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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를 감도는 바람 같은

중앙선데이 2017.06.04 00:02 534호 27면 지면보기
미샤 엘만의 1961년 BBC라디오 리사이틀 실황을 수록한 음반

미샤 엘만의 1961년 BBC라디오 리사이틀 실황을 수록한 음반

“하늘은 어찌하여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내었단 말인가?” 적벽대전의 영웅 주유가 평생 넘지 못한 벽이었던 제갈량을 두고 뱉은 한탄이다. 20세기 초 군웅할거의 클래식계에서 바이올린 영웅들을 한숨짓게 한 인물이 있었다.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1901~1987)다. 차가운 표정,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초인적 기교, 얼음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 같은 음색. 가히 혁명적이었다.  
 

WITH 樂 :
바이올리니스트 미샤 엘만

1917년 하이페츠의 카네기홀 데뷔 공연을 본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후 수많은 연주자들은 하이페츠라는 산을 넘기 위해 손에 피멍이 들어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거대한 산 그림자에 가려 기억에서 사라졌다. 하이페츠보다 10년쯤 선배인 미샤 엘만(Mischa Elman·1891~1967)도 예외는 아니었다.  
 
엘만과 하이페츠는 공통점이 많았다. 둘 다 러시아계 유대인이었고 신동으로 각광을 받았다. 명교수 레오폴드 아우어의 촉망받는 제자들이었으며, 당대 바이올린의 신으로 추앙받던 크라이슬러의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스타일은 사뭇 달랐다. 미샤 엘만은 ‘엘만 톤’이라고 따로 불릴 만큼 귀족적이며 부드러운 음색을 갖고 있었다. 하이페츠의 이지적인 연주에 비해 템포나 비브라토에 있어서도 종종 흘러넘치는 감상적인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하이페츠가 20세기의 문을 여는 지성적 모더니스트였다면 엘만은 20세기에 남아있던 마지막 낭만주의자였던 셈이다. 그 때문인지 엘만과 하이페츠 사이에는 묘한 라이벌 의식이 있었다.  
 
성공 가도를 달리다 굴러온 돌을 제대로 만난 엘만의 입장에서는 피해의식이 있을 법하고, 하이페츠의 경우도 같은 음반사 소속으로 자신과 다른 음악관을 가진 박힌 돌이 신경 쓰였을 것이다. 둘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음반 녹음과 관련한 루머를 만들어낸다. 엘만이 인기 있는 협주곡 녹음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하이페츠 때문이라는 것이다. 음반사 RCA가 하이페츠와 계약하기 위해 녹음 곡목에 대한 독점권을 주었기 때문에 엘만에게 같은 곡을 녹음할 기회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엘만 측에서는 RCA가 하이페츠의 홍보에 더 열을 올리는 것 역시 못마땅했다. 음반사 입장에서는 저물어 가는 엘만을 지원하는 것보다 최고의 주가를 구가하고 있는 하이페츠에게 멘델스존이나 차이콥스키 협주곡 같은 인기곡을 몰아주고 이를 홍보하는 것이 음반 판매에 유리했을 것이다. 실제로 음반사와 결별하는 편지에서 엘만은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쏠림 현상에 불만을 토로했고, 그게 하이페츠를 겨냥한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최후의 낭만주의자 미샤 엘만은 이후 어찌 되었을까. 하이페츠라는 거대한 빛 속으로 순순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의 나이 60대 중반 무렵이다.  
 
그는 RCA를 떠나기 몇 년 전, 무명의 반주자를 추천 받는다. 조세프 사이거(Joseph Seiger·1942~2013)라는 피아니스트다. 이후 둘은 엘만이 죽을 때까지 많은 실내악 공연을 하고 음반을 남긴다. 아버지와 아들만큼 나이 차가 났기 때문에 주도권은 늘 엘만에게 있었다. 사이거는 엘만에게 실내악의 핵심인 ‘잘 듣는 능력’과 ‘음표 안에 없는 음악’에 대해 배웠다. 그는 이런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르며 미샤 엘만을 보필했다. 둘의 화학적 결합은 성공적이었다. 엘만이 RCA과 결별하고 새로운 음반사에서 더 넓은 레퍼토리를 녹음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이거의 응원 덕분이었다.  
 
라이벌인 하이페츠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새로운 반주자가 필요하게 된 그는 엘만의 사람임을 알면서 사이거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당시 하이페츠의 파트너라는 위치는 수입과 경력 면에서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이거는 엘만과의 의리를 지킨다.  
 
CD로 처음 공개된 1961년 BBC라디오 실황녹음에서도 두 사람의 신뢰와 조화가 잘 느껴진다. 70살이 된 미샤 엘만의 바이올린은 매끈한 벨벳 톤이 아니다. 군데군데 빛바래고 바느질도 고르지 못한 노쇠한 음색이다. 게다가 정규 녹음이 아닌지라 녹음의 결도, 밸런스도 약간은 아쉽다.  
 
하지만 느리게 시작하는 헨델의 소나타 D장조 첫 소절부터 지금은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고풍스러운 소리가 흘러나온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에서는, 비브라토를 길게 이어갈듯 한 부분에서는 한걸음에 빨리 넘어가고 또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더 깊이 내려간다. 고풍이지만 고답적이지 않고 자유롭다.  
 
반주자인 사이거는, 재즈 아티스트들이 눈빛과 호흡을 맞추며 즉흥연주를 따라가듯, 엘만의 소리 하나하나에 완전히 집중하며 반주한다. 비탈리의 샤콘느에서는 하이페츠의 비장미도, 그뤼미오풍의 세련된 애상도 없다. 대신 폐허가 된 오래된 사원을 감도는 바람이 느껴진다. 눌변의 바이올린이 주는 아련함 역시 음악의 아름다움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미샤 엘만, 최후의 낭만주의자는 이렇게 스스로 음악이 되어버렸다.  ●
 
 
글 엄상준 TV PD 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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