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욱의 빅 히스토리] 페르미의 역설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외계 행성의 상상도. [NASA]](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706/04/f1778838-7cba-4d22-82dd-342aa3db3a51.jpg)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외계 행성의 상상도. [NASA]
핵무기가 인류 멸망 시킬 수 있듯
외계 문명 발견하지 못하는 건
모두 멸망했기 때문은 아닐까
목성·토성의 위성에 얼음 바다
생명체의 징후 찾는 노력 한창
유력한 후보, 유로파와 엔켈라두스
엔켈라두스를 덮고 있는 30~40㎞ 두께의 얼음 아래에는 10㎞ 깊이의 바다가 있으며 이곳에서 신비한 수증기 줄기가 간헐적으로 뿜어 올라온다는 사실은 2005년 확인된 바 있다. 이 속에는 미량의 암모니아·이산화탄소·메탄이 포함돼 있었다.
이번 발표에 따르면 NASA의 카시니 탐사선은 이 수증기 간헐천에서 다량의 수소 분자를 발견했다. 이것은 고압의 뜨거운 물이 암석 속에 포함된 철이나 유기물과 반응해 수소를 발생시키는 ‘수열 반응’이 일어났다는 증거다. 수소 분자는 박테리아의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일부 박테리아는 수소를 이산화탄소와 반응시켜 메탄을 만드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를 이용한다. 지구 생명의 기원에 대한 주요 이론의 하나도 바로 이런 내용이다. 뜨거운 암반 속을 통과하며 끓는 바닷물이 에너지와 영양분이 풍부한 환경을 만들어 냈고 여기서 최초의 세포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열수분출공은 오늘날 해저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며 햇빛이 전혀 없는 암흑 속에서 생명체들이 번창하는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물병자리에 있는 트래피스트-1 성계에 속한 행성f의 상상도. [NASA]](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706/04/725a29c0-bc48-4b52-9e7b-6a028fa7c568.jpg)
물병자리에 있는 트래피스트-1 성계에 속한 행성f의 상상도. [NASA]
유로파의 경우 15~25㎞ 두께의 얼음 아래 지구의 모든 바다를 합친 것보다 더 큰 바다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NASA의 이번 발표는 적도 부근의 얼음을 뚫고 100㎞ 높이의 수증기 기둥이 솟아오르는 것으로 보이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허블 우주망원경의 지난해 관측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2년 전 그보다 작은 수증기 기둥으로 보이는 것이 발견된 것과 같은 장소였다. 확정적인 것은 아직 아니다. 유로파가 목성 앞을 지나갈 때 목성에서 방출되는 일부 자외선을 차단하는 현상으로 수증기 기둥의 존재를 추정하는 것이다. 분출장소는 1990년대 후반 갈릴레오 우주선이 확인한 이상 고온 지역의 중심부로 확인됐다.
NASA 사이언스미션의 책임자인 토머스 저버첸 박사는 기자회견에서 엔켈라두스 및 유로파와 관련한 발견에 대해 “거주가능한 환경에 필요한 요소들을 가진 곳이란 사실을 규명하는 데 가장 가깝게 접근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NASA는 2020년 발사를 목표로 첨단 장비를 장착한 ‘유로파 쾌속선(Europa Clipper)’을 개발 중이다. 목성 궤도에 진입한 뒤 유로파에 40여 회의 근접 비행을 수행하며 물기둥의 실존 여부와 얼음 아래 생명체의 징후 등을 관측할 예정이다. 유럽우주국(ESA)도 2024년 ‘목성 얼음위성 탐사선(JUICE)’을 유로파의 궤도에 진입시킬 예정이다.
외계인이 만든 거대 구조물의 흔적?
외계지능탐사도 신호 포착 못 해

NASA가 내년 10월 발사할 예정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그들은 모두 어디 있는가?” 이는 ‘페르미 역설’이라 불린다. 1950년 이를 처음 제기한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1938년 노벨상 수상)의 이름을 딴 것이다. 역설이라 불리는 것은 외계 문명의 증거가 발견돼야 마땅한데 그렇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한 답변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문명의 수명’에 관한 것이다. 인류 문명을 예로 들어 보자.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핵탄두는 1만5000여 개다. 75억 인구를 몇 차례 멸절시키고도 남을 숫자를 9개국이 보유하고 있다. 미국(6800개)과 러시아(7000개)는 약 1800개씩을 몇 분 만에 발사할 수 있는 최고 경계태세로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외계 문명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몇 억 년 버티지 못하고 이미 멸망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주는 거대한 공동묘지일 가능성도 있다.
인류의 외계지능탐사(SETI)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외계에 생명체가 있다면 그중에는 우주를 향해 전파신호를 발사할 정도로 발전한 문명도 있을 것이다. 혹시 지금도 그런 전파가 지구에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같은 의문을 직접 해결하려 한 것이 ‘외계지능탐사(SETI)’ 프로젝트다. 지상의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수천 개의 표적 항성(사실은 항성에 딸린 행성들)을 대상으로 외부의 지성체가 보내올지 모를 무선신호를 탐지하려는 것이다.
84년 설립된 세티연구소는 지금도 NASA와 미국 과학재단 등의 후원과 전 세계 과학자들의 참여 속에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연구소의 천문학자 세스 쇼스탁은 이와 관련, “우리가 접하게 될 전파는 우리 같은 생명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보낸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우리 자신이 금세기 내에 이뤄낼 일도 그것”이라며 외계 문명 역시 그럴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세티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연구소에서 외계 문명이 멀쩡히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반드시 멸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 말이다.

과학과 소통 대표
서울대 졸업. 중앙일보 논설위원, 객원 과학전문기자,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역임. 2011~2013년 중앙일보에 ‘조현욱의 과학산책’ 칼럼을 연재했다. 빅 히스토리와 관련한 저술과 강연에 힘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