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일기] 문제는 경찰의 ‘인권 감수성’이다

중앙일보 2017.06.01 02:43 종합 33면 지면보기
한영익사회2부 기자

한영익사회2부 기자

경찰이 ‘인권’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수사권 조정의 전제는 인권 경찰로 거듭나는 것’이란 청와대 주문이 나온 직후 경찰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청와대 발표 하루 뒤에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의 원인이 된 살수차를 원칙적으로 배치하지 않겠다고 했다. 뒤이어 인권영향평가제 도입 등 관련 대책이 연일 발표됐다.
 
지난해 9월만 해도 경찰은 인권 문제에 미온적이었다.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에 대해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가인권위가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개선·시정조치를 권고한 141건 가운데 경찰은 95건(67.3%)만 온전히 수용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경찰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잠깐의 연극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지만 제도를 바꿔 인권을 옹호하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진짜 문제는 경찰관들의 낮은 ‘인권 감수성’이다. 서울 성동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지난달 27일 무고한 시민을 보이스피싱 피의자로 의심해 얼굴을 두들겨 팼다. 이틀 뒤인 29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모친을 살해한 뒤 시멘트로 묻은 피의자 검거 소식을 전하면서 ‘아들의 마지막 선물, 시멘트 관’이라고 적은 보도자료를 내 빈축을 샀다. 이튿날에는 서울경찰청 간부가 미성년자 성매매를 하다가 붙잡혔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인간다운 삶, 개인의 존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저지르기 어려운 일들이다.
 
일선 경찰관들은 매일 범죄자들과 씨름하다 보면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부분적으로는 이해되지만 이런 변명이 시민들의 불안을 없애지는 못한다. 자칫 인권침해로 연결될 수 있는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공무원들보다 더 예민한 인권 감수성이 절실하다.
 
우선 인권 보호를 위한 일이 귀찮은 자투리 업무라는 인식부터 없애야 한다. 이를 위해 비핵심부서로 취급되는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의 위상과 기능을 확대하면 좋겠다. 민간인이 경찰학교장을 맡고 있는 미국 뉴헤이븐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교육 기간에는 제복을 입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편견, 혐오범죄 등 에 대해 토론하며 인권 감수성을 함양한다고 한다. 상설 인권교육센터를 만들어 형식적으로 이뤄지던 경찰 인권교육을 내실화할 필요도 있다.
 
무고한 시민을 폭행하는 공권력에 수사를 온전히 맡기고 싶은 국민은 없다. 시민들의 불안감을 없애지 못하면 ‘수사권 독립’도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 경찰은 지금 역사적 순간에 서 있다.
 
한영익 사회2부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