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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만에 다시 선 전직 대통령...417호 대법정 비운의 역사

중앙일보 2017.05.23 17:26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고인으로 선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417호 형사대법정은 말그대로 역사의 현장이다. 최고의 권력을 누리다 부패한 ‘거물’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전직 대통령으로는 전두환·노태우 재판 이후 21년 만에 박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았다.
 
417호 대법정은 서울중앙지법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3층 높이의 천정에 방청석은 150석이다. 재판관 3명이 앉는 법대의 너비가 10m나 된다. 검사석과 피고인석에는 6명이 앉을 수 있는 길이의 긴 책상이 배치돼 있다.
 
그동안 이 법정을 거쳐간 인물의 면면은 화려하다. 대통령인 아버지의 힘을 등에 업고 권세를 누렸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도 이곳에 섰다. 
12.12 및 5.18사건 1심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지법 대법정에 선 전두환,노태우 전직대통령

12.12 및 5.18사건 1심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지법 대법정에 선 전두환,노태우 전직대통령

 
1996년 8월 26일엔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고 기업들로부터 수천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았다.
 
두 전직 대통령이 당시 하늘색 반팔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선 모습은 국민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턱을 치켜들고 “기업인들로부터 수천억원을 받아 관리한 것은 사실이나 특혜와 무관하다”고 진술한 전 전 대통령의 모습이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고개를 떨구고 재판에 임했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이 손을 굳게 잡고 ‘동지애’를 보인 장면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21년이 지나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법정에 나온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은 과거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박 전 대통령은 막후 실세로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씨와 변호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았다. 
 
법정 가운데에 피고인을 세웠던 과거 재판과 달리 현재는 재판부의 오른편으로 자리가 바뀌었다. 피고인의 방어권이 강화되면서 검사석과 마주보는 자리에 피고인석이 옮겨졌고 하늘색 수의 대신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사복을 입었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40년 지기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2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재판정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 등 대기업에서 총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사진 연합뉴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40년 지기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2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재판정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 등 대기업에서 총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사진 연합뉴스]

 
법원 관계자와 취재진을 제외한 60여 석의 방청석에는 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추첨된 일반 시민들이 앉았다. 이들은 국민의 손으로 뽑았지만 다시 국민의 이름으로 파면된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을 착잡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박 전 대통령의 동생 근령씨는 서울중앙지법 청사에 나왔지만 좌석을 확보하지 못해 법정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전 전 대통령의 재판에는 장남 재국씨가 방청석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날 법정 밖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 40여 명이 태극기를 흔들거나 오열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21년 전 서울지법 앞에서는 일부 시민들이 달걀을 던지며 “역적은 참회하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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