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정재 "걸걸한 성대까지 정교하게 구상해 연기"

중앙일보 2017.05.29 13:06
하층 계급 민중의 바뀌지 않는 운명을 그린 영화 '대립군'에서 주연을 맡은 이정재 배우.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하층 계급 민중의 바뀌지 않는 운명을 그린 영화 '대립군'에서 주연을 맡은 이정재 배우.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리더에 관한 영화라는 점에서, 또 하필 대통령이 바뀐 달에 개봉한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이 가는 영화다. 임진왜란 배경의 영화 ‘대립군’(31일 개봉) 얘기다. 제목인 '대립군(代立軍)'은 양반을 대신해 전쟁터에 나온 이들을 일컫는 말. 이들이 전쟁터에서 죽으면 그 아들이 대신 나와 싸워야한다.  오랫만에 대작을 선보인 정윤철 감독은 시사회에서 “요즘으로 치면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이들의 스토리”라고 소개했다. 여기에 의주로 피신한 무책임한 왕 선조를 대신해 18세의 나이에 정치를 펼치는 광해(여진구)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광해는 민초들과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왕, 리더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영화 '대립군'에서 양반 대신해 전쟁하는 천민 역
"산에서 살아온 사람의 성대부터 남과 다를 것이라 생각"
"극도의 사실성이 이번 영화의 차별점"
광해와 민중 이야기 다룬 '대립군' 31일 개봉

대립군 수장 '토우' 역을 맡은 이정재는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일들을 은유적으로 잘 표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영화적 장치가 잘 돼있는 시나리오여서 선택했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9월 촬영을 시작했는데 첫 미팅 때 ‘현 시류와 너무 엮지는 말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요즘 쏟아지는 도식적인 세태비평 영화들과는 거리를 두고, 시대적 은유보다는 사실적이고 충실한 재현을 앞세웠다는 설명이다. 이정재는 “제작진들은 영화 내내 어떻게 하면 더 사실적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다. 산성에서 전투하는 장면을 위해 실제로 산성을 짓고, 의상과 머리 스타일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따랐다”고 전했다.
 2013년 '관상'에서 수양대군 역을 맡아 존재감을 드러냈던 이정재는 '대립군'에서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 걸걸하고 거친 목소리와 번뜩이는 눈빛으로 조선 시대 밑바닥 인생을 그려낸다. '관상'에서 그는 도회적인 이미지라 사극이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매력적인 악역 연기를 선보였다.
 
"토우는 숱한 전투에서 허수아비 군인으로 뛰어들어 험한 인생을 살아낸 인물이다. 산과 들판 처럼 소리가 퍼지는 곳이니까 목소리도 모아서 질렀을 것이고, 성대 자체가 남들하고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빛에도 그만의 해석을 넣었다. “강한 척 하는 토우도 인간인지라 공포가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 겉으로는 세 보여도 눈빛에서는 공포가 보여야 했다. 어떡해서든 살고 싶어하는, 그래서 내면이 흔들리는 눈빛을 표현하려 했다."
보다 사실적인 인물 해석을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도 했다. “토우가 광해와 대립하는 장면에서 감독은 말로만 대립하는 정도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토우가 극도의 불안 속에 있다고 해석했기 때문에 그 에너지가 표출되길 원했다.” 결국 그 장면에서 토우는 광해를 땅바닥에 때려눕히고 힘으로 짓눌러 제압한다.
이정재는 배운 것도 없고 조상 복은 더 없는 천민이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토우' 역할을 맡았다. 양반을 대신해 전쟁에 뛰어든 인물이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정재는 배운 것도 없고 조상 복은 더 없는 천민이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토우' 역할을 맡았다. 양반을 대신해 전쟁에 뛰어든 인물이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대립군’의 모든 장면은 세트 아닌 야외 촬영이다. 정윤철 감독은 전국의 산을 다니며 촬영 장소를 정했다. 이정재는 “그간 다른 영화들의 촬영 방식과는 달랐다"며 "그저 산과 들, 계곡에서 촬영만 하는게 아니라 진짜 대립군들처럼 땅에 앉아 밥 먹고 쉬면서 풍찬노숙했다. 강풍이 불어 식사 중 수저 위 국물이 모두 날아가버릴 정도로 촬영 환경이 험했다”고 전했다.
이정재는 ‘암살’(2015), ‘인천상륙작전’(2016)에 이어 ‘대립군’까지 묵직하고 사명감 투철한 역할을 연속으로 맡고 있다. 그는 “최동훈 감독 영화 ‘도청’ 촬영에 곧 들어가는데 평범한 형사 역할이라 오히려 새로운 캐릭터가 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1993년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지 24년째. “흥행이 잘 안 돼서, 연기도 잘 안 풀려서 두려웠을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견디면서 왔다”고 스스로를 정리했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 또한 “두려워도 견디셔야 합니다”를 꼽았다. 토우가 광해에게 내지르는 소리다.
함께 한 여진구에 대해 "무시무시한 배우"라고 칭찬한 그는 정윤철 감독은 "토시 하나하나까지 본인이 손볼만큼 꼼꼼한 완벽주의자"라고 평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