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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vs 알파고 대국 … 프로기사들 “4차원 수 충격적”

중앙일보 2017.06.01 01:11 종합 24면 지면보기
‘알파고’가 지난달 23~27일 중국 저장(浙江)성 우전(烏鎭)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Future of Go Summit)’을 끝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는 27일 폐막식에서 알파고의 바둑계 은퇴를 선언하며 마지막으로 알파고끼리 둔 바둑 가운데 50국의 기보를 공개했다. (50국 기보 보기)
 
이 기보는 알파고끼리의 바둑이 처음으로 대량 공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간 공개된 대부분의 기보는 알파고와 프로기사의 대국이었다. 50국 기보를 통해 드디어 알파고끼리의 정면 승부를 엿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50국을 살펴본 프로기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신진서 8단은 “사람과 알파고의 대결 때보다 이번 기보는 훨씬 예상 밖의 수순이 많이 나왔다”며 “바둑의 기본 틀을 깨는 수가 많이 나와서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김영삼 9단은 “기상천외하다는 표현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50국 기보에서 알파고가 보여준 여러 파격적인 수법 가운데 세 가지를 뽑아봤다.
 
① 알파고는 ‘3·3’을 좋아해
 
<21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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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vs 알파고 21국’에서 알파고는 초반부터 8로 곧바로 3·3에 뛰어들었다. 나머지 50국 기보에서도 알파고는 유독 3·3 침입을 즐기는 경향을 보여줬다. 이는 기존의 바둑 이론과는 정반대다. 박영훈 9단은 “알파고 등장 이전까지 3·3 침입은 상대에게 저절로 세력을 만들어주는 꼴이라 초반에 바로 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알파고는 초반에 자유롭게 3·3에 두는 것이 신기하다”고 설명했다. 알파고를 통해 우리는 3·3 침입에 대해 전면적으로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② 자유자재 ‘붙임수’
 
<1국>

<1국>

알파고 바둑의 또 다른 특징은 붙임수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것이다. ‘알파고 vs 알파고 1국’에서 알파고는 10, 12로 연달아 붙임수를 선보였다. 목진석 9단은 “붙임수가 사람 바둑에 아예 없 던 수는 아니지만 초반부터 두는 경우는 없었다. 붙임수는 특수한 경우에만 두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말했다. 알파고는 ‘이런 수는 보통 이런 경우에 둬야 한다’는 고정관념 자체가 없었다. 바둑에 대한 전혀 새로운 발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③ 새로운 침입의 각도
 
<br><8국>


<8국>

알파고는 침입에서도 새로운 접근법을 보여줬다. ‘알파고 vs 알파고 8국’에서 백을 쥔 알파고는 56으로 흑 진영에 뛰어들어 58~62로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56이 사람의 바둑에서는 보기 드문 수다. 아마 커제 9단이 이 수에서 크게 영감을 얻은 듯하다. 지난달 31일 열린 제22회 LG배 16강에서 커제 9단은 강동윤 9단을 상대로 이와 비슷한 침입 수를 선보였다.
 
알파고는 이외에도 기존의 바둑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여러 차례 선보였다. 일부 수에 대해선 프로기사들도 해석 자체가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김정현 6단은 “사람보다 수준이 한참 높아 해석하기 어려운 수가 많다. 알파고 수를 이해하려면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할 거 같다”고 설명했다. 김성룡 9단은 “알파고 바둑에 대해서는 ‘해설’이 아니라 ‘감상’이라는 표현을 써야 할 것 같다”며 “알파고의 바둑은 4차원”이라고 평했다.
 
알파고가 마지막으로 남긴 50국 기보는 바둑계에 커다란 과제를 남겼다. 한국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 선수들은 알파고의 50국 기보를 책으로 만들어 지난달 30일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최정 7단은 “알파고는 사람이 흉내내기도 어려운 바둑을 보여줬다. 사람이 알파고 같이 둘 수는 없지만, 알파고는 기존 바둑의 틀이 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룡 9단은 “알파고는 바둑의 격언이 얼마나 우리를 구속했는지 알게 했고, 사람의 바둑에 생각의 자유를 주었다”고 밝혔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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