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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이 우스운 비트코인, 범죄자 단골 화폐로 뜬 까닭

중앙일보 2017.05.23 02:09 종합 10면 지면보기
 자본주의 4.0 시대, 새로운 광기(狂氣)가 시장을 어슬렁거린다. 디지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 금보다 비싸졌다. 5년 새 200배 뛰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벌어졌던 ‘튤립 뿌리 투기’를 연상시킨다. 최상급 튤립 한 뿌리의 가격이 1년 중산층 생활비의 10배를 웃도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광풍 뒤엔 폭락이 뒤따랐다. 역사는 이를 ‘자본주의의 피할 수 없는 버블’이라고 평가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지금의 비이성적 열광을 한 세대 뒤 역사는 무엇으로 기록할까. 버블일까, 대세일까. 가상화폐 열풍과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와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점검한다.
 

폭발적 성장세 따른 빛과 그림자
가격 2000달러 돌파, 5년 새 200배
국내 거래 가격은 300만원 육박
익명성에 거의 공짜로 실시간 송금
자녀에게 물려줘도 세금 부과 못해

디지털 가상화폐 비트코인 가격이 최근 2000달러를 넘어섰다. 비트코인 정보 사이트를 운영하는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오후 5시40분 1비트코인 가격이 2000달러를 돌파했다. 23일 오전 9시 현재 1비트코인당 2141달러에 거래되고 있다(가상화폐 거래소의 거래 시간은 365일 24시간이다. 주식시장처럼 특정일의 종가 개념이 없다. 상승률도 주식처럼 전날 종가 대비 몇 %가 아니라 24시간 전 대비 몇 %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에서는 같은 시간 311만8000원을 기록 중이다(거래 편의성 때문에 국내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가상화폐에는 대개 글로벌 시세보다 프리미엄이 붙는다).  
 
이로써 비트코인은 인류 최고(最高)의 통화인 금보다 비싸졌다. 현재 미국 뉴욕 선물시장에서 금은 온스(31.1g)당 1250달러 수준에서 거래된다. 역대 최고 ‘금값’(2011년 9월 6일 온스당 1920.8달러)보다 비트코인 가격이 비싸다.
 
비트코인은 연초만 해도 1000달러선에도 못 미쳤다. 반년도 안 돼 두 배 이상 올랐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22일 오후 3시 기준 시가총액은 348억 달러(약 39조원)에 이른다. 다른 가상화폐 가격 상승세는 너무 가팔라 아찔할 정도다. 기본 비트코인 블록체인(분산원장 기술)에 ‘스마트 컨트랙트’라는 전자계약 기능을 추가한 확장형 블록체인인 이더리움은 최근 넉달 새 10배 넘게 올랐다. 은행 간의 대규모 결제를 자유롭게 하는 리플은 최근 두 달새 20배 넘게 날았다. 연초만 해도 가상화폐 시가총액의 80%를 웃돌던 비트코인의 점유율은 최근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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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의 ‘원조’격인 비트코인은 2009년 정체불명의 엔지니어들이 만든 P2P(Peer to Peerㆍ개인 간 거래) 전자 금융거래 시스템이자 새로운 화폐다. 기존의 화폐 체계에 대한 불신이 퍼지면서 이상적인 화폐를 구현하려는 동기에서 출발했다. 비트코인은 2040년까지 총 2100만 개만 유통된다. 공급이 제한되기 때문에 비트코인은 화폐이면서 투자할 수 있는 상품으로도 불린다.
 
초기 가상화폐 시장을 주도한 세력은 중국이다. 연초까지만 해도 전세계 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가장 많이 거래하는 통화는 중국 위안화였다. 위안화가 차지하는 거래 비중이 전세계 가상화폐 거래량의 90%를 웃돌았다. 중국 정부는 위안화 약세를 저지하기 위해 개인의 외환투자에 상한선을 설정했다. 작년에는 금 구입에 대한 규제도 강화했다. ‘정통’ 혹은 ‘전통’ 자본을 규제하고 나서자 중국인들이 선택한 수단이 가상화폐였다. 규제의 빈틈을 노려 가상화폐 투자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나섰다. 지난 3월 중국 인민은행은 비트코인 거래소들에 고객 신원을 확인하고 은행 규제를 준수하라고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조짐을 감지한 중국 투자가들이 가상화폐 시장에서 2월부터 본격 이탈해 나갔다. 가상화폐 거래소 정보 사이트인 코인힐스에 따르면, 최근 중국 위안화의 가상화폐 거래 점유율은 10%대에 그친다.
 
가상화폐

가상화폐

대신 비트코인을 정식 지급결제 수단으로 인정한 일본의 거래량이 폭증했다. 일본 엔화의 거래량은 현재 전체 거래량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미국 달러가 25% 안팎이다. 중국에 이어 한국 원화 거래량은 세계 4위다.
 
가상화폐 인기의 급등에 대해선 시각이 엇갈린다. 기존 금융권 인사들은 주로 ‘거품’ 쪽에 힘을 싣는다. “시세가 급등할 특별한 요인이 없는 상태에서 ‘사자’가 ‘사자’를 부르는 것일 뿐”(ICBC스탠더드뱅크 도쿄 지점 관계자)이라는 식의 의견이 다수다. 반면 기술 관련 인사들은 블록체인이 가져 올 ‘혁명’ 쪽에 무게를 둔다. 미국 정보기술(IT) 온라인 매체인 테크크런치는 최근 비트코인의 급등에 대해 “어느 누구도 가상화폐가 얼마나 가치가 있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며 “일부 전문가들은 1만 달러 또는 그 이상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고 보도했다.
 
 폭발적 성장세에 부작용도 고개를 들고 있다. 가상화폐는 기존 통화의 단점을 보완했다. 국경 간 장벽이 있는 해외 송금이 가상화폐를 통하면 자유롭다. 거래 비용도 제로에 가깝다. 일종의 계좌에 해당하는 가상화폐 지갑을 만들 때에도 아이디와 패스워드만 있으면 된다. 익명성이 보장된다. 지갑 주소만 입력하면 가상화폐 송금이 거의 공짜로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이런 특징 때문에 최근 범죄에 대표적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 단골로 등장한다. 지난 12일 ‘워너크라이(WannaCry)’ 해킹 집단이 랜섬웨어 공격으로 전세계를 강타했다. 이를 예고하기라도 하듯 공격 이틀 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랜섬웨어 공격이 하루 평균 4000건에 이른다”며 “가상화폐의 증가가 사이버 범죄 증가의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TF)도 최근 “비트코인이 사이버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상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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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지난달 인터넷 사이트에서 비트코인으로 마약을 사고판 20여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지난주 경찰은 미국에 서버를 둔 회원 121만여명 규모의 음란물 사이트 운영자를 구속하면서 거래에 사용된 비트코인 216개를 압수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가상화폐가 범죄를 부추긴다는 것은 가상화폐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국내 3대 가상화폐 거래소 중 하나인 코인원의 차명훈 대표는 “비트코인(가상화폐)은 블록체인 기반이기 때문에 거래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컴퓨터에 기록이 남는다”며 “인터넷 주소(IP) 추적만 하면 되기 때문에 수사 기관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은행 계좌추적보다 오히려 자금 흐름 추적이 쉽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의 특징이 되는 ‘익명성’은 이중적이다. 대중이 오해하는 것처럼, 현금과 같은 익명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트코인은 ‘이중지불(Double spending)’을 방지하기 위해 중앙서버나 제3자를 개입시키는 대신 거래의 기록을 모두에게 공개한다. 곧, 비트코인 거래가 일어나면 발신자와 수신자 및 거래 시간이 모든 이들에게 공개된다. 거래 기록은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언제든 추적이 가능하다. 비트코인이 누구의 것인지는 특정하기 어렵지만 누가 거래를 했는지는 어디에든 기록이 남는다. 때문에 비트코인의 익명성은 ‘유사익명성(Pseudo-anonymity)’ 이라고 불린다. 범죄자로 의심 가는 비트코인 주소를 열람하면 그 주소로 거래한 모든 기록을 찾아낼 수 있다.
 
‘실크로드’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3년 10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실크로드라는 사이트를 폐쇄했다. 10억 달러 이상의 마약류가 거래되던 인터넷 사이트였다. 이곳은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사용했다. FBI는 비트코인의 거래 기록이 공개되고 저장되는 특성을 이용해 실크로드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모두 압수했다. 이 사건으로 FBI는 당시까지 채굴 총량의 1.5%에 달하는 비트코인을 소유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정부기구로는 비트코인 최대 보유자로 알려졌다.
 
차명훈 대표는 “지난해 봄 보이스피싱을 당해 회사(코인원)에서 100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사 송금한 피해자가 (코인원 측에) 자금 추적을 의뢰한 적이 있었다”며 “추적 결과 그 비트코인이 중국으로 흘러 갔고, 한 중국 거래소에서 현금화가 이뤄진 것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의 유사익명성 때문에 비트코인이 어떤 경로로 어디로 갔는지를 밝혀낼 수는 있지만 최종 수신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상화폐가 진짜 돈처럼 광범위한 결제수단으로 쓰이지 않는 이상 결국 마지막엔 거래소를 통해 현금화가 이뤄져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가상화폐 거래소는 연계된 은행 계좌를 만들 때 실명확인 절차를 거친다. 특히 국내 거래소는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실명인증을 거친 은행 계좌를 통한 원화 입출금만을 가능하게 했다. 익명으로 이뤄지던 비트코인 거래가 거래소에서 현금화하는 순간 누구의 주머니로 돈이 들어가는지 알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가상화폐

가상화폐

 
 가상화폐가 범죄에 악용될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글로벌 은행들은 아예 가상화폐를 취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당시 기준으로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홍콩의 가상화폐 거래소인 비트파이넥스는 이용자들이 어떠한 통화로도 예금 혹은 인출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그동안 현금화 거래를 처리했던 대만 은행들이 모든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은행들은 비트코인 사용자들이 불법적 활동에 연루됐을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WSJ에 따르면, JP모간체이스는 최근 ‘모든 가상화폐 거래소와 거래하는 은행들의 업무 처리를 금지한다’고 내부 문건으로 적시했다. 스탠다드차타드 역시 가상통화 거래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대변인을 통해 내놨다.
 
김용태 금융감독원 전자금융팀장은 그러나 “거래소를 통해 현금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비트코인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도달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며 “또 바로 현금화하지 않고 거래소 안에서 불법 자금으로 받은 비트코인을 다른 가상화폐와 반복적으로 사고 팔면 자금 추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해외 거래소를 이용해 현금화한다면 자금 추적이 어렵다. 해외 수사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가 쉽지 않아서다. 차명훈 대표는 “(앞서 말한 보이스피싱 피해자 사례의 경우) 중국 거래소 측에서 비트코인 소유주에 대한 조사는 수사 기관의 협조 요청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밝혀 추적 결과를 경찰에 넘겼다”며 “그렇지만 중국 경찰과의 협조가 원할하지 못해 범인은 잡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간 외환관리법을 통해 범죄 자금의 국외 인출을 막았지만,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이용한 범죄 자금의 유통을 막기 위해선 강화된 국제 수사공조가 필요한 이유다.
 
또한 시장에서는 가상화폐가 탈세 목적으로도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상화폐는 아직 법적 지위를 부여받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자산’은 맞지만 과세할 근거가 없다. 예를 들어 지금 비트코인을 사서 자녀에게 물려주더라도 국가는 세금을 물릴 수 없다. 하루 24시간 거래되고 가치 변동폭이 몇 시간만에 50%를 웃돌기도 하는 터라 과세 기준을 어떻게 잡을지도 난감하다. 그나마 물려받은 비트코인을 당장 현금화한다면 양도세 부과 여부를 다퉈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자녀가 비트코인을 받은 뒤 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현금화해 생활비로 쓴다면 세금을 탈루한 것인지 잡아낼 길이 없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연 2%짜리 예금도 16.5%의 이자소득세를 내는데 가상화폐 투자로 수십 배를 버는 이들이 단 한 푼의 세금도 안 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가상화폐를 어떻게 금융 규제의 틀로 집어넣을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연준 금융위원회 디지털통화 제도화 태스크포스(TF) 과장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 가상화폐로 인한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 핀테크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방안을 도입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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