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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모독해야 할 죽음

중앙일보 2017.05.31 02:35 종합 28면 지면보기
구혜진 JTBC 사회1부 기자

구혜진 JTBC 사회1부 기자

존경했던 어른이 그저 ‘나이 든 사람’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의 경우는 비과학을 말할 때다.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든가 육각수나 수소수가 건강에 좋다고 할 때, 장 청소나 숙변 제거를 권할 때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존경과 신뢰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어디 가서 장사꾼에게 사기나 당하지 않으시길 빌게 된다. 논리를 따지고 싶은 마음은 참는다. 수소수 정수기도 조금 비쌀 뿐 정수는 될 거고, 선풍기 안 켜고 자면 더울 뿐이니. 사소한 비과학이 크게 해롭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사태를 보고 깨달았다. 이들은 자연주의 치료법을 신봉했다. 아이에게 숯가루를 먹이고, 화상 부위를 40도 물에 담그는 치료법을 전파하는 카페에 회원 수가 6만 명이었다. 많은 사람이 안아키 회원들을 조롱하지만 그들만의 잘못일까. 비과학적 믿음은 쉽게 수정되지 않는다. 당장 TV를 틀어도 어떤 음식이 병에 좋다는 근거 없는 ‘푸드 패디즘’은 찾기 어렵지 않다. 천연 예찬과 MSG에 대한 비난도 마찬가지다.
 
안아키는 막을 수도 있었다. 안아키의 계보엔 예방접종 거부 모임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이 있었고 허현회의 ‘약을 끊은 모임’이 있었다. 2012년 출판된 허현회의 책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는 베스트셀러였다. “우울증·골다공증은 의사들이 지어낸 병이다” “소금이 고혈압을 낮춘다”는 상식적이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래서 더 잘 팔렸다. 베스트셀러가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도 전문가들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음모론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다국적 제약회사의 로비’만 있으면 상식적인 비판도 기득권의 발악으로 둔갑되기 때문이다.
 
허현회는 병원을 가지 말라는 책을 쓴 지 4년 만에 죽었다. 55세. 수명이 한참 남은 나이였다. 사인은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결핵. 치료만 잘 받아도 죽음과는 거리가 멀지만 인슐린을 맞으라는 의사의 조언을 무시하고 항생제도 먹지 않다가 죽었다. 최소한 장삿속을 위한 선동은 아니었다는 데 점수를 주기엔 이미 피해가 컸다. 1, 2기 암환자였지만 그의 조언에 따랐다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은 피해자가 여럿이었다. 그의 죽음은 잠시 조롱되다 고인 모독이란 여론에 금세 잊혔다.
 
세상에는 모독해야 하는 죽음도 있다. 허현회의 죽음은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하게 죽은 사람들에게 “인류의 유전자 풀을 향상시켰다”며 주는 국제적 상인 ‘다윈상’이라도 줘야 한다. 비과학적 사고에 대한 교훈을 남기면 그의 인생도 의미가 있다. 의학뿐인가. 개개인의 발언권이 큰 시대. 과학적 비판이 결여될 때 환단고기나 디워 추종자, 타진요가 생겼다는 걸 떠올리며 허현회를 기념해야 한다.
 
구혜진 JTBC 사회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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