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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캠프서 '섬 발전 특별위원장' 맡았던 이색 전문가, '한국의 섬' 13권 출간

중앙일보 2017.05.31 13:33
섬 탐사 전문가 이재언 연구원(왼편 안쪽)이 2003년 6월 전남 신안군 흑산도 예리항에서 주변 섬을 둘러보기 위해 지인들과 탐사선을 타고 출항하고 있다. [사진 이재언 연구원]

섬 탐사 전문가 이재언 연구원(왼편 안쪽)이 2003년 6월 전남 신안군 흑산도 예리항에서 주변 섬을 둘러보기 위해 지인들과 탐사선을 타고 출항하고 있다. [사진 이재언 연구원]

소년은 섬이 싫었다. 도시에 비해 갈 곳도, 놀거리도 부족한 섬은 심심한 공간이었다. 섬을 에워싼 푸른 바다는 마치 감옥의 담벽 같았다.
 

섬이 싫어 섬을 떠났다가 다시 섬 전문가로 돌아온 이재언씨
전남 완도 노화도 출신…서울로 가출해 목사로 변신

선교 활동하다 매력 느껴 전국 유인도 탐사 중 죽을 고비도

이런 이유로 50여 년 전 섬을 떠난 그가 섬 탐험가로 다시 돌아왔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그는 섬에 푹 빠져 있었다.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이재언(65) 연구원 얘기다.
 
이 연구원은 지난 29일 ‘한국의 섬’ 다섯 권을 출간했다. 전북의 31개 섬(9권), 경기ㆍ인천 43개 섬(10권), 전남 여수 48개 섬(11권), 완도 57개 섬(12권), 제주도 13개 섬(13권)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앞서 그는 전남ㆍ경남ㆍ경북ㆍ충남 지역 또 다른 섬을 소개하는 책 1~8권을 냈다. 2015년 6월부터 총 13권의 책을 통해 대한민국 주요 섬을 소개한 것이다.
 
이 연구원은 섬 출신이다. 전남 완도군 완도읍에서 남서쪽으로 약 15㎞ 떨어진 완도 노화도가 그의 고향이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를 따라 우연히 육지인 목포에 왔다가 도시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 연구원은 “전기가 들어오고 수많은 자동차와 기차가 달리는 모습, 맛있는 음식을 파는 가게 등 모두 섬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섬 전문가 이재언 연구원은 지난 25년간 전국의 유인도를 돌며 탐사한 내용을 총 13권의 책에 담았다. [사진 이재언 연구원]

섬 전문가 이재언 연구원은 지난 25년간 전국의 유인도를 돌며 탐사한 내용을 총 13권의 책에 담았다. [사진 이재언 연구원]

 
이 연구원은 결국 14살 무렵 서울로 가출했다. 부모의 지갑에서 돈 몇푼을 훔쳐서다.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그는 “중국집 배달원, 신문 배달원, 구두닦이, 트럭 운전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고 했다. 이 연구원은 서울에서 우연히 알게 된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 중단했던 학업을 다시 시작하고 신학 공부까지 해 목사가 됐다.
 
이 연구원은 1990년 다시 고향 노화도를 찾았다. 교회가 없는 주변 섬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10대 때 떠난 고향에 마흔이 가까워져 돌아온 것이다. 이듬해부터 섬의 매력을 느껴 선교와 섬 탐사 활동을 병행했다. 전국 440여 개 유인도 탐사를 시작한 순간이었다.
 
목사보다는 섬 탐사 전문가에 가까워지던 무렵인 2009년 지인의 소개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연구원이 됐다. 이듬해 목사직에서 은퇴하고 본격적으로 탐사 활동에 나섰다. 도서문화연구원 측 지원을 받아 ‘한국의 섬’ 시리즈를 출간하기 위해서다. 58세의 나이에 새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섬 전문가 이재언 연구원이 2002년 7월 탐사를 위해 찾은 신안군 증도면 병풍도 한 염전에서 소금 생산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 이재언 연구원]

섬 전문가 이재언 연구원이 2002년 7월 탐사를 위해 찾은 신안군 증도면 병풍도 한 염전에서 소금 생산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 이재언 연구원]

섬 탐사 과정에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탐사선 등대호(4.5t)를 직접 운항하던 중 바다 한가운데서 고장이 나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해경 경비정으로부터 9차례나 도움을 받았다. “배가 파손돼 물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죠.”
 
1991년부터 지난해까지 25년간 전국의 유인도를 탐사하면서 역사·문화·지리 등에 대한 전문 지식을 쌓은 이 연구원은 문재인 정부 탄생에도 힘을 보탰다.
 
대선 기간 문재인 당시 후보 측은 그를 ‘전국 섬 발전 특별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낙후된 섬 주민들의 고충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아는 전문가가 이 연구원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문 대통령의 공약인 ‘연안여객선 공영제’가 도입돼 누구나 안전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섬을 여행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국의 주요 섬 정보를 담은 스마트폰 앱을 제작하는 게 그의 또 다른 목표다.  
 
이 연구원이 생각하는 섬의 매력은 무엇일까. 예상 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 연구원은 훼손되지 않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바다와 산, 풍부한 어족 자원 등이 아닌 ‘섬 사람’을 꼽았다.
 
이 연구원은 “섬 사람들은 불편을 감수하며 자신이 나고자란 고향을 지키고 살아간다”며 “때묻지 않은 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섬의 가장 큰 매력과 즐거움이었다”고 말했다.
 
목포=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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