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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의 차이 나는 차이나] 미국 도피해 연일 폭로전 … 중국 “궈원구이 입을 막아라”

중앙일보 2017.05.29 01:34 종합 20면 지면보기
중국에서 최근 방영된 52부작 드라마 ‘인민의 이름으로’가 공전의 시청율을 기록하고 막을 내렸다. 엄격한 사전검열로 여태껏 중국 TV에선 볼 수 없었던 중국 권력층의 부패와 음모를 있는 그대로 과감히 그려낸 ‘리얼리티’ 가 중국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왕치산, 미국에 처제 명의 호화저택
전 미국 대사, 중국 미인계 걸려 사임
이제 시작 … 공개회견 통해 증거 제시”
중 당국, 인터폴 수배 … 보도내용 삭제
일부선 상하이방 핵심 쩡칭훙 배후설

드라마 초반 부정축재 사실이 탄로난 딩이전(丁義珍) 부시장은 미리 준비해둔 위조 여권을 사용해 미국으로 도피한다. 체포 일보직전 그를 놓친 주인공 검찰관이 분하고 허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중국의 부패분자는 전부 미국으로 가는군.”
 
아닌게 아니라 중국의 부패사범은 미국을 선호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부패사령탑인 중앙기율검사위가 대표적인 해외도피범으로 홈페이지에 신원을 공개한 100명중의 40명은 지금 미국에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다른 사람은 다 놓치더라도 중국 당국이 반드시 잡아들여야 하는 도피범이 두 명 있다. 한 사람은 링완청(令完成), 또 한 사람은 궈원구이(郭文貴)다. 중국은 2015년 9월 두 사람의 송환을 미·중 정상회담 의제로 삼으려 했다. 시 주석의 방미 직전 멍젠주(孟建柱) 정법위 서기가 특사로 가 강제송환 문제를 사전협의한 것이다. 미국이 응하지 않아 실현되지 않았지만 중국이 두 사람의 신병 확보에 얼마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멍에 앞서 왕치산(王岐山) 기율위 서기가 직접 방미를 추진한 적도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링완청은 낙마한 링지화(令計劃) 전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의 친동생이다. 링지화는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비서실장을 오래 지낸 ‘문고리 권력’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의 일가족들이 산시(山西)성의 거대한 석탄 이권을 쥐락펴락했다. 하지만 아들의 페라리 승용차 교통사고를 무마하려던 사건을 계기로 링지화 일족이 모두 수사망에 오르자 링완청은 미국으로 탈출했다. 그는 중국 최고권력층의 비밀을 누구보다 많이 아는 사람으로 통한다.
 
궈원구이 정취안(政泉)홀딩스 회장은 중국의 부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던 부동산 재벌이다. 베이징의 랜드마크인 판구다관(盤古大觀)은 궈가 올림픽 경기장 인근 부지를 싼 값에 사들여 세운 것이다. 용의 형상을 본떠 설계한 이 아파트는 중국에서 가장 비싸다. 그의 든든한 동아줄은 중국의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의 마젠(馬建) 전 부부장이었다. 궈와 마는 뇌물 뿐 아니라 업무상 취득한 기밀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는 관계였다. 궈의 신규사업 승인에 협조하지 않던 류즈화(劉志華) 전 베이징 부시장이 홍콩에서 불륜관계를 맺는 장면을 촬영하고 낙마시킨 것도 두 사람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부패는 서로 얽히는 법, 링지화 사건 수사과정에서 마 부부장의 각종 비리가 드러났고 궈도 수사망에 포착됐다. 안전한 홍콩에 머물며 기회를 엿보던 그는 2015년 더 안전한 미국으로 도피했다.
 
공개적으로는 입을 다물고 있는 링완청과 달리 궈는 최근 핵폭탄급 발언을 잇달아 터뜨리고 있다. 올 초부터 화교 매체나 외신 인터뷰, 혹은 트위터를 통해 중국 고위층의 비밀을 폭로하기 시작한 것이다. 압권은 지난달 19일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였다.
 
“나는 안전부와 공안부의 부탁으로 부패 관료의 해외 재산을 뒷조사하는 임무를 해 왔다. (시 주석의 지시를 받은) 푸정화(傅政華) 공안부 부부장이 왕치산 서기와 국영기업 하이난(海南)항공의 관계를 살펴보라고 부탁도 했다. 왕은 처제의 명의로 미국에 거액의 부동산을 갖고 있다.”
 
왕치산은 청렴한 성품에 자식이 없어 부패와는 거리가 멀고, 그래서 시진핑 주석이 절대 신뢰해 반부패 업무를 맡겼다는 세간의 상식과는 정반대의 내용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3시간 예정의 생방송 인터뷰는 한 시간 20분만에 돌연 중단됐다. 베이징에선 중국 외교부가 미 국무부에 강력 항의해 방송을 중단시켰다는 소문이 퍼졌지만 VOA는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게리 로크 전 주중 미국 대사가 중국의 미인계에 걸려들어 사임했다는 등의 폭로를 잇달아 내놓았다. 궈가 부패혐의를 폭로한 고위관리는 10명이 넘는다. 진위 확인이 어려운 내용이 많았지만 그가 안전부 부부장과 공생관계였던 점 하나만으로도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VOA 인터뷰 가운데 일부는 사실로 드러났다. 미국 화교대상 매체인 세계일보는 “왕치산 처제인 야오밍돤(姚明端)의 명의로 된 534만달러(약 60억원)의 호화주택이 실리콘밸리 인근에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매체는 “화교들이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이 주택앞에 몰려와 기념사진을 찍는 등 명소가 됐다”고도 썼다. 또 궈가 금융권의 거물을 특정해 곧 체포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한두달 후 사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중국은 궈가 일으킨 파문을 무마하기 위해 전전긍긍이다. 당국은 인터폴을 통해 궈를 적색수배 대상에 올렸다. 동시에 철저한 보도통제와 여론전에 나섰다. VOA 보도 내용 등은 모두 인터넷에서 삭제됐다. 반면 수감 중인 마젠의 입으로 궈의 범죄사실을 밝힌 20여 분짜리 동영상을 배포했다. 중국의 친정부 매체들은 궈의 비리를 보도하면서 각종 성범죄 의혹도 덧붙였다. 파렴치한 부패범의 입에서 나온 말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다.
 
궈는 VOA 인터뷰 이후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증거를 제시할 것이며 이제 시작일 뿐이다. 변호사와 상의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일정이 잡힌 건 없다. 일각에선 그의 배후를 의심하기도 한다. 시진핑 집권 이후 반부패 캠페인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파벌 상하이방(幇)의 핵심인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 부주석이 궈를 통해 반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궈의 배후인 마젠과 쩡이 밀접한 관계였기 때문에 나돌고 있는 관측이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늘 그렇듯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연속극 ‘인민의 이름으로’는 예정된 날짜에 한 편씩 방영하고 막을 내렸지만, 궈원구이 주연의 부정기 드라마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막을 내릴지 알 수가 없다. 그러고보니 5년마다 중국 권력 재편이 이뤄지는 공산당 당대회가 올 가을에 열린다. 당대회를 앞둔 때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정변이 일어났던 게 중국의 전통이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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