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학원은 호황, 공기업 취준생은 한숨

중앙선데이 2017.06.04 00:02 534호 1면 지면보기
[르포] 공무원 채용 확대, 들썩이는 노량진 학원가
2일 오후 6시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 입시학원. 500㎡(약 150평) 규모의 강의실에는 책·필기구뿐만 아니라 물통·귀마개·책받침 등 고시생 필수 아이템이 빼곡하다. 한 시간 후 시작되는 형법 수업을 듣기 위해 수험생들이 미리 놓아둔 물건이다. 공시 준비생 이예영(24)씨는 “편의점에서 저녁 식사를 대충 해결하고 강의실로 돌아와 쪽지시험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공기업 신규채용 줄일까 걱정
공시생들은 채용 확대에 환호
교육·노동 구조개혁 이어져야

이 건물 모든 층(7층)에는 공무원·경찰 준비 학원이 들어서 있다. 6층의 한 경찰학원 출입문에는 ‘문재인 대통령 경찰 증원, 1500명 추가선발 예정’이라는 내용의 벽보가 붙어 있었다. 공무원 수험생 박진화(25)씨는 “인터넷과 학원가에는 9월로 예정된 경찰공무원 2차 시험에서 합격 인원을 대폭 늘린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J학원 관계자는 “공무원 채용규모 확대에 시장은 아주 호황”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우려하는 공기업 준비 수험생도 적지 않았다. 기존 정규직과 전환형 비정규직은 뽑는 분야가 달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는 반면 결국 신입사원 모집 규모가 줄지 않겠냐는 불안감도 크기 때문이다. 서울시설공단에서 일하다 공기업 취업을 준비 중이라는 한 수험생(29)은 “전 직장에서도 공무직·계약직에서 전환된 정규직들이 사무직 업무를 보고 있다”며 “내년 이후 정규직 신규 채용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공준모(공기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 커뮤니티에서는 ‘계약직 입사는 정말 쉬운데,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공채를 안 뽑으면 힘들게 공채 준비하는 사람들은 뭐가 되는 건가’라는 글에 1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새 정부의 공무원 증원과 비정규직 제로(0) 정책에 취업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노동계와 비정규직들이 큰 기대를 표하는 반면 기업과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는 “정규직이 1000명에 불과한데 비정규직 1만 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걱정”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공사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아웃소싱을 추진한 결과인데 갑자기 정책 기조가 바뀌니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일할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지 못하는 건 시장이 무능한 것이고 시장 실패”라고 단언했다. 정부가 시장의 실패를 교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올 연말까지 당초 계획(약 2만6000명)보다 46% 늘어난 3만8000명을 공무원으로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달 안에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임시국회에서 처리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일자리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부위원장은 장관급이다.
 
일자리위원회는 지난 1일 종업원 300인 이상 기업이 비정규직을 지나치게 많이 고용할 경우 고용 부담금을 물리겠다는 정책도 내놨다. 생명·안전 등 특정 업무의 경우, 민간 기업까지도 비정규직 채용을 아예 제한하는 제도를 향후 도입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공무원 숫자를 늘리는 것은 정부의 권한 중 하나지만 민간 부문의 일자리 문제까지 개입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갈수록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통념과는 달리 이명박 정부 이후 비정규직 비율은 감소하는 추세다. 정부출연 연구소인 한국고용연구원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중이 2007년 35.9%에서 지난해 32.8%로 낮아졌다. 노동계 싱크탱크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역시 같은 기간 54.2%에서 44.5%로 낮아진 것으로 추산했다. 비정규직 숫자가 100만 명 정도 늘었지만 전체 근로자 수가 더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비정규직 비율이 낮아진다는 점은 다행이나 고용의 질이 전반적으로 나빠지지 않았는지도 평가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준비생은 갈수록 공무원과 공공기관 시험에 몰리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공무원시험 준비생은 2011년 18만5000명에서 지난해 25만7000명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기준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의 5.2%에 달한다. 오준범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공시생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결과 연간 17조1429억원의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며 “이공계 중심의 교육 시스템 도입, 노동시장의 이중성 개편 등 구조적인 개혁 없이 공무원만 양산하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늘린다면 잠재성장률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정서영 인턴기자
bradkim@joongang.co.kr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개혁 뒷받침돼야 실질적 성과 난다
마크롱 “근로자-사업주 직접 교섭하라”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