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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자의 미모맛집]20 냉면은 평양이 진리? 진주에 가면 생각이 달라진다

중앙일보 2017.05.29 00:01
냉면의 계절이다. 요즘 이렇게 말했다가는 냉면 매니아들에게 혼쭐난다. 그리고 “냉면은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지. 여름엔 냉면집에서 줄 서서 먹는 것도 질색이다.” 이런 면스플레이너들의 잔소리를 듣게 된다. 그런들 어쩌겠나. 냉면집 사장님 통장은 결국 여름 장사가 책임지는 것을. 그리고 더위에 지칠 때면 시원한 국물 생각이 간절한 것을. 올해는 서울 3대니 5대니 하는 평양냉면도 좋지만 색다른 냉면을 좀 먹어보면 어떨까. 하연옥(경남 진주)을 시작으로 뽀빠이냉면(전북 군산) 등 기자들이 최근 지방 출장을 다니며 먹은 이색 냉면을 4회에 걸쳐 소개한다. 
비빔밥처럼 두툼한 고명을 얹어주는 진주식 냉면. 70년 전통을 이어온 하연옥은 진주냉면을 하는 대표 식당이다.

비빔밥처럼 두툼한 고명을 얹어주는 진주식 냉면. 70년 전통을 이어온 하연옥은 진주냉면을 하는 대표 식당이다.

해산물 육수…메밀소바 느낌도  

70년 역사 이어온 진주 하연옥
해산물로 끓인 육수 감칠맛 강해
소고기 육전 등 두툼한 고명도 개성

 
냉면만큼 연고 따지는 음식도 드물다. 평양·함흥 등 이북 냉면이 견고한 지지를 얻으며 기득권 자리를 꿰차고 있다. 정작 냉면 마는 사람은 별 말 없는데 지지자들이 유별나다. 그런데 반대파도 만만치 않다. 특히 평양냉면이 그렇다. ‘심심(혹은 슴슴)한 맛’이 맛의 범주에 들기나 하냐며 성을 내기도 한다. 
이북 냉면 못지않게 두터운 팬층을 가진 냉면이 있다. 바로 경남 진주냉면이다. 소고기와 함께 해산물 우린 국물, 수북한 고명은 진주냉면만의 특징이다. 진주와 가까운 사천에서도 비슷한 냉면을 먹었다는데 진주냉면처럼 전국적인 브랜드로 자리잡지 못했다.
진주냉면은 유서가 깊다.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은 2009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진주는 평양과 더불어 기생문화가 꽃을 피웠던 곳이다. 20여 년 전 경남 의령에서 만난 기생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당시 한양에서 내려온 한량들이 요정에서 술 한 잔 한 뒤 기생들을 데리고 2차를 먹던 곳이 냉면집이었다.” 
1945년 진주에서 ‘부산식육식당’을 열고 냉면을 팔던 황덕이(88) 할머니가 2009년 당시 했던 말도 비슷하다. 황씨는 “40년대까지도 서울 ‘돈쟁이들’이 냉면 먹으러 차를 몰고 진주까지 왔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무렵까지만 해도 진주 나무전거리에 냉면집만 6~7곳이 있었다고 한다.  
하연옥 물냉면 육수는 해산물을 넣고 끓여 감칠맛이 강하다. 고명으로 올리는 소고기 육전과 함께 묘한 조화를 이룬다.

하연옥 물냉면 육수는 해산물을 넣고 끓여 감칠맛이 강하다. 고명으로 올리는 소고기 육전과 함께 묘한 조화를 이룬다.

지금까지 명맥이 끊이지 않고 냉면을 만드는 집은 사실 많지 않다. 진주 이현동에 있는 하연옥(055-746-0525)이 돋보이는 이유다. 황씨 막내사위인 정운서(58) 사장이 냉면 기술을 전수받아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전통은 깊은데 가게 이름은 자주 바뀌었다. 부산식육식당에서 부산냉면(1995년)으로 다시 진주냉면(2005년)으로 가게 이름을 바꿨고, 갑자기 전국에 진주냉면 간판을 단 식당이 많이 생기자 2011년엔 하연옥으로 바꿨다. 하연옥은 정 사장 부인, 그러니 황 할머니 막내딸 이름이다.  
비빔냉면도 있지만 역시 개성이 강한 건 물냉면(8000원)이다. 육수는 소 사골·사태와 함께 멸치·새우·밴댕이·다시마·바지락 등을 넣고 푹 우려낸다. 멸치 비린내를 잡기 위해 뜨겁게 달군 무쇠를 끓는 멸치장국에 넣어 순간적으로 온도를 올려 비린내를 잡는다. 육수를 내는 데만 3일이 걸리고, 감칠맛을 위해 15일간 저온숙성을 한다. 면은 메밀과 감자전분을 7대 3 비율로 섞어 만든다. 그리고 전주비빔밥 못지않게 많은 고명이 올라간다. 오이·무·삶은 달걀·노른자 지단이 올라가는데 화룡점정은 쇠고기 육전이다. 쇠고기 살코기에 계란 옷을 입혀 부쳐낸 전이 냉면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냉면에 고명으로 내는 육전을 따로 시켜 먹는 사람도 많다.

냉면에 고명으로 내는 육전을 따로 시켜 먹는 사람도 많다.

국물 맛은 해산물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일본식 우동이나 메밀소바 느낌이 난다. 평양냉면보다 확실히 감칠맛이 강하다. 단 국물이 살얼음 형태로 나와서 먹다보면 그 맛이 잘 안 느껴진다. 면의 양이 넉넉하고 고명이 많아서 한 그릇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여러 명이 함께 오면 육전(1만9500원)을 따로 시켜 먹기도 한다. 따뜻하게 부쳐서 나오는 만큼 냉면 위에 고명으로 나온 것보다 고소한 맛이 잘 느껴진다. 참고로 비빔냉면(9000원)에도 물냉면과 똑같은 고명을 얹어준다. 
경남 진주 이현동에 있는 하연옥 본점. 

경남 진주 이현동에 있는 하연옥 본점.

하연옥은 이현동 본점 외에도 진주 하대동과 경남 사천 유천리에서도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하연옥 명성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여행 길에 혹은 오로지 냉면을 먹기 위해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본점은 7·8월이면 주변 교통이 마비될 정도다. 찾아온 손님 중 절반이 냉면 맛 못보고 발길을 돌린단다. 차를 안 가져 가거나 바쁜 식사시간대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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