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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의 지성과 산책] 이성시 " 한ㆍ일 역사를 국내 정치에 이용말라"

중앙일보 2017.05.23 17:47
 
한국인 근로자가 일본에 처음 건너간 1897년을 기준으로 올해는 재일동포의 역사가 120년이 되는 해다.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1945년 해방 당시만 해도 재일동포는 200만 명에 달했다. 해방 후에 많이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지금도 60만 명이 살고 있다. 그 중에 한 명인 이성시(65ㆍ와세다대 역사학) 교수는 재일동포의 정체성을 디아스포라(Diaspora)와 연결시킨다.

올해 재일동포 역사 120주년 … 디아스포라 차원에서 재조명
“동아시아 나라들 사이에는 현재를 과거에 투영하여 과거를
배타적으로 점유하려는 표상을 둘러싼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120년 재일동포의 역사를 연구하고 교육해온 '재일한인역사자료관' 2대 관장으로 최근 취임한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 역사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120년 재일동포의 역사를 연구하고 교육해온 '재일한인역사자료관' 2대 관장으로 최근 취임한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 역사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디아스포라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너머’를 뜻하는 ‘디아(dia)’와 ‘씨를 뿌리다’를 뜻하는 스페로(spero)가 합성된 단어로, 이산(離散) 또는 파종(播種)을 뜻한다. 본래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그 의미가 확장되어 우리에게는 해외동포 700만 명이 디아스포라다. 그 중에서도 재일동포의 삶과 의미는 각별하다. 일제의 한국 침략은 끝났어도 그 아픈 기억을 되돌아보는 한ㆍ일 두 나라 사이의 ‘역사 갈등’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 심하기 때문이다.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갈등은 그 일부일 뿐이다. 그 속에서 재일교포 역사학자로 살아가는 일이 만만할 리가 없다. 어려운 점을 묻자 그는 “한ㆍ일 외교관계의 좋고 나쁨은 재일동포의 생활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한ㆍ일 양 정부에게 말하고 싶습니다만, 한ㆍ일 역사와 외교 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것만큼은 피해달라”고 당부했다.  
 
 
나고야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에서 한국과 동아시아의 고대사를 전공한 그는 “고난에 찬 재일동포의 역사는 바로 근대 일본의 역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그의 역사관은 디아스포라가 그렇듯이 한곳에 정주하지 않는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로 번역되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은 비판의 표적이다.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그의 대표작 『만들어진 고대』(삼인)는 한ㆍ일 역사갈등이 심했던 2001년 무렵 출간됐다. 제목이 암시하듯 역사를 ‘만들어지는’ 것으로 본다. 그가 비춘 역사의 거울은 1차적으로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광개토대왕 비석을 처음 발견한 일제가 거기에 적힌 비문을 제국주의를 강화하는데 활용해온 비리를 조목조목 짚어내는 엄밀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제국주의 일본으로선 아플 수밖에 없다.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의 대표작 『만들어진 고대』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의 대표작 『만들어진 고대』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탈민족, 탈국가주의 거울을 일본에 이어 한국과 중국에도 적용시킨다. “동아시아 나라들 사이에는 현재를 과거에 투영하여 과거를 배타적으로 점유하려는 표상을 둘러싼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만들어진 고대』 27쪽)고 했다. 그는 ‘표상’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데, 무슨 뜻이냐고 묻자 “기호로 단순화ㆍ추상화된 지식이며, 표상이 하나의 세계가 된다”고 했다. ‘만들어진 역사’를 표상이라는 용어로 달리 표현하고 있었다. “오늘날 중국이 자기 영역 안에 조선족을 포함하고, 한민족(韓民族) 국가와 인접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한국사 범주에서 이야기되는 고구려의 흔적을 지워 없애려는 것은, 남북한에서 말갈족을 극도로 낮게 평가하려는 것과 서로 공통성을 가진다”는 지적도 했다.
 
 
『만들어진 고대』는 1980~90년대 한ㆍ중ㆍ일의 관계를 바라보는 그의 문제의식이 담겨있는데 오늘날 동아시아의 역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세계에서 역사적 화해가 어려워 보이는 것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이야기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화해(종결)만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편 피해자와 그 자손이 화해의 길로 나아가길 꺼려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갖고 있던 도덕적,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의 말이 아니다. 그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멜리사 노블(Mellissa NobleaㆍMIT대 정치학 교수)의 말인데, 한ㆍ일 양국의 위안부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갈등을 푸는 방법으로 “식민주의 역사학과 국민주의 역사학의 극복”을 제시했다. “지배를 정당화하는 오만한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위에 성립한 것이 식민주의 역사학이고, 자국중심적으로 외국인을 배척하며, 국민(민족)공동체에 대한 귀속을 강요하는 것이 국민주의(민족주의) 역사학”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강대국의 침략적 민족주의와 한국처럼 식민지배를 당한 약소국의 민족주의를 동일시하는 이 같은 발언을 어떻게 봐야할까. 재일동포의 디아스포라적 입장을 고려할 수는 있겠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선 아쉬운 대목인데 그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른바 방어를 위한 ‘좋은’ 민족주의와 침략적인 성격의 ‘나쁜’ 민족주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민족주의는 국민주의를 위해, 즉 일정한 영역의 국민을 단일화시키고 평준화시키기 위해 필연적으로 외부에 대한 인종주의적 성격을 드러낸다. 그러한 인종주의는 주변의 여러 민족에 대해 차별을 하게 되어 있다. 한국의 민족의식, 국민의식에 인종주의적 차별의식이 과연 없는가 라는 문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한 문제의 발언에 대해 그는 정보의 부족을 들며 답변을 유보했다. “미국과 중국의 수뇌 사이에 어떠한 문맥에서 이런 말이 나왔는지 명확하지 않아 답변 드리기가 어렵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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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관점은 한국의 재야사학자들에게 불만스럽게 여겨진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의 저자 이덕일 박사는 “한국의 고대사를 중국과 일본의 ‘식민화 역사’로 만들어놓은 일제시대의 식민사학이 지금도 여전히 한국, 일본, 중국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고 재야사학자들은 보고 있다”며 “한국사에 대한 시진핑의 왜곡된 인식은 그런 바탕위에 형성된 것”이라고 했다.  
 
 
한국 재야사학계의 지적에 대한 이성시의 시각은 비판적이다. “한국의 재야 역사학과 같은 움직임은 일본에도 있다”며 “예를 들어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일본서기』나 『고사기』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역사 문제라고 하기보다는 신앙의 문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영국의 브렉시트 현상, 미국 대통령 트럼프 당선 등 세계 주요국들이 자국 중심의 정책으로 선회하는 현상을 그는 우려의 눈으로 바라본다. 유럽연합을 국가간 연대의 이상적 형태로 간주했던 그의 역사관이 혼돈을 겪으며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는 국가ㆍ민족주의를 넘어서는 디아스포라의 철학을 내려놓을 생각은 없다. 동아시아에서도 유럽연합 같은 공동체가 형성되어가길 기대하는 그에게 물었다. 역사란 무엇인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방법이죠.”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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