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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에게 4억 받은 '주먹계 대부' 1심 무죄

중앙일보 2017.05.25 12:50
25일 오전 10시 대구 수성구 대구지법 별관 4호 법정. 백발의 남성이 피고인석 앞에 섰다. 피고인 조모(78)씨는 '주먹계의 대부' '실전(實戰)의 황제'로 불리며 1세대 조폭으로 손꼽히는 원로 주먹이었다.
 

"혐의 입증할 만한 증거 부족해" 무죄 선고
칠순잔치에 조폭 2000명 모였던 '원로주먹'
선고 직후 지인 5~6명과 기쁨 나누는 모습

과거 시라소니(이성순)와 김두한, 신상사(신상현)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인물로 지금도 명성이 자자하다. 1939년 11월 12일생으로 이제 팔순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였지만 여전히 균형 잡힌 몸을 갖고 있어 노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탄탄한 몸을 꼿꼿이 세우고 판결이 내려지길 기다렸다.
 
선고에 나선 황순현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읊어 내려갔다. 조씨가 조희팔을 기만해 2008년 8월 26일 4억원을 챙겼다고 주장하는 검찰의 공소 사실, 이를 의심할 만한 정황, 조씨가 지금까지 검찰 수사에서 여러 차례 진술을 번복했던 점이 언급됐다. 
 
조씨에겐 전혀 달갑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황 부장판사가 "통상적으로 4억원이라는 거액을 (조희팔이) 단순히 호의로 지급했다는 변명은 일반 사람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할 때 조씨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황 부장판사는 "조희팔 사망 상태에서 수사 무마를 명목으로 청탁했다고 볼 만한 직접적 증거가 전혀 없고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청탁을 했는지 확정할 수 있는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4억원이 개인적으로 사용된 사실이 있을 뿐 로비 자금으로 사용됐다는 증거가 없다. 피고인이 피해자(조희팔)의 도피를 도왔다고 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났다. 범죄 사실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결국 1심 판결은 '무죄'가 내려졌다. 무죄 선고가 나자 조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함께 법정 안에 있던 그의 지인 5~6명도 조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무죄 선고를 축하했다. 
 
법원을 나선 조씨는 상기된 얼굴로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 "무죄 나왔다"며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법원 바깥에서 조씨를 맞이하러 나온 '덩치'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10년 전인 2007년 서울 남산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조씨의 칠순 잔치엔 전국 조폭 2000여 명이 하객으로 참석해 경찰에 비상이 걸렸었다. 
25일 오전 대구 수성구 대구지법 앞에서 1심 무죄를 선고받은 조씨(오른쪽 두 번째)가 통화하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25일 오전 대구 수성구 대구지법 앞에서 1심 무죄를 선고받은 조씨(오른쪽 두 번째)가 통화하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평양에서 태어난 조씨는 광복 직후 8세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서울 종로 덕수초등학교를 다니다가 강원 묵호, 부산을 거쳐 대구에 정착했다. 조씨는 대구에서 6·25전쟁을 맞았다. 전쟁통에 늦게 진학한 조씨는 같은 학년 친구들보다 3살 많았다. 그의 주먹신화는 중학생 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가방에 권투 글러브를 넣고 다니며 방과 후 적당한 상대를 불러내 판을 벌이곤 했다. 대구에서 1대 1 싸움으로 그를 이길 자가 없었다.
 
성인이 된 조씨는 다시 상경해 염천시장에 터전을 잡았다. 조씨는 상인협회 경비과장으로 시장 내 이권 싸움을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당시 염천시장에는 전국 각지의 건달이 몰렸다. 염천시장 일대를 장악한 뒤 무교동 호남 출신 폭력배의 후견인 노릇을 하기도 했다. 19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의 사조직인 태림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91년 김천관광호텔 살인사건 배후로 지목돼 안동교도소에서 8년간 복역도 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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