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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인에게 김치를 판다, 서른 살 김건무 7년 도전기

중앙일보 2017.05.30 02:17 종합 14면 지면보기
김 대표는 푸드마켓에서 하루 평균 150인분을 요리한다.  [자루 인스타그램]

김 대표는 푸드마켓에서 하루평균 150인분을 요리한다.[자루 인스타그램]

부엌칼 한 번 쥐어본 적 없었다. 유학을 다녀오지도, 영어 능통자도 아니었다. 그저 ‘진짜 내 모습을 찾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군 제대 후 다니던 지방대 토목공학과를 뒤로하고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아는 거라곤 ‘기네스(흑맥주)’가 전부였지만 그러한 낯섦에 끌려 아일랜드를 목적지로 택했다.
 
7년이 지난 올 2월, 아일랜드 3대 대형마트 중 하나인 ‘수퍼밸류(Supervalu)’에 김치가 등장했다. 일명 ‘아이리시 김치’(사진)가 탄생한 것. 채식주의자를 위해 젓갈은 뺐지만 맵고 톡 쏘는 본연의 맛을 지녔다. 반응이 예상외였다. 현지인들은 샌드위치에 넣어 먹거나 파스타 소스로 활용하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김치를 즐겼다. 180g짜리 한 팩에 3.8유로(약 4800원)라는 싸지 않은 가격이었지만 월 2300여 개가 팔리고 있다. 3곳의 점포에 납품하기 시작한 김치는 현재 23곳의 수퍼밸류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아일랜드에서 판매되는 ‘자루’의 김치를 든 김건무 대표.  [자루 인스타그램]

아일랜드에서 판매되는 ‘자루’의 김치를 든 김건무 대표.[자루 인스타그램]

‘아이리시 김치’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한식업체 ‘자루(JARU)’의 김건무(30) 대표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일단 저 자신을 던져놓고 싶었어요.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죠.”
 
2010년 호기롭게 아일랜드 더블린에 도착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영어는 서툴고 주머니는 가벼웠다. 월세 30만원짜리 숙소는 새벽 3시까지 영업하는 록카페 위층에 있었다. 매일 밤 4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귀마개를 끼고 잠이 들었다. “인생은 실전이더군요. ‘하우 아 유(How are you)’로 시작되는 한국식 영어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더라고요.” 생존을 위해선 ‘영어 실력’과 ‘돈’이 필요했다. 석 달 만에 어렵사리 한식당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설거지부터 바닥 청소까지 시키는 일은 뭐든지 했다.
 
프렌치 식당서 남은 와인 맛보며 공부도
 
“쉽지 않은 시기였어요. 그런데 된장과 쌈밥을 맛있게 먹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한식을 먹는 외국인들을 보며 김 대표는 처음으로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2년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잡아 보지도 않았던 부엌칼이 손에 익기 시작했다. 이왕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김에 제대로 요리를 배우고 싶었다. 그 무렵 입학원서를 낸 더블린공대 외식경영학과에서 ‘덜컥’ 합격증이 날아왔다. 오랜 고민 없이 매니저 위치까지 올라갔던 한식당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프렌치 레스토랑 주방보조로 자리를 옮겼다. “요리를 배우려면 왠지 프랑스 요리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았어요.”
 
오전에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배웠다. 주말에는 각종 행사의 녹음이나 통역 등의 알바를 닥치는 대로 했다. 1년 학비 1만2000유로(약 1500만원)를 마련하기 위해선 쉴 틈이 없었다.
 
매장 앞에 줄을 선 아일랜드 손님들. [자루 인스타그램]

매장 앞에 줄을 선 아일랜드 손님들.[자루 인스타그램]

그렇게 다시 2년을 보냈다. “시간이 날 때면 도서관으로 달려가 음식에 관한 논문, 잡지 등을 찾아 읽었습니다. 특히 한식에 관련된 책이라면 그 자리에서 전부 읽었죠.”
 
글로만 요리를 배우진 않았다. 늦은 시간까지 레스토랑에 남아 실습을 했다. “손님들이 남기고 간 수백만원짜리 와인을 따라 마시며 맛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그때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경험이었으니까요.”
 
이론과 실력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학교에선 전액장학금 합격 소식을 알려왔다. “아일랜드에 와서 처음으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김 대표는 지난해 ‘아일랜드 시장에서의 한식의 가능성’이란 논문으로 대학을 수석 졸업했다. 박사 과정을 밟으라는 제안이 오기도 했지만 그는 사업을 선택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인들에게 맛있는 한식을 선보이고자 요리를 시작하기도 했고요.”
 
“인생은 실전, 실제로 해보니 할 만하더라”
 
현지 재료로 개발한 소뽈찜 덮밥. [자루 인스타그램]

현지 재료로 개발한 소뽈찜 덮밥. [자루 인스타그램]

김 대표는 지난해 5월 동료 두 명과 함께 한식 회사 자루를 차렸다. ‘낡았지만 튼튼한 포대자루 안에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꿈을 담겠다’는 의미다. 널리 알려진 비빔밥, 불고기가 아닌 한국사람들이 평소에 즐겨먹는 된장·갈비 등에 집중했다
 
지난해 9월 더블린 중심가에 있는 푸드마켓에서 음식을 처음 선보였는데 석 달이 지나자 입소문이 퍼졌다. 비가 오는 날에도 수십 명이 줄을 서 음식을 기다렸다. 소비자 평가가 좋아지자 수퍼밸류에서 운영하는 ‘소규모 식품 생산자 지원프로그램’에도 합격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에 한인이 1000여 명밖에 안 되는데 한식 사업이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말도 들었지만 실제로 부딪쳐보니 다르더군요.” ‘아이리시 김치’는 시작일 뿐이다. 그의 목표는 “아일랜드를 넘어 유럽 전체에 한식을 알리는 것”이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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