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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비정규직 33% vs 53% … 재계·노동계, 분류 기준 큰 차이

중앙일보 2017.05.29 02:44 종합 6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우려를 나타내고, 이에 문 대통령이 “경총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유감을 표명한 것은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대통령과 재계의 인식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또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28일 “경총 주장과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며 “재벌이 먼저 반성하라”고 요구했다. 경총은 29일 정기회의 안건으로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왜 이렇게 서로 간의 인식 차이가 큰지,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이 주요 경쟁국보다 심각할 정도로 높은 것인지 팩트체크 해봤다.
 
 
① 근로자 절반이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등 논란
비정규직 규모에 대해 노동계는 한국 근로자 절반 이상(53.4%)이라고 주장하고, 재계는 3분의 1 이하(32.8%)로 본다. ‘비정규직’은 법에 나오는 용어가 아니다. 관례상 ‘정규직이 아닌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통칭할 뿐이다.
 
 
2002년 7월 노사정위원회는 ▶특수근로 종사자 ▶재택근로자 ▶파견근로자 ▶용역근로자 ▶일일 근로자 ▶단시간 근로자 ▶기간제 근로자 ▶(기간제 근로자가 아닌) 한시적 근로자를 비정규직으로 규정했다.
 
통계청이 노사정위 기준으로 집계한 지난해 비정규직 규모는 644만 명으로 전체 근로자(1962만 명)의 32.8%다. 재계는 통계청 자료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노동계의 주장과 20% 이상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뭘까.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회색지대를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에 따라 집계가 확확 달라진다.
 
이런 회색지대 중 하나가 기간을 정하지 않고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무기계약직)다. 통계상 정규직이지만 임금·복지 수준이 정규직보다 낮다는 점에서 비정규직의 특성이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이런 유형 등을 비정규직으로 계산하면 비정규직(874만 명)이 전체 노동자의 44.3%라고 계산했다. IBK기업은행이 주로 지점 창구에서 일하는 무기계약직 3000여 명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학계에선 대체로 이들을 비정규직으로 본다.
 
 
 
② 캐디·학습지교사는? 내부서도 정규직화 찬반 갈려
‘회색지대’ 논란의 핵심은 사내도급 근로자(92만 명)와 특수고용직(179만 명)이다. 노동계에선 무기계약직에 이들까지 합쳐 비정규직이 53.4%라고 주장한다.
 
사내도급 근로자는 협력업체가 고용한 근로자다. 예를 들어 현대중공업이 크레인과 같은 대형 장비를 사용해서 선박을 건조할 때 크레인 업체에 해당 업무를 맡기면 이 회사 크레인 기사가 현대중공업에서 일하게 된다. 이때 크레인 기사가 현대중공업의 비정규직 근로자라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반면 재계는 이 크레인 기사가 협력업체 소속 정규직이라면 현대중공업 입장에서도 정규직이라고 맞선다.
 
신분보다 중요한 건 정규직 전환 여부다. 재계는 이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면 기업 경쟁력·효율이 낮아진다고 우려한다. 극단적인 사례로 배를 만들 때 크레인 작업이 딱 한 번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이때 사내도급이 불가능해 크레인 기사를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면 인건비가 과도하게 상승한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반면 노동계는 ‘사실상 비정규직’이라며 이들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크레인 기사에게 크레인 이외의 다른 업무를 교육시키면 충분히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또 골프장 캐디나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직은 대기업과 ‘근로계약’이 아닌 ‘위촉계약’을 맺는다. 이들은 근로소득세가 아니라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일종의 개인사업자다. 특수고용직 내부에서도 정규직 전환에 대해 찬반이 엇갈린다. 계약건수 등 실적에 따라 보수를 지급받고 근무 시간·장소·방법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있고, 업무가 결국 손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③ OECD 기준 외국보다 높다? 네덜란드 20%, 한국 22%
재계의 주장(32.8%)을 받아들이더라도 비정규직 비율이 다른 나라 대비 너무 높다는 주장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단기 근로자 비율’에 따르면 독일(13.1%)·캐나다(13.4%)는 물론 고용 환경이 나빠진 스페인도 단기 근로자 비율이 25.1%에 불과하다.
 
그러나 OECD 통계는 파견근로자·일일 근로자가 제외된 수치다. 한국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비정규직 비율은 32.8%에서 22.3%로 내려간다. 독일에 비하면 높지만, 네덜란드(20.2%) 같은 선진국과는 큰 차이가 없다. 이는 파견·시간제·기간제 등 근로자 세부 유형을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비정규직 비율은 심각하다는 주장도 있다. 300인 이상 대기업의 공시자료 기준 비정규직 비율은 190만 명이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대기업 근로자(473만 명) 중 비정규직 비율은 40.2%로 평균(32.8%)보다 높다.
 
다만 통계의 신뢰도에 한계가 있다. 대기업마다 정규직·비정규직 공시 기준이 다르다. 예컨대 삼성SDS 소속 A씨가 관련 기업인 삼성전자의 전산업무 관리를 위해 삼성전자에서 근무 중이라면 A씨는 삼성SDS 정규직이지만, 삼성전자 비정규직으로 분류할 수 있다. 결국 통계상 대기업 비정규직 비율은 실제보다 다소 높게 잡히는 효과가 있다.
 
비정규직 절대 비율보다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의 ‘질’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대기업 정규직이 100만원을 벌 때,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5만원을 번다. 건강보험·고용보험 등 4대 보험 가입률도 비정규직(52.7~66.7%)이 정규직(95.4~97.9%)보다 크게 낮다.
 
이상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올라서는 사다리가 될 수 있다면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양질의 일자리로 이어지는 사다리를 구축하기 위해 노사가 머리를 맞댈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사내하청 근로자
원청업체로부터 특정 업무를 완성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보수를 받는 하청업체가 고용한 근로자. 사내하청 근로자는 원청업체가 맡긴 일을 하지만 근로계약은 하청업체와 체결한다. 따라서 하청업체가 업무를 지시한다.
◆특수고용자
사업주와 직접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노동을 제공하는 개인사업자 형태의 근로자. 기업이 근로자를 지휘·감독하는 것과 달리 특수고용자는 근무 시간·장소·방법 측면에서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자율적으로 일한다. 대신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는다. 화물차 운전사,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등이 대표적이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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