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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낮은 자세의 소통, 초심을 잃지 마라

중앙일보 2017.05.29 03:09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진국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청문회에 발목이 잡혔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청문회 통과가 불투명하다. 문 대통령이 처음 인사를 발표할 때만 해도 쉽게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꼬였을까.
 

국정 운영 박수 받고 있지만
인사청문회에 발목 잡혀
공직 배제 5대 원칙이 문제
여야 새 기준 마련해야 하지만
문자 폭탄, 완장의 오만 버리고
먼저 낮은 자세로 설득 나서야

공직 후보자들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 전체 안배와 능력, 도덕성. 어느 쪽을 살펴봐도 고개를 저을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처음 내정할 때는 박수 받은 인사다. ‘친문(親文)’을 피했다. 여성을 배려했다. 일부 경험 부족에 대한 지적은 있었지만 기수가 지배하는 검찰·군·외교부를 개혁하려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전체 국정 운영도 찬사를 받았다. 소박한 취임행사, 야당부터 먼저 찾아가는 겸손한 행보…. 흠잡을 데가 없었다. 거기에는 측근을 배제한 탕평인사도 큰 몫을 했다. 이혜훈 바른정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너무 잘해 “솔직한 말씀으로 무섭다”고 했을 정도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앞으로 5년간 문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할 것이란 여론이 88%였다.
 
문 대통령 스스로 공언한 ‘공직 배제 5대 원칙’이 문제다.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 표절. 이런 문제와 관련된 사람은 고위 공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이 다 다르다”고 해명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변명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강조해 왔다. 교조주의에 빠질 위험이 지적됐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심지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까지 ‘적폐’ 딱지를 붙였다. 도덕성을 독점했다.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도덕적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었다. 임기 초 개혁을 밀어붙이면서 ‘빵 한 조각에 얽힌 사연’을 무시하는 경향도 보였다. 검찰 개혁은 필요하다. 엄벌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만찬 회동을 강등과 수사로까지 끌고 간 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문 대통령이 어렵게 해소한 완장에 대한 두려움도 다시 불거졌다.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선거 내내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문재인 불가론’ 탓이다. 문재인을 떨어뜨릴 수만 있다면 누구든 찍겠다는 표들이 몰려다녔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서 황교안 전 총리로, 안희정 충남도지사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로, 마지막에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까지 여야와 진보, 보수를 넘나들며 흘러 다녔다.
 
‘친문 패권주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문 대통령보다 그 주변에 대한 경계심이 컸다. 도덕적 오만, 배타적 정의, 다른 의견에 대한 불관용, 전투적인 공격성…. 노무현 정부에 대한 학습효과, ‘완장 문화’에 대한 걱정이 컸다. 지지를 선언하지 않으면 모두 청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문 대통령의 측근 배제는 신의 한 수였다. 이호철 전 민정수석,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을 외국으로 보냈다. 그것으로 완장에 대한 두려움을 한꺼번에 씻어 냈다. 큰 부담을 덜었다. 완장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 냈다. 또 자리 다툼을 한꺼번에 정리했다. 일찌감치 대세론을 탄 캠프 안에는 자리를 둘러싼 신경전이 치열했다. 하지만 측근을 잘라 내는 것으로 단칼에 해결했다. 덕분에 전리품 잔치가 아닌 탕평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며 벗어던진 완장이 다시 등장했다. ‘문자 폭탄’이다.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은 2500통 이상 항의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경대수 한국당 의원은 문자 테러 때문에 아들의 가슴 아픈 병명을 TV 앞에서 공개해야 했다. 이게 처음은 아니다. 선거 과정에도 경쟁 후보 진영에 무차별 문자 폭탄을 퍼부었다. 뒤에 문 후보를 도운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그 피해자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의 표현을 막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조직적 공격으로 폭력이 돼서도 안 된다. 청와대나 민주당은 관계없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문자 폭탄을 ‘양념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청래 전 의원은 트위터에 “세상이 바뀌었다. 적응들 하시길”이라고 날렸다. 서버 접속은 합법이라도 디도스 공격은 범죄다.
 
인사청문회가 지나치게 원칙에 매이면 좋은 사람을 놓치게 된다. 인민재판으로 난도질하면 무능한 도덕군자만 남게 된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새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 시작하나. 강훈식 민주당 대변인도 “우리도 위장전입을 이유로 인사에 비협조적이었다”라고 인정했다. 잣대를 바꾸는 건 정치적 결단이다. 야당은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고 요구한다. 그동안 낮은 자세를 보여 오지 않았나. 문제를 푸는 데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건 소모적이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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