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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합리화 이중 잣대, 명확한 사회적 기준 없을 때 기승

중앙선데이 2017.06.04 00:02 534호 3면 지면보기
‘내로남불’의 심리학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요즘 우리 사회에 일종의 19금 약어 ‘내로남불’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포털에서 검색해 보면 지난 6개월간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가 330여 건에 이른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각 후보 캠프가 서로 내로남불을 외치면서 상대 후보를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여야는 내로남불의 표본이라며 서로를 비난했다. 내로남불은 이제 한국에서 초등학생까지 아는 단어가 됐다. 내로남불 현상은 왜 빚어지고 해법은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심리·신경정신·사회·정치학자와 문화평론가 등 전문가들의 얘기를 따라가 봤다.

인간은 세상을 객관적으로 안 봐
이익 따라 사실을 유리하게 왜곡
집단 편 가르기는 나라도 갈라놔

자신에 더 엄격한 선비정신 필요
양쪽 편에 서 보고 이해·토론을
주장 아닌 팩트전달 미디어 늘어야

 
내로남불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중 잣대다. 심리학에선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으로 본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자아를 붕괴의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방어 시스템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솝 우화에서 여우가 높은 곳에 있는 포도를 먹을 수 없을 때 ‘저건 맛이 없는 거야’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런 합리화는 사는 데 상당히 유용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은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한다. 운전할 때는 찻길의 적색 등이 길게 느껴지지만 걸어갈 땐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긴 것 같다. 그냥 남의 떡이 커 보이기도 한다. 또 자신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뛰어난 개성을 갖고 있다고 여기는 일종의 과대망상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실수는 용납이 되고 타인은 용서할 가치가 없다고 평가한다. 심리학에서 이런 행위자-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bias) 이론, 허구적 독특성(false uniqueness) 이론 등이 내로남불을 설명한다.
 
더 무서운 건 다른 사람에게 원인을 돌리는 심리적 현상인 투사(投射)다. 이택중 전 대한신경정신학회장은 “인간은 자신의 실수는 외면하고 오히려 그 문제를 남에게 넘겨 버리려는 경향이 있다”며 “불륜을 저지른 사람이 다른 불륜을 저지른 사람을 더 심하게 타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이런 성향은 더 강해진다. 국회의원 유세에서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막상 당선이 되면 말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다. “내가 그 정도 자격이 되는데 이 정도 실수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동안 얼마나 고생해서 여기 올라왔는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초식동물은 항상 조심하고 주위를 경계하지만 힘이 센 사자는 하루 종일 잠을 자도 괜찮다.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은 무의식중에 자신이 초원의 왕 사자라고 생각한다.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는 대선 기간 중 “문재인 후보가 내로남불의 표본 인간”이라고 비난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이 모두 다르다”고 하자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야당에서 여당 되면서 내로남불 됐다”고 비판했다. [중앙포토]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는 대선 기간 중 “문재인 후보가 내로남불의 표본 인간”이라고 비난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이 모두 다르다”고 하자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야당에서 여당 되면서 내로남불 됐다”고 비판했다. [중앙포토]

선민의식 강할수록 과오에 둔감
내로남불 현상은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다. 사회가 진영으로 갈라져 우리가 한 건 괜찮고 반대편에서 한 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화평론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아시아에서 이런 이슈가 생긴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한국이 그만큼 어느 정도 민주화되어 토론의 장이 서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해석했다.
 
편 가르기도 인간의 본능이다. 원시시대 누군가를 만나면 피아(彼我)를 가려야 한다. 나를 해칠 사람 같으면 도망가거나 싸우고, 힘을 합쳐서 더 큰 동물을 사냥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협력해야 한다. 같은 편이면 뭘 해도 다 좋고, 다른 편이라면 뭘 해도 나쁜 짓이다.
 
현대 인간도 무의식중에 편을 가른다는 실험이 있다.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A와 B 두 가지 그림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그 후 실험 참가자 한 명에게 돈을 나눠 주라고 했는데 그는 같은 그림을 고른 사람들에게 더 많이 줬다. 곽금주 교수는 “인간은 단순한 취향과 관계된 것에서도 내 편, 네 편을 가른다. 하물며 이득이 걸려 있다면 편 가르기 정도는 훨씬 심해진다”고 설명했다.
 
지나친 편 가르기는 나라를 갈라놓는다. 한국은 짧은 민주주의 경험, 일제 점령, 6·25전쟁, 분단, 좌우 대립 등의 경험으로 흑백론이 지배한다. 중립 지역이 상당히 좁다. 리더는 자기 편의 응집력이 강할수록 이득이 많다. 그래서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며 편 가르기를 추동하는 경향도 있다. 멋모르고 친구 따라 정치 집회에 갔던 사람들이 극렬하게 바뀌는 일도 허다하다. 인간은 주위 사람들의 행동에 반응한다. 무리와 비슷하게 나아가야 소외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군중심리다.
 
또한 자신의 목적이 옳다고 생각해 일종의 선민의식을 가지게 되면 그 과정에서 생기는 과오들은 별로 문제가 없다고 여기게 된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수많은 살육과 테러, 전쟁들도 일종의 내로남불이다. 이택광 교수는 “나치의 아우슈비츠 참사도 시작은 ‘선의’였다”고 말했다.
 
20년 전 관행, 현재 기준으로는 안 되는 일
내로남불 현상들은 정확한 잣대가 없을 때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유홍식 중앙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사회가 너무 빨리 변하다 보니 20년 전만 해도 관행 비슷한 것들이 현재 기준으로는 해서는 안 되는 행위가 됐다. 게다가 대통령이 공직 배제 5대 원칙이라는 선을 그어 놨기 때문에 기준이 더욱 헷갈리게 됐다. 여러 사람들이 동의할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잣대에 따라 해석하는 행위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편 가르기는 인간 속성이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다. 일단 많이 섞이는 것이 방법이다. 곽금주 교수는 “이쪽 편에서 서 보고, 저쪽 편에도 서 봐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제3지대에 선 사람들이 양쪽 강경파에 치이면서 계속 실패했는데 중도파가 집권한 프랑스처럼 양쪽을 포용해야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의 도덕성도 중요하다. 최진호 아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과거 한국 선비들은 남보다 본인에게 훨씬 더 엄격했다. 정치인들은 이전 엘리트의 선비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좋은 학교 가는 것만 생각해 아이들에게 도덕과 상대에 대한 배려 등을 가르치지 않는다. 자기밖에 모르고 사는 아이들은 자기 주관대로 세상을 해석할 수밖에 없다. 내로남불이 되풀이되는 까닭이다”고 지적했다.
 
더 근본 문제는 인간 자체처럼 민주주의도 불완전한 것이라는 점이다. 박상훈(정치학 박사) 정치발전소 교장은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의견을 낼 자유를 줬다. 그러나 인간 모두가 사실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는다. 어떤 사실을 들이민다고 해도 개인의 이익이나 성향에 따라 각각 다른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실체적 기반이 아니라 의견의 기반 위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그 의견들은 정당을 통해 합리적으로 발전돼 정부, 국가 권력에 접근하게 된다. 인간이 그런 것처럼 정당도 주관적인 내로남불 의견을 낸다. 이를 토론을 통해 사회를 발전시킬 에너지로 바꿔야 한다. 문제는 토론의 수준이다. 지금처럼 친박·비박·친문·비문식으로 호불호에 따라 토론한다면 상처가 남고 공격성만 커진다. 박상훈 교장은 “우리는 다섯 개 정당의 차이가 애매하고 논의 기준이 약하며 공익을 위한 토론이 많지 않다. 일반 지지자들도 사회적인 토론을 하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에 따라 박수를 치거나 야유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차이가 드러난 지금부터가 정치의 시작이다. 정당은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과 정무수석 등 정치를 해야 할 사람은 야당과 협의를 해야 한다. 청문회의 경우라면 위장전입 등에 관한 기준을 협의해야 한다. 공론을 할 때 황금률은 내가 싫은 방식으로 남을 대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의 관점에서 가장 나쁜 예는 박근혜 정부였다. 정치를 아예 안 하고 야당 때문에 일이 안 된다고 불평하면서 시민 서명을 받기도 했다. 결국 남은 것은 상대에 대한 공격뿐이었고 시민사회 문화적 기반이 무너져 버렸다. 토론이 없으니 양쪽 지지자들은 더 극렬하게 반응했고 사회의 양극화로 불행한 일이 생겼다.
 
중립과 표현의 자유 무너져선 안 돼
이택광 교수는 중립과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중립은 관용이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이견들이 교환되는 장소다. 다양한 이견이 등장할수록 사회가 건강해지고 시스템이 발전한다. 이를 위해 표현의 자유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이게 무너지면 민주주의의 위기가 올 것이다.”
 
그는 특히 미디어의 중립에 방점을 찍는다. “진영논리에 빠진 사람들은 중립을 지키는 미디어를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현 정부를 과거의 권위주의 정부와 동일하게 바라본다는 오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막으려 하고 있다. 정의를 추구한다면서 하는 행태가 그렇지 못하다면 올바른 길로 가기 어렵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사회가 양극화되긴 했지만 중립을 지키는 언론의 역할이 살아 있기 때문에 시민 사회가 훼손됐음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지키겠다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유홍식 중앙대 교수는 “인터넷의 발달로 사실이 아니라 대중이 좋아하는 의견을 실어 상업적 이득을 얻으려는 매체가 너무 많아졌다. 주장을 받아쓰지 말고 탐사를 통해 핵심적 팩트 중심으로 얘기하는 미디어가 늘어야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와 미디어의 공공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립적인 미디어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이택광 교수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의제를 냈을 때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고 개선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검증은 전문가 집단의 동료 평가(peer review), 상호 감시가 중요하다. 현재는 전문가가 사라지고 선동꾼들이 전문가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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