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밝히며 홈앤서비스라는 자회사를 세웠다. 서울시는 120다산콜재단을 만들어 용역업체 소속이던 콜센터 상담 근로자를 직접 고용했고, 서울메트로도 서울메트로환경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환경미화 근로자를 고용한 바 있다.
 
아웃소싱은 효율성을 우선하는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고용 형태 중 하나다. 각 기업마다 핵심이 아닌 지원 업무를 외부 전문업체에 맡김으로써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전반적인 효율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대주주 친인척이나 관련 업체에 이런 업무를 맡기는 ‘일감 몰아주기’가 나타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됐다. 문재인 정부는 “간접고용 인력이라도 상시·지속 업무에 종사하는 공공부문 근로자라면 정규직 전환 대상”이라며 반(反) 아웃소싱 기조를 분명히 했다. 20년 만에 방침을 180도 전환한 것이다. 1997년 11월 김영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58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으며 노동시장 유연화 조건을 수용했다. 이듬해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국회에서 ‘근로자 파견법’을 통과시킨다.
 
비정규직보호법이 역효과 내기도
이때 도입한 비정규직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건 역설적이게도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통계청 공식 발표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율이 2004년 37%까지 올랐다가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에는 33.3%까지 낮아졌다. 박근혜 정부 때는 32%대를 유지했다.
 
새 정부는 파견·용역 등 아웃소싱 근로자까지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오기 일쑤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통과된 ‘비정규직보호법’이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2년 이상 채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한 것인데 기업들이 2년을 채우지 않고 근로자를 해고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공무원 수 확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김대중 정부와는 정반대 정책이다. 1998년 93만5759명이었던 공무원 정원은 3년 뒤인 2001년 86만8120명까지 줄었다. 기획예산처 산하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매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을 마련해 공공기관의 인건비 상승률을 결정한 것도 김대중 정부부터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효율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은 “아웃소싱을 마치 나쁜 일자리 양산으로 매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결과적으로 정부 정책 때문에 기업들의 해외 이전을 가속화시키는 엉뚱한 효과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알바나 공시생 등을 포함하면 실질적 청년실업률이 30~40%에 달하는 상황을 방치하고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겠느냐”며 정부가 고용 안정을 1차 목표로 삼은 이유를 설명했다. 홍 위원장은 “신규채용 감소 등 예상되는 부작용은 여러 정책수단을 통해 극복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비정규직 고용 부담금 역시 실효성을 놓고 반론이 나온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대기업은 비정규직 비율이 절대적으로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현대차만 하더라도 2012년 대법원 판결 이후 사내 하도급 근로자 약 6000명을 정직원으로 채용했다. 4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차의 비정규직 비율은 3%(2257명)다. 노조가 없는 삼성전자도 전체 근로자(약 9만5000명)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이 0.7%(692명)에 그쳤다.
 
소기업 비정규직 비율 50%에 달해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 결과 300인 이상 규모 사업체 비정규직 비율(한시적·기간제·단시간 근로자, 파견·용역·호출 형태 근로자 등 포함)은 2006년 20%에서 지난해 13.6%로 6.4%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5∼9인 사업장의 비정규직 비율은 38.5%에서 39.5%로, 1∼4인 사업장은 46.6%에서 49.7%로 높아졌다. 비정규직이 대거 몰려 있는 곳은 중소기업이라는 얘기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미 비정규직 감축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업종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비정규직 부담금을 부과해서는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차라리 비용 문제가 절실한 중소기업이 정규직을 채용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설계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일자리위원회는 정규직 전환 방식으로 내부 정규직 채용, 무기 계약직 채용, 자회사 채용 등 지침을 제시할 뿐 구체적 방식은 노사가 협의해 정하라는 입장이다. 경영진은 자회사를 통한 간접 채용을 선호하고, 노조는 직접 채용을 요구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여지가 있다. 게다가 어디까지를 비정규직으로 보느냐 하는 비정규직 분류 기준도 제각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르면 골프장 캐디나 학습지 교사 같은 특수고용직 근로자와 외부 용역업체 소속 정규직 근로자는 한국과는 달리 비정규직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국수력원자력은 사내 비정규직(7300명) 가운데 한전KPS 소속 근로자 3400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전력도 회사가 채용한 비정규직 수는 600명에 불과하지만, 환경 미화·건물 관리 등 각종 용역을 담당하는 간접고용 근로자는 7715명에 달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전 노조 관계자는 “정규직이 늘어나면 회사 총 예산에서 인건비가 늘어나야 하는데 기획재정부나 사 측이 근로자의 고통 분담만 요구할 것 같아 우려스럽다”며 “정규직을 늘리면 임금 총량도 높여줘야 기존 근로자의 생활 수준이 보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늘어난 인건비 부담은 부채 발행으로 이어져 공사뿐만 아니라 결국 국민 몫으로 전가될 수 있다”며 “앞으로 단순업무는 로봇이 대체할 텐데 무조건적인 정규직 전환이 과연 이치에 맞느냐”고 반문했다.
 
정부 방침에 재빨리 보조를 맞춘 금융권에선 노-노 갈등도 발생하고 있다. 금융 고시라 불릴 정도로 어려운 채용 절차에서 합격한 정직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 비정규직 5200명을 정규직 전환하기로 결정한 이후 농협은행은 내부 혼란에 휩싸였다. 농협은행에 다니는 김모(30)씨는 “100대 1 가까이 되는 입사 경쟁률을 뚫고 힘들게 들어온 사람하고 계약직으로 쉽게 회사에 들어온 사람이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합당한 일이냐”고 반문했다.
 
한국노총 출신의 비례대표인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부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고용 안정이냐, 임금·복지까지 다 해줄 거냐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노사 간, 노노 간에 또 다른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의원은 “일자리 문제 해결은 시대정신으로 보면 맞다”며 “정부의 구체적 플랜이 안 나온 상황에서 평가하기 어렵지만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격차를 해소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부분은 여야가 협력해서 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정규직 문제는 사실 정규직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규직 근로자가 강력한 노동조합을 방패 삼아 고임금, 고용 안정, 4대 보험 등 각종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의미다. 기아자동차 노조는 지난 4월 조합원 투표를 통해 찬성률 71.2%로 비정규직을 노조에서 배제했다. 촉발점은 정규직 전환 규모를 둘러싼 양측 갈등이었다. 남성일 교수는 “일자리의 기본은 생산성과 임금의 등가성이지만 한국 사회에선 원칙이 깨진 지 오래”라며 “정규직에게 지불하는 과도한 임금만큼의 생산성을 비정규직에서 뽑아내려고 하는 것이 문제의 근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정치권에서는 생산성 문제에는 눈감은 채 ‘과보호된 정규직=좋은 일자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규직 과보호가 근원적 문제” 지적도
새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비판했다가 역풍을 맞은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비정규직의 근본 문제는 대기업-중소기업 근로자 간 임금 격차로 판단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을 100으로 잡았을 때 대기업 비정규직이 62.7, 중소기업 정규직은 52.7,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7.4 수준이다.
 
권순원 교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대기업의 임금 양보와 중소기업의 임금 상승을 돕는 연대임금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대임금제는 자동차·전자 등 대기업 근로자가 받는 초과이윤 가운데 일부를 ‘연대임금기금’으로 출연,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근로자의 임금상승·교육훈련 등에 활용하는 제도다. SK하이닉스가 실시하고 있는 임금공유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하이닉스는 임금 인상분의 20%를 기금으로 조성해 협력업체 근로자 교육 등에 쓴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도입하고자 했던 성과 공유제와도 유사하다.
 
이와 함께 ‘광주형 일자리’ 모델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년 전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이 들고 나온 이 모델의 핵심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다. 정규직 근로자가 법정 근로시간 주 52시간(40시간+초과근로 12시간 이내)을 지키도록 하면 근로자 한 명당 임금은 전보다 줄겠지만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나고 삶의 질과 직무 몰입도가 높아져 기업의 경쟁력도 강화된다는 논리다. 윤 시장은 이 제도를 기아차 광주공장에 적용하면 평균 연봉이 지금의 절반인 4000만원으로 낮아지는 대신 1만 개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윤 시장은 지난 1일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에서 시작할 뿐 광주에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니다”며 “특별법 제정, 세제 혜택,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 등을 통해 이 모델을 성공시키고 전국으로 확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형 일자리를 비롯한 노동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문 대통령의 노동시간 감축 공약의 실천과 노사정 대타협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법정 최대 노동시간을 기존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국회에서 합의하지 못할 경우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의 행정지침을 폐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노조의 협조 없는 일자리 나누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제조업 공동화 현상을 막고 미래 세대를 위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반값 임금론’은 실효성이 있다”면서도 “산별 노조가 개별 지회의 이런 움직임을 용인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노동 분야 대선 공약을 설계한 이종훈 전 의원(명지대 교수)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필요한 방향이라는 점에서 공공부문을 앞세운 정부의 대책에 큰 틀에서 공감한다”며 “다만 정규직 전환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이 모두 큰돈이 들어가는 문제인 만큼 기업과 근로자를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성호준ㆍ염지현ㆍ박민제ㆍ김경희ㆍ김영민 기자, 정서영 인턴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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