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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한국사회 무거운 짐 혼자 못 들어 … 보수와 진보 힘 합쳐 대연정해야

중앙일보 2017.05.27 01:00 종합 14면 지면보기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김병준 교수는 25일 “자율 정화 메커니즘 없이 대중이 힘을 가지면 대중영합주의와 스타일 정치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정동 기자]

김병준 교수는 25일 “자율 정화 메커니즘 없이 대중이 힘을 가지면 대중영합주의와 스타일 정치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정동 기자]

그는 스스로 ‘폴리페서’라고 규정했다. 넓은 의미의 정치는 오래전부터 해 왔다고 했다. 이제 본격적인 정치에 뛰어들지 고민하고 있다. 김병준(63) 전 교육부총리는 국민대 교수다. 하지만 그를 대학교수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25일 그를 만난 곳도 국민대가 아니라 그가 원장을 맡은 공공경영연구원이다.
 

자율정화 메커니즘 없어 큰 혼란
대중영합주의 스타일 정치 우려
시장·공동체 제역할 할 때까지 인내
국가권력이 그 위에 군림하면 안 돼
한국당·국민의당서 잇단 영입 제의
정당 이해관계 복잡해 응할 수 없어
박근혜의 청와대 역량 역대 최하
공범인 한국당 역사적 심판받아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94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장을 맡긴 이후 줄곧 그 주변에 머물렀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장관급인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아 임기 내내 함께했다. 보름에 불과하지만 교육부총리에도 취임했다. 철저하게 노무현의 사람이다.
 
지난해 11월 2일 반전이 생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를 총리 후보로 지명한 것이다. 사퇴 압력을 받은 박 전 대통령이 꼼수를 부린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면서 김 교수도 타격을 받았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에 대해 아직 회의적이다.
 
“대중 정치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있어요. 대중사회 안에 자율정화 메커니즘도 없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바로 열리면서 굉장한 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구 대중사회는 오랫동안 발전하면서 자율메커니즘이 그 안에 자리 잡고 있어요. 우린 그런 것도 없이 대중이 힘을 갖다 보니 잘못하면 대중영합주의와 스타일 정치가 우리 사회를 때릴 수 있습니다.”
 
 
참여 정치는 노무현 정부의 구호 아닙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대중적 참여가 갑작스럽게 범람했을 때 가져올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자율과 분권에는 시민사회의 자율정화시스템 정착이라는 아주 큰 과제가 들어 있었습니다. 참여만 다 옳다는 게 아니라 권력과 권한을 지방으로 내려주고, 지방에서도 자기 책임성의 논리로 시민사회가 단체장이나 의회를 규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사람들의 의식도 좀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노 전 대통령은 ‘권력으로 정치하는 게 아니라 명분과 가치로 하겠다’고 했는데, 문 대통령이 그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건 권력을 현실적으로 이용하겠다는 뜻 아닌가요.
“초창기에는 그게 작동한 것처럼 보일 겁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미 국가 권력이 그렇게 강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국가 권력이 대중적 선호와 결부될 수 있고, 그건 사실 위험합니다.”
 
 
자율정화장치가 뭡니까.
“예를 들어 노조만 하더라도 유럽 사회는 연대임금제 구조가 돼 있습니다. 대기업 노조가 일방적으로 자기들 이익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작은 기업의 노조나 힘없는 노조의 의견도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수렴합니다. 우리는 그게 아닙니다. 임금협상을 기업별로 합니다. 큰 대기업 노조가 많이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기초가 없는데 지금 당장 뭘 합니까.
“우리 사회의 의식이 높아져야 합니다.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석대라는 독재자가 떠난 뒤 엉망이 되지만 선생님은 매로 다스리지 않고 놔둡니다. 아이들 스스로 생각이 바뀌고 일종의 자율정화장치가 자리 잡습니다. 시장과 공동체가 제 역할을 할 때까지 기다려 줘야지 국가 권력이 그 위에 군림하고 디자인하려 하면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겁니다.”
 
 
자유한국당 영입설이 나오는데.
“그분들도 답답하니깐 그런 이야기가 안 나오겠습니까.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도 비대위원장 해 달라, 후보로 뛰어 달라, 선대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이야기도 이쪽저쪽에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쉽게 응할 수는 없습니다.”
 
 
김병준 교수는 25일 “자율 정화 메커니즘 없이 대중이 힘을 가지면 대중영합주의와 스타일 정치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정동 기자]

김병준 교수는 25일 “자율 정화 메커니즘 없이 대중이 힘을 가지면 대중영합주의와 스타일 정치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정동 기자]

어떤 조건이 필요합니까.
“우선 바뀔 수 있어야죠. 제가 생각하는 바를 하다못해 반이라도 실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정당 내부에 이해관계가 굉장히 복잡하고, 가치관도 다를 수 있습니다. 저를 불렀으면 토론을 해보자.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른지, 내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맞춰 봐야 합니다. 그런데 저를 부를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한국당이 참패한 원인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기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변수가 크죠. 잘못했죠. 말이 안 되는 일을 했습니다. 이 분이 역사를 잘 못 읽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 확신이 큰 사람이면서도 수없이 우리 역사가 어디로 흐를 것인지 질문을 했습니다. 진보적 가치가 뭐냐는 질문을 제가 100번도 넘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그런 걸 잘 안 한 것 같습니다. 청와대의 정책적 역량이 해방 이후 가장 떨어진 집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당은 최소한 그걸 말리지 못하고, 공범이 됐습니다. 역사적 심판을 받은 겁니다. 24%도 많은 사람이 자존심 상해 가며 찍은 겁니다.”
 
 
홍준표 후보가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요.
“패배의식에 젖어 손을 놓고 있던 극단적인 보수라는 분들을 다시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죠.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릅니다. 역사의 순리에 맞는 새로운 보수적 가치를 가지지 않으면 굉장히 어려울 겁니다. 보수적 가치가 뭡니까. 시민사회의 자율을 굉장히 중시하고 다양성을 중시하는 것 아닙니까. 한국 보수는 국가 권력을 갖고 획일적으로 누르는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 운영 프레임을 보수라고 합니다. 이건 아닙니다. 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진보의 가장 중심적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 사회 진보가 얼마만큼 노력했습니까. 기껏 하는 소리가 우리가 받는 만큼 저기에 더 주라는 겁니다. 그렇게 할 수 없는데. 진정한 보수와 진보는 우리 사회에 없다.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때 사람들을 써 경험이 많았는데.
“그 경험은 토플러가 이야기한 ‘무용지식’일 가능성이 큽니다. 무용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친문 패권주의를 우려했지만 80%가 넘는 박수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은 어떤 말을 하기도 힘들다고 봅니다. 노 대통령은 권력으로 뭘 하겠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늘 어떻게 하면 서로 힘을 합쳐서 할 수 있는가를 생각했고, 그래서 대연정 구상을 한 겁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누구도 무거운 짐을 혼자 들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문 대통령이 저만큼 그런 생각이 강하지 않다고 봅니다.”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정치적 수세에서 불가피한 선택 아니었나요.
“정말 풀고 싶은 문제가 있었는데 풀 수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끌고 갈 산업인력, 노동인력, 지식인력들을 양성하는 체제를 만들고 싶은데 대학 개혁에 손도 못 댔어요. ‘그럼 내가 대통령을 왜 했지’ ‘뭐 때문에 했지’라는 의문이 생기는 겁니다. 방법은 머리를 맞댈 수밖에 없다. 그냥 연정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몇 가지를 해 주면 다른 건 다 가져가도 좋다. 과제를 풀고 싶었던 겁니다.”
 
그는 2005년 9월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회담을 회상하며 “노 대통령이 너무나 낙담해 가슴이 아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님, 대한민국 지도자 아닙니까. 저는 지도자끼리 이야기하면 이야기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안 되네요. 그만합시다.’ 이게 노 대통령의 마지막 멘트입니다. 그때 표정을 죽어도 못 잊습니다. 대통령은 과제를 풀고 싶었던 겁니다. 정치적 계산은 두 번째입니다. 지도자라는 게 뭐냐, 책임 아니냐. 산업구조를 어떻게 할지, 앞으로 뭘 먹고살지, 반도 평화 문제를 어떻게 할지, 나는 대통령이라는 위치에 와서 보니 밤잠을 못 자겠더라. 그리고 이건 혼자 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집권하면 당신 혼자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보느냐. 지도자라면 나와 이야기가 통할 줄 알았다. 이런 이야기죠. 서로가 책임을 느끼지 않으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습니다. 책임을 느끼게 하는 방법은 뭐냐, 연정입니다.” 
 
 
[S BOX] 박근혜 전 대통령이 총리 맡아달라 요청 … 연정 동의받아 수락
2선 후퇴를 요구받던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11월 2일 김병준 교수를 총리에 지명했다. 사실상 ‘식물 대통령’ 상태였던 박 대통령이 야당과 상의 없이 지명해 김 교수에게도 큰 상처로 남았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받고 만났죠. 저보고 총리를 맡아 달라고 했어요. 저는 당연히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대통령의 고민도 이해할 만했습니다. 야당이 거국내각 제안을 안 받을 건데 계속 놔둬야 하느냐는 겁니다.”
 
그는 자신이 총리로 인준받을 가능성이 10%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1년3개월 동안 총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건 대선 담론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산업 구조조정은 어떻게 할지, 자본시장은 어떻게 개혁할지, 인력 양성 체계는 어떻게 바꿀지….”
 
그는 또 연정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게 50% 한도에서 야당 인사로 채우겠다고 말해 동의를 얻었다고 했다.
 
던질 때 2%가 부족해 도루묵이 됐는데.
“관리 측면에서도 허술한 게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국회 인준을 위해서도 절차와 예의를 갖춰 통보해야 하는데 그걸 안 했어요. 제가 물었더니 박 대통령이 이렇게 말해요. ‘아이고, 제가 실장이 있습니까, 수석이 있습니까. 차석에게 이야기했더니 민주당 누구에게 전화해 이야기가 나가게 된 겁니다.’ 참 답답했어요. 체제를 갖출 때까지는 욕을 먹더라도 실장과 정무수석을 붙들고 있어야 했는데…. 당시 상황은 제가 이해하지 못할 부분들이 꽤 있었어요.”
 
정리=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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