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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새는 공사현장 당신 아파트 옆에 있다

중앙일보 2017.05.23 10:47
서울 서초구청 정정재 주무관(오른쪽)이 신원동의 한 호텔 신축 건설 현장에서 공사장 현장 관리자(왼쪽)와 함께 가스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서울 서초구청]

서울 서초구청 정정재 주무관(오른쪽)이 신원동의 한 호텔 신축 건설 현장에서 공사장 현장 관리자(왼쪽)와 함께 가스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서울 서초구청]

“가스냄새가 진동을 하잖습니까.”

“아니라니까요.” 
지난달 20일 서울 잠원동의 한 아파트재건축 공사장에 있는 가스연결배관에 정정재 주임이 비눗물을 뿌리자 거품이 올라오고 있다. [사진 서울 서초구청]

지난달 20일 서울 잠원동의 한 아파트재건축 공사장에 있는 가스연결배관에 정정재 주임이 비눗물을 뿌리자 거품이 올라오고 있다. [사진 서울 서초구청]

지난달 20일 터파기 공사가 한창인 서울 잠원동의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장. 공사장에선 실랑이가 벌어졌다. 정정재(52) 서초구 푸른환경과 주무관이 공사장 한 켠에 있던 LPG 가스통으로 다가가자 약 5m 거리에서부터 가스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공사장 관계자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정 주무관이 가스연결 배관에 비눗물을 뿌리자 거품이 올라왔다. 그제서야 공사장 관리자는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다. 정 주무관은 “공사 현장에서는 용접 작업 등을 하며 불꽃이 수시로 튄다. 불꽃이 유출된 가스에 튀었다면 아파트가 밀집된 이곳에 큰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건설현장 30곳 가스 안전실태 점검...부적합 7곳
"가스 냄새 안난다" 잡아떼다 비눗물 거품 보고서야 "죄송합니다"
남양주 사고 1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안전 불감증 여전

 
지난달 20일 서울 반포동의 한 호텔증축공사현장에서 발견된 LPG 가스통. 이 가스통은 제조된 지 24년이 지났지만 지난 4년간 안전검사를 받지 않았다. [사진 서울 서초구청]

지난달 20일 서울 반포동의 한 호텔증축공사현장에서 발견된 LPG 가스통. 이 가스통은 제조된 지 24년이 지났지만 지난 4년간 안전검사를 받지 않았다. [사진 서울 서초구청]

같은 날 호텔 증축공사가 진행되던 서울 반포동의 한 건설 현장에는 군데군데 녹이 슬고 손잡이 부분이 찌그러져 있는 LPG 가스통이 발견됐다. 제조된 지 24년이 지난 이 가스통은 확인결과 지난 4년간 안전검사를 하지 않았다. 고압가스안전관리법상 20년 이상 지난 LPG 가스통은 2년에 한 번씩 내부 압력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정정재 주무관은 “20년이 지난 가스통은 사실상 연한이 다 된 것으로 폐기 절차를 밟는 게 일반적이지만 하나에 3만6000원 정도인 가스통 값을 아끼기 그대로 사용하는 곳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LPG 가스 폭발로 14명의 사상자를 낸 남양주 지하철공사장 가스 폭발사고(2016년 6월1일 발생)가 1년이 되지 않았지만 건설 공사장의 ‘가스 안전 불감증’은 여전했다.  
 
서울 서초구가 한국가스안전공사와 함께 지난달 10일부터 열흘간 구내 건설현장 공사장 30곳(건축 연면적 3000㎥이상)의 가스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한 결과 부적합 판정을 받은 곳이 7곳(11건)이었다. 가스 누출(1건), LPG용기 재검사 기간 경과(2건), LPG 역화방지 미설치(1건) 등의 다양한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적합 판정을 받은 23곳 중 19곳도 구청이 사전에 점검을 알린 덕에 부랴부랴 가스 시설을 철거해 적발을 면했다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건설공사장에서 LPG 가스는 ‘산소 절단기’에 화력을 공급하는 데 쓰인다. 가스통은 건설 현장에 보통 15~20개가 배치된다. 입자가 무거운 LPG 가스는 외부로 유출되면 공기 중으로 흩어지지 않고 바닥에 가라 앉아 공사 현장의 구덩이 등 구석구석에 남게 된다. 지난해 남양주지하철 공사장 폭발 사고도 인부들이 작업을 끝내고 집에 들어간 사이 유출된 LPG 가스가 공사장 구덩이에 남아 있다가 불꽃이 튀면서 일어났다. 한국가스학회장을 지낸 김청균 홍익대학교 교수는 “외부로 유출된 LPG 가스는 한마디로 이곳저곳에 숨어있는 ‘도심 속 시한폭탄’이다”고 지적했다.
 
구청에 신고하지 않고 무단으로 산소 고압가스를 사용한 곳도 있다. 서울 신원동의 한 호텔 신축 공사장은 기체 산소가스 104㎥, 액체 산소가스 819㎏를 몰래 사용하다가 적발됐다. 고압가스안전관리법상 폭발 위험이 높은 기체인 산소가스는 50㎥, 액체 산소가스는 250kg 이상을 보관ㆍ사용하려면 구청에 신고 후 안전 검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업체는 가스통을 비닐 포장지로 덮어 단속을 피해왔다. 이 업체와 함께 적발된 5곳은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게 된다. 김청균 교수는 “우리 나라 처벌의 강도는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별 문제 없겠지’하는 식의 안전 불감증은 비할 수 없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주민안전을 위협하는 공사장의 안전불감증이 사라질 때까지 가스 안전점검을 지속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서준석 기자 seo.jun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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