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훈범의 시시각각] 윤리장전을 만들자

중앙일보 2017.05.31 02:22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10년 전 이 자리에 쓴 글 덕에 욕을 바가지로 먹은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총리·장관 인사로 애먹고 있을 때였다. 재산·병역·학력처럼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깨끗한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기록 조회를 위해 본인 동의를 구하면 60% 이상이 고개를 저었고, 동의한다 해도 검증해 보면 절반 이상 탈락한다는 거였다. 100명 중에 가능한 사람이 10명도 안 남으니 후보의 능력을 따질 겨를이 없었을 터였다. ‘강부자’ ‘고소영’ 인사의 또 다른 측면이었다.
 

좌우 없이 바닥인 도덕성이 우리의 민낯
젊은 인재 좌표 잃지 않게 등대 밝혀야

이 나라 잘난 사람들의 도덕성이 그 정도라는 게 기막힐 노릇이었지만, 개탄만 하고 있기엔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썼었다. “전문적 투기나 상습적 탈세처럼 파렴치한 범죄가 아니라 그저 한 순간 욕심에서 빚어진 어지간한 오점들은 눈 딱 감고 한 번 용서해 주면 어떨지. (…) 그들 손에 걸레를 들려줘 세상을 투명하게 닦을 임무를 맡기는 건 어떨지. 그러면서 자신의 때까지 씻을 수 있게 하면 어떨지. 그렇게 함으로써 먼지가 켜켜이 쌓인 과거와 단절하고 정직한 사람이 손해보지 않는 맑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 보는 건 어떨는지.”
 
“말도 안 된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그렇다면 지난 정권 때는 왜 그런 얘길 안 했냐”는 사람도 있었고, “이 정권에서 한 자리 바라는 거냐”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해 못할 바 아니었다. 숱한 편법, 불법을 눈감아주기엔 평생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너무나 억울할 테고, 그처럼 억울한 사람들을 양산하는 사회가 바로 설 수 없을 게 분명하니 말이다.
 
나 하나 욕 먹고 세상이 달라졌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그 후 5년 뒤, 그리고 다시 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똑같은 논쟁을 다시 마주하고 있다. 달라진 거라면 공수(攻守)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이 나라 잘난 사람들의 도덕성이란 좌우를 가릴 것 없이 발목에 걸릴 정도의 수준이었던 거다. 1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하나도 나아진 게 없었던 거다.
 
그게 정녕 우리 사회의 민낯일진데, 너나 없는 허물을 놓고 되니 안 되니 입장만 바뀌어 다투는 모습이 참으로 딱하다. 5년마다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너도 당해 봐라”식 국력 낭비 행태를 보며 10년 전 주장을 다시 해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그래도 강산도 바뀐다는 시간이 지났으니 같은 말을 되풀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지간한 오점’ 뒤에 더 큰 흠결들이 양파 껍질처럼 대기하고 있는 사례가 많아 섣불리 용서를 말하기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보태야겠다. 적어도 청문회를 거치는 고위 공직자들을 구속할 ‘윤리장전(倫理章典)’을 만들자는 얘기다. 최소한 갖춰야 할 도덕성 기준을 만들어, 이전에 위반하지 않았음을 맹세하고 이후에 위반하지 않을 것임을 선서하게 만드는 것이다. 위반 사실을 숨겼다 드러나거나, 퇴임 후 위반해도 가중처벌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정도 각오가 없으면 벼슬할 생각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적 이익을 거리낌없이 추구하던 사람이 공공분야까지 기웃거리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국가도 국가지만 백성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필요하다. 뭔 죄가 있다고 허구한 날 분노를 삭이며 잘난 사람들을 용서하며 살아야 하느냔 말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재목들이 젊어서부터 흔들리지 않고 큰 뜻을 닦아나갈 수 있게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뛰어난 인재가 생각 없이 저지른 한 순간의 실수로 좌표를 잃는다면 개인의 불행을 떠나 국가로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윤리장전이라는 등대 불을 켜줄 필요가 있다.
 
“인간의 노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성을 지키려는 행동이다. 도덕성을 살아가는 힘으로 삼고 그것으로 깨끗한 의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첫 번째 과제”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다른 뜻이 아니다. 
 
이훈범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