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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소통과 공감, 그게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중앙일보 2017.05.29 03:25 종합 32면 지면보기
김기찬 라이팅에디터고용노동선임기자

김기찬라이팅에디터고용노동선임기자

삼봉(三峰) 정도전 열풍은 여전하다. 부패한 고려를 넘어 500년 조선의 토대를 닦았다. 그는 권문세족에 당당하게 맞서 개혁을 실천했다. 정도전을 향한 열기가 식지 않는 이유일 게다.
 

조선의 신분 깎아내리기가 가난한 경제 초래
상대방을 아우르고, 양보부터 해야 개혁 가능

토지개혁이 시작이었다. 부당하게 쌓은 부를 분산하고, 집중되는 것을 견제했다. 인재 양성과 발탁 과정을 정비해 권력의 세습을 막았다. 공격과 방어 전술, 심지어 군가까지 담은 진법(陣法)도 내놨다. 부국강병책으로 자주국방의 기틀을 잡은 셈이다. 왕자는 물론 관료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기적으로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다. 이런 정책은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구현됐다. 기존 국가의 틀을 확 바꾼 건 물론이다. 그가 구상한 개혁정책의 근간은 민본사상이었다. 왕조가 아닌 백성이 중심이 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런 개혁주의자가 경제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신념을 고수했다. 어쩌면 가난한 조선의 시발점이다. 무본억말(務本抑末), 농업을 장려하고 미말(尾末)인 상공을 억제하는 정책이 그것이다. 선비의 나라, 농민의 사회라는 그럴듯한 구호 속에 양반만의 리그를 만들었다. 상인과 기술자를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자들이 모두 공(工)과 상(商)에 종사한다(조선경국전)”며 폄하했다. 그래서 “황무지를 개간해 비생산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모두 농사에 종사시켜야 한다(삼봉집)”고 했다. 심지어 어부와 선원, 목축인, 제염업자도 천대받았다. 신량역천(身良役賤-신분은 양인이나 천한 역할을 하는 계층)이라며 천민 취급을 했다. 이러니 누가 수산업과 목축을 하고, 소금을 생산하겠는가. 시장이 활성화될 리 없다. 외국과 문물교류도 기대하기 힘들다. 고립과 분단된 시스템 탓에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셈이다.
 
삼봉의 개혁을 다시 들여다보는 건 지금 우리와 대비할 수 있을 듯해서다. 촛불은 박근혜 정부를 파면했다. 코리아를 리셋(reset)하라고 요구했다. 그 토대 위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현 정부에 국민이 바라는 건 삼봉의 개혁과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알을 깨는 작업의 연속이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몰아치듯 개혁조치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내용이 많다. 탕평·파격인사도 회자된다. 국민의 기대치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까닭이다.
 
한데 불안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속도를 이기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속도가 높아지면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다. 그러다 오류가 생긴다. 청와대와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둘러싼 대립도 혹 그런 차원은 아닐까 우려된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지난주 자체 포럼에서 “기업마다 다른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비정규직은 안 된다는 인식은 현실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청와대가 강하게 경고했다. 경총에 대해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한 축으로 책임감을 갖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기업은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쓴 경우가 많다. 외환위기 이후 심해졌다. 그러면서 늘 앓는 소리를 했다. 과실을 골고루 나누는 데 소홀했다. 심지어 대기업은 노조와 야합하는 행태도 보였다. 그들끼리만 잘 사는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제압이란 해석이 나올 정도로 의견을 무시하는 건 어색하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견을 제기하는 게 의무”라고 문 대통령이 당부했던 걸 떠올리면 더 그렇다. 더욱이 경총은 노조와 함께 사회적 파트너다. 전 세계 모든 국가에 경총이란 조직이 있는 이유다. 그런 조직의 의견을 일언지하에 자르는 건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그 어느 때보다 통합이 중요한 시점이다. 네 편 내 편이란 이분법으론 통합이 불가능하다. 모든 경제·사회 주체는 나름의 논리를 지니고 있다. 의견이 다른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면 신분을 따지거나 편을 가르기보다 아우르는 게 우선이다. 각 부문이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내가 먼저 내려놓을 수 있는 것부터 찾으면 안 될까. 그렇게 소통과 공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리셋 코리아의 첫 발일 듯싶다. 시간을 두고 고쳐야 할 게 너무 많아서 하는 말이다.
 
김기찬 라이팅에디터 고용노동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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