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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성공한 대통령 돼 돌아오겠다"…盧 묘역서 '문재인 정부' 독립선언

중앙일보 2017.05.23 16:35
대통령이 된 친구가 친구였던 전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그리고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23일 서거 8주기를 맞은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문재인 대통령이 찾았다. 현직 대통령의 참석은 처음이다.
 지난 7년간 추도식에 모두 참석해왔지만 대통령 신분은 아니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추도식 인사말에서 “오늘 이 추도식에 대통령으로 참석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며 “노 대통령님도 오늘만큼은 ‘야, 기분 좋다!’ 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4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오종택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4일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오종택 기자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인 지난달 4일 묘역을 참배하며 “대통령이 돼 오겠다”며 “다시는 정권 뺏기지 않고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자랑스러운 후배들이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두 사람은 동지이자 친구다.  2002년 대선 후보였던 노 전 대통령이 부산 선대본부 출범식에서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한 말은 둘의 관계를 정확히 설명해준다.
 
문 대통령은 그를 ‘운명’이라고 표현한다. 인권변호사의 길로, 정치의 길로, 결국 대통령으로 이끈 사람이 노 전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부산 인권변호사 시절.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부산 인권변호사 시절.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에는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온 것 같다.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도 마치 정해진 것처럼 느껴진다”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2009년 노무현 국장(國葬)의 상주였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백원우 전 의원이 “여기가 어디라고…. 사죄하시오”라고 외치다 끌려나자자 이 전 대통령에게 다가가 “결례가 됐다”면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 뒤 조용히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추도식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그러다 노 전 대통령 육성의 노래 ‘상록수’를 배경으로 1004마리의 나비를 날리는 순서에서 안경을 벗고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인제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 등이 운구행렬을 뒤따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인제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 등이 운구행렬을 뒤따르고 있다.

 
 문 대통령에게 노 전 대통령은 ‘넘어야할 산’이기도 하다. 그는 ‘노무현 대 박정희’ 프레임으로 치러진 2012년 대선에서 패배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패배의 반성문 격인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노무현을 넘어서는 것이, 노무현을 이기는 것이 그의 마지막 부탁이라는 것을 안다. 꼭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2017년 보궐선거로 치러진 대선에서 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앞으로 임기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다”며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참여정부를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 나라다운 나라로 확장해야 한다. 우리가 안보도, 경제도, 국정 전반에서 휠신 유능함을 다시 한 번 보여주자”고 했다.
문 대통령의 다짐에는 과거 노무현 정부의 한계에 대한 반성이 포함돼 있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이상은 높았고 힘은 부족했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며 “이제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뒤 "이명박,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20년 전체를 성찰하며 성공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차별화하기 위한 핵심과제로 ‘민심에 입각한 강력한 개혁’을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모식이 열린 봉하마을에 3만여명의 추모객이 몰렸다. 송봉근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모식이 열린 봉하마을에 3만여명의 추모객이 몰렸다. 송봉근 기자

 
그는 “저의 꿈은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취임 초기 이어지고 있는 개혁 드라이브와 관련해서도 민심의 지원을 앞세웠다.
 
근거는 19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국정운영 평가다. 문 대통령은 87%의 긍정평가를 받으며 역대 정부 초기를 기준으로 최고 지지율을 기록했다.
 
문 대통령은 “개혁도 저 문재인의 신념이기 때문에, 도는 옳은 길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원하고 국민에게 이익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나가겠다. 국민이 앞서가면 더 속도를 내고, 국민이 늦추면 소통하면서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 정부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정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들의 과분한 칭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제가 뭔가 특별한 일을 해서가 아니다”라며 “정상적인 나라를 만들겠다는 노력, 정상적인 대통령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특별한 일처럼 됐다. 정상을 위한 노력이 특별한 일이 될만큼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심각하게 비정상이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가 못다한 일은 다음 민주정부가 이어나갈 수 있도록 단단하게 개혁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장강후랑최전랑(長江後浪催前浪). ‘양자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뜻’의 중국 속담이다.
 
문 대통령은 『운명』의 서문에 “장강의 뒷물결이 노무현과 참여정부라는 앞물결을 도도히 밀어내야 한다”고 적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0일 국회에서 취임식을 마친 뒤 국회대로를 지나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0일 국회에서 취임식을 마친 뒤 국회대로를 지나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그가 인용한 말처럼 문 대통령은 1982년 노 전 대통령을 부산의 인권변호사로 만난지 35년만에 노 전 대통령의 묘역에서 ‘노무현 정부 2기’가 아닌 ‘문재인 정부’의 시작을 선언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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