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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정말 배워야 하는 것들

중앙선데이 2017.06.04 00:02 534호 34면 지면보기
학교

이윤정의 공감 대백과 사전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에서 저자 로버트 풀검이 배운 것들 
무엇이든지 나누어 가져라. 정정당당하게 행동해라. 남을 때리지 말아라…화장실을 쓴 다음에는 물을 꼭 내려라…오후에는 낮잠을 자라. 경이로운 일에 눈 떠라. 컵에 든 작은 씨앗을 기억하라. 뿌리가 나고 새싹이 나서 자라지만 아무도 어떻게, 왜 그렇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그 여자의 사전
가장 소중한 것들을 틀림없이 거기에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쳐주지 않은 곳’이라며 가장 먼저 탓을 하게 되는 것.

 
오래전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 제목을 들었을 때, 아차 싶었다. 그래 모든 건 유치원 때문일지도 몰라. 직장에서는 업무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힘에 부치고, 집에서도 살림살이고 아이 키우는 일이고 도무지 갈피를 못 잡던 30대였다. 나만 빼고 남들은 돈도 잘 벌어 집도 사고, 아이들은 영재로 키우고, 직장에서도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서 도대체 어디서 이런 것들을 배워 이렇게 잘 들 하는 건지 정말 궁금했다. 그때 이 제목을 보고 부모님을 원망했다. 왜  그때 나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으셨나요.
 
유치원에 다니지 못해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삐뚤어진 나의 마음은 학교에서 배운 것들 중에서도 쓸데없는 기억만 떠올리며 불평을 일삼는다. 예를 들어 아무리 삼사십 년 전이라고 하더라도 가정 ·가사 시간 양쪽 다 한복 바지저고리 한 벌을 바느질로 꿰매 만드는 건 왜 배워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이해가 안 되면 암기’를 하던 세대라서 지금도 바느질이 모두 끝난 저고리 옷감을 어느 구멍으로 뒤집어야 맞는지는 아직도 외우고 있지만. 남학생들은 이런 쓸데없는 것 말고 그래도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걸 배울 텐데 싶어 샘내기도 했지만, 결혼한 뒤 ‘세탁기에 모직물을 넣고 돌리면 수축된다’라는 가정 과목의 기초상식도 안 배워 비싼 스웨터를 쪼그려뜨린 남자 앞에서 “학교에서 도대체 뭘 배운 거야!”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수학시간에 배웠던 단리와 복리 이자 계산법 같은 것도 불만이다. 내가 그 문제만 나오면 틀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자 계산은 은행에서 얼마든지 해주니 일단 돈이 생기면 은행에 복리로 장기간 예금을 하라는 것 그리고 웬만하면 우리 시대에는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가르쳐줬더라면, 아니 솔직히 돈을 벌고 불리는 일이 세상 사는데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일찍이 내게 깨우쳐 줬더라면.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교육부터 혁명을 해야 한다는데, 혹시 ‘내가 꼭 알아야 했지만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아 아쉬웠던 것’을 청년들에게 가르치는 학교를 어른들이 하나씩 세운다면 어떨까. 아마도 내 학교의 커리큘럼 일부는 대략 이럴지도 모른다.
 
“자 오늘 1교시 국어- 말하기 시간에는 ‘화내지 않고 쿨하게 상대방에게 거절의사를 전달하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특히 시험에 나올 부분은 명절날 시댁식구나 친정 식구와 대화하는 법, 직장에서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구분하는 법과 대처하는 법이라고 미리 알려드리겠습니다. 2교시 경제 시간에는 직장에서 연봉 협상하는 법을 배울 거구요. 3교시 가정 시간에는 가계부 실습과 적금 및 가정 경제 포트폴리오, 그리고 결혼 한 뒤 집안일 나누는 방법을 배웁니다. 아, 특강으로 자격증 대비 수업이 있는 것 아시죠? 결혼 자격증 대비반, 부모 될 자격증 준비반이 마련되어 있으니 예비 부부, 예비 부모는 반드시 수강하셔야 합니다.
 
4교시 도덕 시간에는 앞으로 닥쳐올 인생의 커다란 실패를 견디는 방법과 함께 그러면서도 자긍심을 잃지 않는 방법 강의가 있겠습니다. 5교시 음악 시간은 평생 취미 생활로 삼을 수 있는 악기를 중급 이상으로 마스터해야 수료할 수 있습니다. 6교시 미술 시간에는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 2학점짜리 수업이 있습니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모래성 쌓기, 혹은 그것을 무너뜨리면서 깔깔 웃는 장면, 강아지와 함께 달리다 쏟아지는 햇빛을 바라보며 눈부셔 하는 순간 무엇이든 사진으로 찍어오시면 됩니다.” ●
 
 
이윤정 : 칼럼니스트. 사소하고 소심한 잡념에 시달리며 중년의 나이에도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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