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랙이 점령한 파리에 색을 입힌 이 남자

중앙일보 2017.05.25 00:02 강남통신 4면 지면보기
‘벤시몽’ CEO 겸 디자이너 세르주 벤시몽 
 
벤시몽 CEO이자 디자이너인 세르주 벤시몽. 여행 매니어인 그는 다른 나라에서 직관적으로 눈에 들어온 컬러에 영감을 받아 매 시즌 다른 컬러의 신제품을 내놓는다. 한국에선 다양한 스펙트럼의 회색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벤시몽 CEO이자 디자이너인 세르주 벤시몽. 여행 매니어인 그는 다른 나라에서 직관적으로 눈에 들어온 컬러에 영감을 받아 매 시즌 다른 컬러의 신제품을 내놓는다. 한국에선 다양한 스펙트럼의 회색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팔리는 ‘클래식’을 만드는 건 모든 패션 브랜드의 로망이다. 프랑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벤시몽’의 테니스화는 그 로망을 이뤄냈다는 평을 들을 만하다. 1979년 처음 세상에 나온 이래 파리 사람들이 신발장 안에 몇 켤레가 있는 지 모를 정도로 많이 산다는 ‘프랑스의 국민 신발’이 됐으니 말이다. 지금은 프랑스뿐 아니라 미국·한국·말레이시아 등 세계 19개 국에서도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평범한 운동화를 왜 사고 또 사는 걸까. 5월 10일 서울에 온 벤시몽의 CEO이자 디자이너인 세르주 벤시몽(Serge Bensimon·64)을 만나 물었다.
 
프랑스 국민 신발인 벤시몽 테니스화.

프랑스 국민 신발인 벤시몽 테니스화.

벤시몽 테니스화를 만든 계기는.
“아버지와 삼촌이 미국에서 군복·군화 중고품을 수입해 파는 사업을 했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가업이었다. 나와 남동생도 당연히 그 일을 배웠다. 구제품을 정리해 배송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낡은 신발 더미에서 흰색 운동화가 보였다. 여기에 색깔을 입혀보면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게 시작이었다.”
 
테니스화가 어떤 매력이 있길래.
“단순하고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디자인, 그리고 남녀노소 누구나 신을 수 있는 아이템 아닌가. 거리에서 늘 볼 수 있지만 뭔가 다른 것, 그게 딱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컬러를 핵심으로 생각한 이유는.
“늘 새로우며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롭고 다르지 않다면 누가 계속 살까. 당시 파리 거리는 검정이 점령하고 있었다. 하지만 검정은 너무 쉬운 컬러다. 게다가 패션이 줄 수 있는 긍정적 기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내 컬렉션에서는 검정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지금도 이 원칙은 마찬가지다. 세상을 보라. 아름다운 자연과 주변환경이 얼마나 다채로운 색깔들로 꽉 채워져 있는지. 사람들이 입는 옷·신발·집에 그 색을 보태는 게 내 역할이라 믿는다.”
 
한국에선 신발로만 알려져있는데.
“신발로 유명하지만 벤시몽은 원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국내에서는 2013년부터 LF가 신발만 유통시키고 있다). 1986년 첫 매장을 낼 땐 옷과 신발·가방이 중심이었지만 89년 컨셉트 스토어로 재정비하면서 가구·조명·향초 등 다양한 리빙 아이템을 함께 보여줬다. 그때부터 패션은 패션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몸에 걸치는 것 뿐 아니라 한 사람이 전체적으로 풍기는 무언가를 전부 다뤄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컨셉트 스토어를 만들 때 캐치 프레이즈가 ‘당신이 입고 있는 옷과 신발처럼 집을 꾸며라’였다. 유행이나 세월에 구애받지 않고 기본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움을 주는 데 초점을 둔다. 우리에게 시즌은 없고 컬러가 있는 이유다.”
파리의 벤시몽 컨셉트 스토어. 신발뿐 아니라 의류·가구·조명 등 리빙 아이템을 아우른다.

파리의 벤시몽 컨셉트 스토어. 신발뿐 아니라 의류·가구·조명 등 리빙 아이템을 아우른다.

 
디자인이 제한적이지 않을까.
“전혀. 일년에 두 번, 스무 가지의 새로운 컬러가 나온다. 빨강색이라 해도 시즌마다 명도·채도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진다. 이게 가능한 건 이미 브랜드 차원에서 300여 개의 색상 기준을 갖고 있기도 하고, 늘 새로운 컬러가 내게 다가 오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컬러도 컬러지만 다양한 무늬도 넣는다. 또 오래 전부터 다른 브랜드와 협업하며 디자인에도 변화를 준다. 지금까지 장 폴 고티에, 샤넬, 10꼬르소꼬모 등과 손을 잡았다. 테니스화 하나에 할 수 있는 게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컬러가 다가온다는 건 무슨 말인가.
“내가 여행 매니어다. 일년에 스무 번쯤 떠나니 세계에서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갑자기 이탈리아 어느 갤러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떠난다. 여행을 가면 그곳 사람들과 즉흥적으로 만나기를 좋아한다(※ 서울 일정에 동행한 LF 관계자 역시 여기에 동의했다. 벤시몽 매장을 들른 그는 현장에서 눈에 띄는 손님에게 이름을 묻고 명함을 주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단다.) 버스를 타거나 걸으면서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과 신발, 그들이 있는 곳을 한 프레임 안에 넣는다. 가령 도시인의 작업복에서 데님 컬러를, 남미에서 강렬하면서도 따뜻한 컬러를 채집하는 식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얻으면 다음 시즌에 반영한다. 이번에 한국에 온 것도 사업 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출장이지만 아무도 모를 일이다. 오늘 서울 사람들이 입고 신은 ‘컬러’가 다음 신제품에 녹아들지 말이다.”
 
한국에서 눈에 띄는 컬러가 있나.
“회색이다. 밝은 것부터 어두운 것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클래식의 조건은 뭘까.
“오래됐지만 새로울 수 있는 것, 시간이 흘러도 살 수 있는 것, 또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품질이어야 한다. 벤시몽 테니스화는 모조품과 달리 순면과 천연 고무를 쓴다. 단색 기본 라인은 프랑스 장인이 직접 염색을 한다. 모든 신발이 다 각기 다른 농도로 염색되는데 불완전해 보이는 연출이 오히려 매력이다.”
 
이런 철학은 따로 공부를 했나.
“학교에서 배운 건 아니다. 어릴 적부터 가업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패션과 사업을 배웠다. 특히 빈티지 아이템에 꽂혀 무언가 최고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벤시몽을 설립하기 전 패션을 제대로 배워 보려 하기는 했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엘리오 피오루치(Elio Fiorucci, 1935~2015)를 찾아가 그의 밑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는데 거절 당했다. ‘너는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려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며 거절 이유를 알려주더라. 그 이후로 그는 최고의 친구가 됐다. 2년 전 세상을 뜨기 전까지 늘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 받는 사이였다.”
 
좌우명이 ‘친구에게 충실하라’이다. 무슨 의미인가.
“한 번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 성실하고 투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벤시몽 테니스화를 25년째 같은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비즈니스 파트너 이상의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를 믿는다. 여행을 통해 알게 된 각국 친구들도 어디서 작업을 하고 있든 서로 끊임없이 연락하며 의견을 주고 받는다. 한국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던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작가 하우메 플렌자도 그 중 하나다.”
 
요즘 사귄 새로운 친구가 있다면.
“2009년 경영난에 빠진 디자인 서점(Artazar)을 인수한 뒤 ‘벤시몽 에스 갤러리’를 열었다. 이미 친분이 있는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각 분야의 장인, 무명의 신진 디자이너 모두가 만나 교류하고 또 서로 협업할 수 있는 장을 연 것이다. 이들을 모두 내 친구라 여긴다.”
 
앞으로의 계획은.
“파리 다음으로 서울에 컨셉트 스토어를 열고 싶다. 또 내년 초에는 파리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의 렌느(Rennne)에 부띠끄 호텔을 열 예정이다. 컨셉트 스토어를 한 단계 넘어서서 벤시몽의 모든 걸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글=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벤시몽·LF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