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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사랑받는 리더의 한 예

중앙일보 2017.05.29 03:26 종합 32면 지면보기
김호정문화부 기자

김호정문화부 기자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한 지 50년 넘은 사람도 있다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앞에 2008년 처음 섰던 이 지휘자는 33세였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곳에서 연주했던 사람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까. 날고 기는 세계적 지휘자들이 거쳐 간 지휘대는 그에게 벼랑 끝과 같았을 거다.
 
1975년생 캐나다 지휘자의 이름은 야니크 네제 세갱. 지금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다. 2008년 이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매년 초청돼 지휘했고 드디어 2010년에 음악감독으로 임명돼 2012년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2008년만 해도 단원들이 이름도 못 들었던 지휘자였다.
 
엄청난 행운아라고 하기는 힘들다. 그가 음악감독 임명자 자격으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시절인 2011년 4월 오케스트라는 파산을 선언하고 법원에 재정 보호 신청을 했다. 금융위기 후 오케스트라 수입이 1년마다 절반 정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네제 세갱이 취임하기 1년 전이었다.
 
네제 세갱은 출연료를 받지 않고 공연을 열기 시작했다. 임기가 시작되기 전인 2011~12 시즌에 4주, 임기가 시작된 2012~13 시즌에 2주를 추가로 연주하고 출연료는 받지 않았다. 새로운 지휘자 네제 세갱이 무대에 설 때마다 필라델피아 청중은 전석 매진으로 답했다. 지휘자는 고고한 예술가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청중에게 금전 후원을 적극 권유했다.
 
연주회 프로그램은 영리하게 짰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서 1999년부터 악장으로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김은 “예술적인 욕심을 위해 규모가 큰 곡, 어려운 곡을 무작정 연주했던 분위기도 있었는데 네제 세갱 시대 이후 예술과 비즈니스 사이에서 오케스트라가 조심할 줄 알게 됐다”고 전했다. 명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용기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1년2개월 만에 파산 보호를 졸업했다.
 
네제 세갱은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리허설에 나타난다. “내 꿈은 원래 교황이 되는 것이었다”는 식의 싱거운 유머를 던진다. 체중이 불어난 단원들을 모아 함께 달린 후 단체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네제 세갱의 임기를 2022년까지 연장한다고 2015년 발표했다. 그리고 1년 만에 다시 임기를 2026년까지로 늘렸다. 그는 사랑받는 리더다.
 
구성원들은 어떤 리더를 좋아하고 따르는가. 이 젊은 리더와 117년 된 오케스트라의 이야기에 몇 가지 예가 들어 있다. 오케스트라는 사회의 놀라운 축소판이다.
 
김호정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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