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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교육기관부터 개혁해야 적폐 청산된다

중앙일보 2017.05.24 02:59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광웅서울대 명예교수

김광웅서울대 명예교수

부패를 척결하려면 황금 권력의 삼각지대(Golden Triangle)를 눈여겨봐야 한다. 적폐 덩어리 골든 트라이앵글은 티베트에서 발원해 남중국해까지 무려 4000여㎞의 긴 메콩강이 태국·미얀마·라오스 세 나라에서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된 마약각성제 재배 지역으로 악명을 떨쳤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란 등 세 나라에도 초승달 삼각지대(Golden Crescent)라고 해서 깊은 악의 구덩이가 있다. 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부패 세력은 정경 유착이나 관민 유착같이 사회정의는 저 멀리 팽개쳐 놓고 서로 공생하고 기생하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권력 둥지(power cage)에서 싹튼다.
 

기득권 세력 직접 개혁해도
개혁의 악순환만 반복돼
근본적인 적폐 청산하려면
교육부·대학 먼저 개혁해야

노무현 대통령은 삼성그룹, 언론, 사법부, 서울대, 강남 등 5대 집권층을 개혁하겠다고 했다. 그때에도 서울과 지방의 국립대학을 한 줄에 세워 1대학, 2대학이라고 하자는 안이 나온 적이 있다. 이들 기득권 세력이 망해야 평등과 정의가 제대로 숨쉬게 된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 맞을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개혁의 악순환만 지속된다. 근 10년이 지난 이제도 5대 세력은 건재한다. 왜 기득권은 없어지지 않을까. 오언 존스(Owen Jones)가 영국의 정치 엘리트, 정부 관리, 금융인, 종교인들을 기득권층으로 치부하며 세상을 농락하는 ‘먹튀’의 귀재들이라고 폄하해도 생명력이 그렇게 질길 수가 없다.
 
적폐 청산은 청탁을 비롯한 온갖 부정부패의 차원을 넘어 근본적 치유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나라 부패지수는 지난 근 10년 동안 50점대에 머물며 세계 45위로 부패가 심한 아프리카의 르완다 수준이다. 지수 같은 정량적 자료만으로는 구조를 알지 못한다. 수술로 몸의 질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체질을 아예 바꾸어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검찰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하려는 것은 견제와 균형의 민주행정 원리대로 권력을 나누어 갖는 측면에서는 옳지만 또 다른 패권세력이 생길 여지를 근원적으로 막지는 못한다.
 
황금 권력의 삼각지대는 정부와 짝진 여러 집단 도처에 있다. 정부, 산하 기관, 협회, 또 정부, 기업, 협업 기업 등의 역학관계가 그렇다. 대표적 예가 교육부, 학교법인, 대학의 삼각관계다.
 
교육부는 학교법인을 닦달한다. 법인은 대학을 몰아붙이며 수족으로 만든다. 교육부는 학교법인을 정기적 또는 민원이 있을 때마다 감사한다. 정부는 또 대학의 학생과 교수 정원, 그리고 여러 종류의 보조금 등을 미끼로 대학을 부속품으로 만든다. 악의 고리는 단단하고 접착력이 대단해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그런 구도에서 대학은 살아남기 위해 교육부 출신 관료들에게 자리를 주고 로비스트로 활용한다. 예산을 따오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범법을 눈감아 주는 청탁을 수도 없이 한다. 교육부는 1000억원대의 세금을 체납하는 학교법인을 국세청 일이라며 문제를 비켜간다.
 
어떤 학교법인은 대학의 교비를 교묘하게 남용한다. 작게는 법인 이사회 비용의 일부를 대학에 부담을 지운다. 크게는 대학의 재정관리권이 이사회에 있는 것을 기화로 프렌치 커넥션이 형성돼 교비를 어떻게 집행하는지 회계사도 찾아내지 못한다. 법인 이사장이 총장에게 뇌물을 받기까지 한다. 또 송사가 생기면 관련 교수로 하여금 거짓 증언을 하도록 교사한다. 이들 삼각관계는 마약을 재배해 수익을 올리며 인간의 건강과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사회질서를 문란케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얼마 전까지 대선후보들이 교육부를 없애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부처를 떼었다, 붙였다, 없앴다, 만들었다 하는 종래의 정부 개혁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고치지 못하는 것이 근 20년 동안의 경험이다. 노태우 정부부터 관행이 되다시피 한 정부 개혁은 관료주의의 병폐는 척결하지 못하고 국민이 공권력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것을 방치했다.
 
새로운 기운으로 해람(解纜)하는 새 정부는 역대 정부와 달랐으면 한다. 스타일만 달라서는 안 된다. 권력의 삼각 구도를 없애는 것이 첫걸음이다. 서일필이 곡간에 들어가 국가 자원을 빼먹는 것을 막자는 차원이 아니다. 새 정부는 근원적이고 구조적 적폐를 과감히 도려내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 다음은 각 기관이 독자적으로 정화작업을 이행하도록 하면 된다. 정부는 각 부처에 한두 개씩 기능을 민간에게 내려놓으라고 하면 된다. 교육부가 대학정책실을 없애고 사립대의 정부 출신들을 거두면 법인과 대학은 제대로 숨쉬기 시작한다. 법인과 대학의 관계 조정은 또 다른 숙제다.
 
지난해 서거한 푸미폰(Phumiphon Adunyadet) 태국 국왕이 고향 근처 치앙마이의 환경과 정치경제적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 삼각지대에서 커피를 재배하도록 해 악의 뿌리가 뽑혔다. 새 대통령이 나서면 구조적 악의 뿌리가 뽑힌다. 가족·회사·국가 등 구성원은 서로 다르지만 공덕이라는 공통분모로 국가가 존립한다는 칸트의 말을 새 정부가 마음 깊이 새기고 되뇌이며 새 역사의 장을 열었으면 한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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