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지영을 위하여

중앙선데이 2017.06.04 00:02 534호 4면 지면보기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요즘 화제입니다. 출간 7개월 만에 10만 부를 돌파했습니다. 몇 달 전 출판담당 후배가 “참 공감을 많이 한 책”이라기에 인터뷰를 추진했다고 저자가 고사하는 바람에 그냥 넘어갔던 책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정치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1일에는 영화화된다는 얘기까지 나오면서, 다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대한민국 필독서”라는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조남주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여자들이 살아온, 살아가는 과정을 마치 현미경으로 보는 것처럼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오직 여자, 그것도 대한민국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당해야 했던 일들이 이렇게 많았을 줄 미처 몰랐습니다.
 
그래도 딸을 유산시킨 김지영씨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준 할머니 의사가 있었고, 실내화가 교탁으로 날아간 것이 지영이가 한 것이 아니라고 선생님께 말한 친구가 있었고, 외진 곳에서 수상한 남자의 위협을 받게 된 지영씨를 위해 버스에서 내려 쫓아와 준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런 ‘의인’ 하나가 이 세상을 그래도 살 만하게 만드는 것이겠죠. 놀란 지영씨를 다독이며 “학생 잘못이 아니다”라고 위로하던 여성이 이렇게 덧붙입니다. “근데,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 많아요.”
 
부디 좋은 남자로서 이 땅에 존재할 수 있기를.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