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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정치인 풍자화도 광고물"…팝아티스트 '이하' 벌금형

중앙일보 2017.05.31 10:38
박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한 전단지를 거리에 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팝아티스트 이하(48․본명 이병하)씨에게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31일 경범죄처벌법과 옥외광고물 관리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문화예술계 "광고물 관리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국민 기만"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미친 여성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빗댄 팝아티스트 이하의 풍자 포스터.<span style=""""""font-size:""""" 13.475px;="""""""""" letter-spacing:="""""""""" -0.2695px;"=""""""""""> [이화씨 페이스북]</span>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미친 여성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빗댄 팝아티스트 이하의 풍자 포스터. [이화씨 페이스북]

이씨는 2014년 10월 20일 서울 종로구 동화빌딩 옥상에 올라가 박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내용의 그림이 그려진 전단지 4500장을 뿌린 혐의(건조물 침입 및 경범죄처벌법 위반)를 받았다. 또 같은 해 5월에는 SNS를 통해 박 전 대통령 풍자 그림을 거리에 붙여줄 사람을 모집해 글을 보고 연락한 함모씨 등에게 벽보를 주고 거리에 부착하거나 뿌리도록 교사한 혐의도 받았다.
 
이씨가 살포한 그림은 박 전 대통령이 침몰하는 종이배를 배경으로 개 여러 마리를 데리고 있는 모습과 박 전 대통령이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미친 여성의 차림으로 머리에 꽃을 꽂은 모습 두 가지였다. 이씨는 이런 방법으로 2015년 5월까지 서울과 부산, 광주 등 전국에서 박 전 대통령을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 1만8000여 장을 유포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씨가 만든 정치인 풍자 그림이 옥외광고물 관리법에서 규정한 ‘광고물’에 해당하는지가 재판의 쟁점이었다. 이씨 측은 “사건의 그림들은 광고물에 해당하지 않고, 그림을 살포하고 부착한 것은 정치적 의사 표현과 예술 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1심 재판부는 “광고의 사전적 의미는 ‘세상에 널리 알림 또는 알리는 일’이라고 정의되므로 ‘광고물’은 영리 목적이거나 상업적인 광고물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피고인의 그림이 비영리 목적으로 예술적․정치적 의견을 담았다 해도 법적인 광고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을 풍자한 그림들<span style="""font-size:"" 13.475px;="""" letter-spacing:="""" -0.2695px;"=""""> [이화씨 페이스북]</span>

박근혜,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을 풍자한 그림들 [이화씨 페이스북]

이씨의 풍자 그림 배포 행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5년 11월에도 이씨는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선고유예 확정 판결을 받았다. 2012년 5월 수의와 수갑을 차고 29만원짜리 수표를 들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을 그린 포스터 수십 장을 전 전 대통령이 사는 서울시 연희동 주택가 담에 붙인 게 문제가 됐다.
 
1, 2심은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선고를 유예했다. 당시에도 대법원은 “목적이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포스터를 부착하는 것 외에 피고인의 예술적․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이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씨는 당시 법원 판결 직후 언론의 인터뷰에서 “검찰과 재판부가 주장하는 건 ‘형식상의 문제’이지만 결국은 내용 때문”이라며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지만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어떻게 발표할 것인지도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라고 강조했다.
김어준의 파파이스 방송에 출연 중인 팝아티스트 이화씨.<span style=""""""font-size:""""" 13.475px;="""""""""" letter-spacing:="""""""""" -0.2695px;"=""""""""""> [이화씨 페이스북]</span>

김어준의 파파이스 방송에 출연 중인 팝아티스트 이화씨. [이화씨 페이스북]

 
이씨가 무죄를 받은 경우도 있다.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를 6개월여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대선 유력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의 풍자 포스터를 붙였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에서다. 이씨는 당시 백설공주 옷을 입은 박근혜 후보의 포스터를 거리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검찰은 이씨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이 있었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당시 1, 2심, 대법원은 모두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14년 6월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포스터의 대상이 대선 후보들이라 하더라도 구체적인 지지나 반대 등을 표시하는 내용이 없다면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행동을 “피고인이 지속적으로 해온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거리예술 창작의 일환”이라며 예술적 표현행위로 봤다. 당시에도 이씨의 포스터가 시내 곳곳에 나붙었지만 검찰과 경찰은 이때까지만 해도 광고물 관리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팝아티스트 이화씨가 그린 최순실 국정농단 풍자화 <span style="""""""font-size:"""""" 13.475px;="""""""""""" letter-spacing:="""""""""""" -0.2695px;"=""""""""""""> [이화씨 페이스북]</span>

팝아티스트 이화씨가 그린 최순실 국정농단 풍자화  [이화씨 페이스북]

 
검경이 정치적 표현물에 광고물 관리법을 들이대는 것을 두고 문화예술계에선 “정치적 표현에 대한 규제가 아닌 것처럼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정치적 의미가 담긴 표현물에 대해서만 법규를 까다롭게 들이대기 때문이다. 진보적 성향의 예술인 단체인 문화연대는 “정치적 소재를 다룬 예술에 대한 검찰의 대응 방식은 예술이 가진 사회비판적이고 풍자적인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우리 사회의 경직성과 보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고 지적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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