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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어질러 놓은 중동 질서] 사우디·이스라엘 노골적 편들기에 아랍사회 들끓어

중앙일보 2017.06.04 00:02
트럼프, 취임 후 첫 순방지로 중동 선택 … 중동 정세에 무지 드러내
5월 20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살만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왼쪽)과 전통 칼춤을 추고 있다.

5월 20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살만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왼쪽)과 전통 칼춤을 추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순방으로 중동의 갈등이 오히려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5월 19일 워싱턴을 떠나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를 거쳐 22일부터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그리고 24일부터는 바티칸을 차례로 방문했다. 취임 100일이 넘도록 외국을 방문하지 않았던 트럼프가 첫 방문지로 이슬람 수니파와 유대교, 가톨릭의 심장부를 찾은 셈이다.
 
중동으로 가는 이유에 대해 트럼프는 지난 5월 4일 백악관 회견에서 “우리의 임무는 다른 나라들에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파괴된 중동에서 테러리즘과 싸우고 안전과 기회, 안정을 원하는 이들과 협력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의 중동 방문이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대응과 중동지역의 평화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트럼프의 방문은 중동 지역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트럼프가 중동 순방에서 벌인 가장 큰 실수는 이란을 테러를 돕는 나라라고 맹공한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이 친사우디, 반이란 정책을 펴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는 전략적으로 중동에서 사우디와 이란의 경쟁만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 양국의 경쟁은 중동의 세력 균형을 흔들어 크고 작은 분쟁을 유발할 수 있다. 사실 이란은 지난해 1월 ‘5대 강국+독일’과 핵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국제사회에 복귀하고 있는 중이다. 트럼프가 이런 이란을 흔드는 것은 중동을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또한 이란 국내에서 핵협상을 반대하는 보수파의 입지만 강화시켜줄 수 있다.
 
이란의 재기는 경쟁국인 사우디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동안 사우디는 이에 대비해 지난 몇 년 동안 기를 쓰고 석유를 증산해왔다. 사우디의 증산정책은 국제유가를 크게 떨어뜨렸다. 덕분에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에 따른 이익을 상대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미국의 숙적인 러시아의 경제까지 파탄 직전으로까지 몰아넣었다. 남미에서 반미국가의 맹주 노릇을 하던 베네수엘라를 사실상 국가부도, 경제파탄의 위기로 몰아넣는 데도 성공했다. 미국으로서는 사우디에 큰 빚을 진 셈이 됐다.
 
트럼프의 안하무인, 무지? 전략?
이런 와중에 버락 오바마가 이룬 것이라면 무엇이든 기를 쓰고 반대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본 사우디 왕실은 무릎을 쳤을 것이다. 이슬람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 왕실은 그런 트럼프의 방문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선거 유세과정에서 반무슬림, 반이민을 외쳤던 트럼프의 사우디 방문은 기존의 무지막지한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트럼프가 취임 뒤 첫 방문국으로 사우디를 택한 것은 트럼프와 사우디 모두에게 윈-윈이었다. 사우디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우디를 찾은 트럼프의 두뇌에 왕실은 두 가지를 강력하게 주입했다. 첫째, 사우디가 미국, 특히 트럼프의 친구라는 점을 뼈 속까지 각인시켰다. 지난 5월 20일 사우디와 미국은 무려 1100억 달러 규모의 방위협정을 체결했다. 양국은 향후 10년간 3500억 달러 상당의 군사장비를 거래하기로 했다. 방위 협정과는 별도로 사우디는 미국의 방위산업·제조업·정유업체들과 550억 달러 상당의 사업 거래 계약도 맺었다. 사우디로선 어차피 사야할 상품이다. 워싱턴에 앉아 있었으면 러시아 내통 게이트다, 특검 임명이다 해서 골치 아픈 일이 많은데 사우디는 그를 유능한 비즈니스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 그런 다음 사우디는 트럼프의 머릿속에 이란을 테러 국가로 낙인찍는 데 성공했다.
 
이는 이슬람 사회와 중동 정세에 대한 트럼프의 무지를 드러낸다. IS를 비롯해 시리아와 이라크, 그리고 터키과 서방국가에서 무차별 테러를 주도하는 세력은 이슬람 수니파의 일부다. 수니파는 한마디로 “왕후장상에 씨가 어디 있느냐”는 종파다. 반면 이란은 시아파 맹주국이다. 또한 이란이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반서방 노선을 걸어왔지만 자폭 테러를 비롯한 테러와는 무관하다. 이란이 중동지역에서 테러 무풍지대로 남아있는 이유다. 오히려 테러를 주도하는 IS 같은 세력이 시아파와 이란을 이교도라고 주장하며 공격한다.
 
더욱이 이란은 의외로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정책을 펼쳐왔다. 기독교인도 아르메니아 정교도, 조지아 정교도 등을 중심으로 0.15%가 존재한다. 고대 종교인 조로아스터 신봉자도 0.03%가 있으며 고대부터 거주해온 유대인도 0.01%가 있다. 8500여 명의 유대인 인구는 중동 국가에서 이스라엘 다음으로 많은 규모다. 이란의 대도시에선 기독교 교회도 십자가를 달고 예배를 진행하며 유대인 시나고그도 마찬가지다. 반면, 사우디는 국민이 다른 종교를 믿으면 사형에 처하기 때문에 전 국민이 무슬림이다. 무슬림 중 75~90%는 수니파다. 10~25%가 시아파로 추정된다. 사우디의 시아파는 주로 페르시아만 연안의 원유 생산지에 집중돼 있다. 사우디 정부는 이들이 종파상 이유로 이란과 내통할 가능성이 있다고 감시하고 있다. 사우디 내부의 보안문제는 시아파 관리에 집중돼 있다. 사우디는 종교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하다는 이야기다.
 
트럼프의 사우디 지지는 남녀차별과 인권문제가 상존하는 중동·이슬람 사회에 좋지 않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사우디의 사우드 왕가는 중세 이슬람 시대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살라피즘의 중심 세력이기 때문이다. 남녀차별이 법과 도덕보다 앞서는 나라다. 여성은 가족인 남성이 없으면 외출도 불가능한 나라다. 여성의 운전도 허용하지 않는 완고한 나라다.
 
그런 나라에 트럼프는 머리에 아무런 베일도 쓰지 않은 부인과 딸을 데리고 갔다. 유대인과 결혼으로 유대교로 개종한 딸이 트럼프와 대동했어도 사우디는 겉으론 전혀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가 전용기를 사우디에서 이스라엘로 비행하도록 허용했다. 사우디에서 공식 항공기가 이스라엘로 직항한 건 이스라엘 건국 이후 처음이다. 이슬람 국가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입에 붙이는 것조차 싫어한다. ‘시오니스트’라고 경멸 섞인 용어로 부를 뿐이다.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있는 사우디에서 이스라엘로 바로 날아간 사람은 트럼프 일행이 유일할 것이다. 트럼프가 사우디로부터 받은 최대의 환대는 언젠가 엄청난 청구서가 돼 날아올 것이다.
 
통곡의 벽에서 이스라엘 편들기
게다가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측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을 찾았다. 이곳은 딱 50년 전인 1967년 6월에 이스라엘이 점령한 동예루살렘에 위치한다. 동예루살렘에 대해 팔레스타인은 물론 국제사회도 이스라엘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역대 미국의 대통령도 이곳의 소유권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협상해 결정할 일이라며 한쪽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과거 고대 이스라엘의 신전이 있던 통곡의 벽은 지금은 그 위쪽에 이슬람의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이 들어서 있는 민감한 지역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곳을 방문해 이스라엘 편들기를 주저하디 않았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상을 하라고 했다. 팔레스타인은 물론 아랍세계의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다. 중동 아랍 사회는 분노로 들끓고 있다. 트럼프가 중동을 잘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모욕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든 아랍세계가 불편해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가 중동을 새롭게 어지럽혀 놓고 있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의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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