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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1000년만에 사천 시골마을에 되살아난 고려 안종·현종 부자

중앙일보 2017.05.29 00:01
지난 22일 경남 사천시 능화마을에서 고려 현종·안종을 추모하는 제1회 귀룡제가 열렸다. [사진 사천시]

지난 22일 경남 사천시 능화마을에서 고려 현종·안종을 추모하는 제1회 귀룡제가 열렸다.[사진 사천시]

경남 사천시 사남면 우천리 능화마을. 창원 구(具)씨 30여 세대가 사는 집성촌이다. 마을에는 400년 역사의 아름다운 숲(능화숲)이 있다. 숲속에는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고, 숲 동쪽에는 고자봉(顧子峰)·능화봉(陵華峰·해발 285m)이 있다. 그 사이로 고자실(顧子室)이라는 맑은 계곡이 흐른다. 여름철이면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피서객이 찾는다.  
 

고려 8대 현종의 아버지 안종 능묘 이장 1000년 맞아
능묘있던 경남 사천 능화마을 주민, 제1회 귀룡제 개최
비운의 현종과 안종 부자 추모하고 마을역사 되새겨
사천시는 2015년부터 안종·현종 부자 상봉길 등 조성

지난 22일 경남 사천시 능화마을에서 고려 현종·안종을 추모하는 제1회 귀룡제가 열렸다. [사진 사천시]

지난 22일 경남 사천시 능화마을에서 고려 현종·안종을 추모하는 제1회 귀룡제가 열렸다.[사진 사천시]

이곳의 능화봉 중턱에서 지난 22일 사천의 기관단체장, 출향인사, 마을 주민 150여명이 모여 제1회 귀룡제(歸龍際)를 열었다.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제사 음식을 준비했다. 주민들은 별도의 먹을거리도 준비해 능화마을 큰잔치도 열었다.  
 
지난 22일 경남 사천시 능화마을에서 고려현종·안종을 추모하는 제 1회 귀룡제의 모습.[사진 사천시]

지난 22일 경남 사천시 능화마을에서 고려현종·안종을 추모하는 제 1회 귀룡제의 모습.[사진 사천시]

귀룡제는 ‘용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사는 동네’, ‘돌아갈 용이 사는 동네’(귀룡동·능화마을)란 뜻에서 따온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용은 고려 8대 현종과 그의 아버지 안종을 지칭한다. 과연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981년 고려 경종이 사망하면서 경종의 제4비인 헌정왕후는 궁에서 나와 살았다. 이때 그 이웃에 왕욱(태조 왕건과 제5비 신성왕후의 아들)이 살았다. 두 사람은 자주 왕래하다 보니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결국 정을 통해 헌정왕후는 왕욱의 아이를 가지게 됐다. 이 같은 사실이 성종에게 알려진 직후 헌정왕후는 갑자기 산고를 느껴 아이를 낳고 곧바로 죽었다. 이때 태어난 아이가 왕순(훗날의 현종)이다. 왕욱은 선왕의 태후를 범한 간통죄로 탄핵받고 경상도 사수현 귀룡동(지금의 사천시 능화마을)으로 귀양을 당했다. 
 
고려 8대 현종과 그의 아버지 안종 부자 상봉길 조성 위치도. [사진 사천시]

고려 8대 현종과 그의 아버지 안종 부자 상봉길 조성 위치도. [사진 사천시]

후일 왕순은 성종의 명에 따라 2살까지 보모에게 맡겨져 궁밖에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성종의 명으로 왕순이 궁에 들어왔는데 '아비(왕욱)'를 찾는 모습을 보고 성종이 왕순을 아버지 왕욱에게 보냈다.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살지는 못하게 했다. 아들 왕순은 지금의 사천시 정동면 대산마을 배방사에 거주했다. 왕욱은 매일같이 사남면에서 배방사까지 찾아가 아들을 보는 것을 즐거움 삼아 귀양살이를 했다.
 
경남 사천시 사남면 정동면에 있는 현종 ·안종 부자상봉길에 있는 포토존.[사진 사천시]

경남 사천시 사남면 정동면에 있는 현종·안종 부자상봉길에 있는 포토존.[사진 사천시]

아들은 996년 아버지가 죽고난 이듬해인 997년(6살때) 귀경했다. 당시 왕욱은 아들에게 “내가 죽거든 성황당 남쪽 귀룡동(능화마을)에 엎어서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현종은 1009년 2월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 왕욱을 안종으로 추존했다. 이어 재위 8년인 1017년 음력 4월 왕욱의 능묘를 개경으로 이장했다. 앞서 현종은 1011년에 교서를 내려 “사수현을 승격시켜 사주로 하라”고 명을 내리기도 했다. 『고려사』등에 나오는 내용이다.
경남 사천시 정동면 대산마을에 있는 벽화. 고려 현종·안종부자 상봉을 형상화했다. [사진 사천시]

경남 사천시 정동면 대산마을에 있는 벽화. 고려 현종·안종부자 상봉을 형상화했다. [사진 사천시]

 
올해로 안종 능묘 이장 꼭 1000년이 됐다. 능화마을 역사문화회 구종효(61)사무국장은 “능묘 이장 1000년을 맞아 비운의 현종과 안종의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제사를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능화마을과 능화봉 모두 안종의 능지(왕릉 터)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유래했다.   
 
경남 사천시 사남면 능화마을에 그려진 현종·안종 부자의 상봉을 그린 벽화.[사진 사천시]

경남 사천시 사남면 능화마을에 그려진 현종·안종 부자의 상봉을 그린 벽화.[사진 사천시]

능화마을 주민들은 지난 2월 경남 문화예술진흥원 공모사업에 당선된 것을 계기로 이 같은 귀룡제를 지냈다. 문화공동체 조성과 마을 관광지화를 위해서다. 아울러 주민들은 마을 길·흉사가 있을 때마다 ‘음식 만들어 나눠 먹기’, 사천문화원의 지원을 받아 ‘풍물놀이단 운영’같은 활동을 하기로 했다. 안종을 추모하는 제례 때는 마을 큰 잔치를 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주민들은 구종효 사무국장을 중심으로 역사문화회도 구성했다. 문화회 회장은 구진도 마을 이장이 맡고, 부회장은 경로회장이 맡았다.  
 
인근 정동면 학촌마을과 대산마을에서는 2015·2016년 두차례 ‘고려 현종 부자 상봉축제’도 열렸다. 안종·현종 부자간 만남을 재조명하고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확고히 하자는 뜻에서다. 이어 지난해에는 현종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대산마을과 학촌마을 등의 담벼락에 부자 상봉을 보여주는 벽화도 그렸다. 능화마을~안종능지~고자실~학촌마을~대산마을~배방사지에 이르는 총 10㎞에는 비운의 부자상봉길을 조성 중이다. 부자상봉길은 내년 완료될 예정이다. 이미 곳곳에 안내판과 조형물·표지석 등이 설치됐다.
 
사천시가 2년여 전부터 현종·고종 부자의 역사적 발자취를 스토리텔링화해 관광자원화하려는 것이다. 귀룡제는 이 같은 사천시 사업에 마을 주민이 스스로 힘을 보탠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천=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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