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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서 대박난 김치맨 "일단 덤비세요, 이런 길도 있어요"

중앙일보 2017.05.29 11:30
한국인 최초로 아일랜드 대형마트에 한식을 유통시킨 '자루' 김건무 대표 [자루 인스타그램]

한국인 최초로 아일랜드 대형마트에 한식을 유통시킨 '자루' 김건무 대표 [자루 인스타그램]

지난 2월 아일랜드의 대형마트 '슈퍼벨류(Supervalu)'에 김치가 등장했다. 어설프게 현지화한 애매모호한 맛의 김치가 아닌 맵고 톡 쏘는 본연의 김치였다. 채식주의자를 위해 젓갈은 뺐지만 대신 식감은 아삭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이 왔다. 현지인들은 샌드위치에 넣어 먹거나 파스타 소스로 활용하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김치를 즐겼다. 3곳의 점포에서 시작했는데 현재 23곳으로 유통망이 늘어났다. 한 팩(180g)에 3.8유로(한화 약 4800원)라는 싸지 않은 가격이었지만 매달 2300여 개가 팔리고 있다.
지난 2월 아일랜드 대형마트 '슈퍼벨류'에 등장한 '자루'의 김치 [자루 인스타그램]

지난 2월 아일랜드 대형마트 '슈퍼벨류'에 등장한 '자루'의 김치 [자루 인스타그램]

 
‘아이리시 김치’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한식업체 ‘자루’의 김건무(30) 대표다. 
 
7년 전 아일랜드로 건너가기 전까진 그는 칼 한 번 쥐어본 적 없었다. 어린 시절 유학을 다녀온 금수저도 아니었다. 지방대 공대를 다니다 군 입대한 그는 그저 ‘진짜 내 모습을 찾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제대 후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아일랜드에 대해 아는 거라곤 ‘기네스(흑맥주)’가 전부였지만 그러한 낯섦에 오히려 끌렸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일단 저 자신을 던져놓고 싶었어요.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죠.”
 
2010년, 호기롭게 아일랜드 더블린에 도착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영어는 서툴고 주머니는 가벼웠다. 월세 30만원으로 얻은 저렴한 숙소는 새벽 3시까지 영업하는 록카페 위층에 있었다. 매일 밤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4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귀마개를 끼고 잠이 들었다.
 
 
“인생은 실전이더군요. ‘하우 아 유(How are you?)’로 시작되는 한국식 영어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더라고요.” 
 
생존을 위해선 ‘영어 실력’과 ‘돈’이 필요했다. 그런데 영어를 익히기 위해선 일자리가 필요했고, 일자리를 얻기 위해선 또 영어를 잘해야만 했다. 3달 만에 어렵사리 한식당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설거지부터 바닥 미싱질까지 시키는 일은 뭐든지 했다. 
“쉽지 않은 시기였어요. 그런데 제가 즐겨먹던 된장과 쌈밥을 맛있게 먹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한식을 먹는 외국인들을 보며 김 대표는 처음으로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곳에서 2년을 일했다. 난생 처음 잡아 본 부엌칼이 손에 익기 시작했고, 삼겹살·된장 같은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취향도 알게됐다. 이왕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김에 제대로 요리를 배우고 싶었다. 그 무렵 더블린공대(Dublin Institute of Technology) 외식경영학과에 원서를 내 ‘덜컥’ 합격했다. 
 
매니저 위치까지 올라갔던 한식당 일은 그만두고 프렌치 레스토랑 주방보조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요리를 배우려면 왠지 프랑스 요리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오전에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배웠다. 주말에는 각종 행사의 녹음이나 통역 등의 알바를 닥치는 대로 했다. 1년 학비 1만 2000유로(한화 약 1500만원)를 마련하기 위해선 쉴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블린공대 식품영양학과 동기들. 김 대표만이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자루 인스타그램]

더블린공대 식품영양학과 동기들. 김 대표만이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자루 인스타그램]

그렇게 다시 2년을 보냈다. 요리에만 푹 빠져 지낸 시간이었다. “시간이 빌 때면 도서관으로 달려가 음식에 관한 논문, 잡지 등을 찾아 읽었습니다. 특히 한식에 관련된 책이라면 그 자리에서 전부 읽었죠.” 
 
글로만 요리를 배우진 않았다. 늦은 시간까지 레스토랑에 남아 나머지 공부를 했다. “손님들이 남기고 간 수백만원 짜리 와인을 따라 마시며 맛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그때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경험이었으니까요.” 
이론과 실력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 무렵 학교에선 전액장학금 합격 소식을 알려왔다. “아일랜드에 와서 처음으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동안 고생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거든요.”
 
더블린 푸드마켓에서 판매하는 '자루'의 소뽈찜 덮밥 [자루 인스타그램] 더블린 푸드마켓에서 더블린 푸드마켓에서 요리 중인 김건무 대표 [자루 인스타그램]
김 대표는 지난해 ‘아일랜드 시장에서의 한식의 가능성’이란 논문으로 대학을 수석 졸업했다. 학교에선 박사 과정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그는 사업을 선택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인들에게 맛있는 한식을 선보이고자 요리를 시작하기도 했구요.” 
 
지난해 5월 동료 두 명과 함께 ‘자루(JARU)’라는 이름의 한식 회사를 차렸다. ‘낡았지만 튼튼한 포대자루 안에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꿈을 담겠다’는 의미다. 현지에서 자라나는 신선한 당근ㆍ케일 등을 한국의 전통 조리법으로 요리했다. 널리 알려진 비빔밥, 불고기가 아닌 한국사람들이 평소에 즐겨먹는 된장·짜장·갈비 등에 집중했다. 
'자루'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아일랜드 시민들 [자루 인스타그램]

'자루'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아일랜드 시민들 [자루 인스타그램]

 
지난해 9월 더블린 중심가에 있는 푸드마켓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3달이 지나자 입소문이 퍼졌다. 비가 오는 날에도 스무 명이 넘는 손님들이 줄을 서 음식을 기다렸다. 그 무렵 현지 대형마트 ‘슈퍼벨류’에서 운영하는 ‘소규모 식품 생산자 지원프로그램’에도 합격했다. 지난 2월 납품을 시작한 김치는 이미 마트의 인기상품으로 자리잡았다.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일들이 실제로 부딪쳐보니 할 만 하더군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유럽에 널리 한식을 알려야죠.”
서른살 청년 사업가가 짊어진 자루는 세상을 다 담을 만큼 커 보였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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