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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줘서 가상하다

중앙선데이 2017.06.04 00:02 534호 31면 지면보기
성석제 소설
시인 Y형을 처음 만난 건 20년쯤 되었으니 운 좋게 두 세기에 걸쳐서 친분을 가진 셈이다. 그는 소탈하고 솔직하며 시인답게 직선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털어놓는 사람이었다. 마주 앉아 대화를 할라치면 명색이 소설가인 나보다 Y형의 이야기가 훨씬 박진감 넘치고 소설처럼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를 받아적곤 했다.
 

아프리카 구호단에 족장의 환영사
‘먼 곳서 와주니 기특하게 생각’
고마워할 일 없이 수십 세대 지나
고맙다는 말 자체가 없어졌다니…

Y형은 십여 년 전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를 다녀왔다. 빈곤국가의 어린이를 구호하려는 취지로 설립된 NGO의 홍보대사가 되었고 현지에 가서 우리나라의 후원자들이 준 물품을 전달하게 되어서였다. 우리나라에서 멀고 먼 아프리카에까지 갈 기회가 많지 않은데, 막상 가서 어떤 상황에 맞닥뜨릴지 모르고 지나치게 덥거나 일정이 버거울 수도 있는데, 그래서 나 같은 소설가들은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하다가 결국 못 가고 마는데, Y형은 시인답게 가자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선뜻 응낙하고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동행은 구호단체의 직원 두 사람이었고 현지에서 또 다른 구호단체의 직원과 합류하게 되어 있었다.
 
아프리카에 가면서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를 탄 건 행선지인 B민주공화국까지 오가는 직항편이 없어서였다. 아프리카에서도 최빈국으로 꼽히는 B민주공화국은 한때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어쨌든 집에서 인천공항까지 세 시간, 인천공항에서 파리의 샤를 드골 국제공항까지 열세 시간, 경유하는 데 걸리는 시간 등 아프리카 서북부에 있는 그 나라의 수도로 가는 데만 꼬박 하루 이상이 소요되었다. 밤늦게 공항에 도착해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눈을 붙이고 나서 깨어보니 명색이 4성 호텔인데 아침이 제공되지 않았다.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구호단체에서 불필요한 비용은 단 한 푼이라도 아껴서 빈곤한 어린이들에게 주려 하다 보니 아침이 제공되지 않는 요금제를 선택했던 것이었다. 시장 한복판에서 딱딱하고 시커먼 빵을 사서 빵보다 비싼 생수와 함께 먹고 난 뒤 일행이 가야 할 마을이 속한 행정구역, 도청소재지에 해당하는 지방의 도시로 떠났다.
 
차로 열 시간을 이동한 뒤에 Y형 일행은 B민주공화국에서 수도를 제외하고는 가장 크다는 지방 도시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도시에는 외국인이 묵을 만한 호텔이 없었으므로 도지사가 자신의 사택을 내줘 하룻밤을 지내게 해주었다. 말이 사택이지 커다란 창고 같은 곳이었고 일행 각자에게 2리터짜리 생수 한 통과 벽돌, 얇은 모포가 한 장씩 주어졌다. 현지 NGO 의 직원이 설명했다.
 
“물은 여러분이 내일 아침까지 마시고 씻는 것 말고 또 다른 필요한 일에 소용되는 거니까 아껴서 쓰시기 바랍니다. 벽돌은 베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일 아침은 도지사 관저에서 식사를 제공한답니다. 오늘 저녁은 빵으로 하겠습니다.”
 
Y형은 한국에서 아내가 싸주는 라면과 고추장 등속을 필요 없다고 뿌리쳤던 것을 후회하면서 딱딱한 빵을 뜯어먹었다. 화장실은 따로 없었고 각자 알아서 해결하는 게 그 나라, 그 지역의 관습이었다. 물론 화장지도 없었는데 생수 2리터의 일부는 화장지 대용으로 쓰였다.
 
일행이 밤에 잠을 청하는 동안 도지사가 파견한 군인이 러시아 산 소총을 어깨에 메고 와서 경비를 섰다. 맹수나 도둑이 올 수 있어서라고 했다. 군인은 도지사의 창고, 아니 사택 앞의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불에 주전자를 얹어 끓인 물에 그 지역 특산의 차를 넣어서 마시면서 밤을 지새웠는데 졸릴 때마다 모닥불을 작대기로 후려치는 소리가 꿈속에서도 “딱, 딱” 하고 들렸다.
 
다음날 아침 도지사의 관저에서 얻어먹은 음식은 이틀을 굶다시피 한 일행에게는 실망스럽게도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뿐이었다. 억지로 배를 채운 일행은 다시 차에 올라 비포장도로로 대여섯 시간을 더 가야 하는 최종 목적지로 향했다. 그곳은 현지의 구호단체가 추천한 여러 후보지 가운데 하나로 인구 3천명이 사는 농촌 마을이었다.
 
탑승자들의 엉덩이에 멍이 들 정도로 덜컹거리며 흙먼지 속을 달리던 지프의 행렬은 마을을 십여 킬로미터 앞에 두고 소총으로 무장하고 말에 탄 채 달려온 남자들 수십 명에 둘러싸였다. 마을에서 마중을 나왔다는데 자기네들처럼 말을 타고 총을 들고 다니는 떼강도가 있어서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마을에 들어선 구호단체 일행은 수천 명의 마을 사람들이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는 그동안의 고생이 한꺼번에 씻겨 내려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사람들의 간절한 기다림과 기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전류와 같은 감동이 마음으로 전해졌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이 젊거나 어려 보였다.
 
일행은 임시로 만들어진 환영무대 위로 올라섰다. 나이가 예순쯤 된 마을의 족장과 어르신들이 앉아 있었다. 일행의 대표로 Y형이 인사말을 했다. 통역은 한국어(Y형)-영어(한국 NGO 통역)-프랑스어(현지 NGO 통역)-현지 언어(현지 가이드)의 순으로 진행되었으므로 간단하게 했는데도 삼십 분 넘게 걸렸다. 이어서 그들이 가지고온 물품이 무대 위에 쌓였고 족장의 환영 답사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역순으로 통역이 진행되었다. “너희들이 잠을 자지 않고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와준 데 대해 아주 기특하고 가상하게 생각하노라.”
 
어렵사리 전달된 답사의 요지였다. ‘잠을 자지 않고’라는 말은 시차가 나는 먼 나라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는데 ‘기특하고 가상하게 생각한다’는 말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 우주의 언어를 인간의 말로 통역하는 시인이라고 해도.
 
마을 사람들의 눈물 어린 환송 속에 마을을 떠나온 뒤 현지 가이드가 설명을 해 주고 나서야 Y형은 족장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그 지역의 언어에는 고맙다, 감사하다라는 표현이 없다는 거야. 그 마을 사람들은 수십 세대에 걸쳐서 누구에게 고마워할 일이 없이 독자적인 힘으로 생존해 왔다더라고. 남에게 고개 굽힐 일은 없는 대신에 먹고 살아가기가 정말 힘들었겠지. 듣고 나니 기가 막혀서 목이 다 메더라고.”
 
마을 사람 수천 명이 광장에 모여서 몇 시간씩 기다리고 있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대책 없이 목이 메었다. 나나 Y형 또한 4, 50년 전에 이름 모를 머나먼 외국에서 온 구호품을 받았던 아이였던 것이다. 
 

※‘성석제 소설’은 성석제씨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실험적 칼럼으로 4주마다 연재됩니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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