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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꽃도 박수도 없이 … 개혁 대상 1호의 민낯

중앙일보 2017.05.22 02:54 종합 32면 지면보기
조강수논설위원

조강수논설위원

“닭 쫓던 개 신세요, 토사구팽이라-. 죽을힘 다해 전 주인 물어뜯으면 머리 쓰다듬어 주고 따신 밥 줄 줄 알았는데 새로 온 주인은 뭘 잘한 게 있느냐며 몽둥이찜질만 해댄다. 전전전 주인 사지로 내몬 게 니놈 아니냐며 청산 대상 1호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이고 내 팔자, 뒤웅박 팔자야. 나는 예나 지금이나 주인 교체 결사반댈세.”
 

국정 농단 사건 기초수사 … 검찰 개혁 기치 아래 팽당해
수사권 이양, 공수처 도입 대세 … ‘권력 사용 문화’ 개선돼야

검찰의 신세가 처량하다. 초장에 미적거리기는 했지만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건의 터 닦기 수사를 한 건 김수남의 검찰이다. “최순실과 아는 사이”라는 현직 대통령의 사과담화가 나오자 검찰 특별수사본부를 출범시켜 한 달 만에 청와대 정문 앞까지 치고 들어갔다. 그러나 박수나 꽃은커녕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는 시민이 없었다. 그저 ‘국정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을 돌던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특검팀에 합류시킨 것만으로도 찬탄을 받던 박영수 특검에 대한 시선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대한민국 검찰의 선 자리가 여기다. 대다수 국민은 검찰이 사건 수사를 잘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청와대 입맛에 맞게 왜곡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왜 진작에 칼을 들지 못했느냐고 힐난한다. 이쯤 되면 천덕꾸러기다. 가깝게는 안하무인 우병우의 무소불위 권한과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의 폐해에 진력이 났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창립 이후 69년간 검찰조직이 쌓아 온 업보다. 대선자금 수사와 한보 비리 등 초대형 게이트 수사 때 박수는 잠깐 반짝한 것일 뿐이다. ‘정권의 시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라는 불신의 이미지를 걷어 내지 못했다.
 
이러니 문재인 시대의 막이 올라 임기가 7개월 남은 김수남 검찰총장이 사표를 내자 대통령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수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검찰 개혁의 기치가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터진 ‘돈봉투 만찬 사건’은 결정적인 자충수다. 검찰 최고위 간부들이 박근혜와 우병우 기소 나흘 뒤 음식점에 앉아 만찬주를 할 만큼 몰지각하고 안이하고 나태하다니. 돈봉투가 관행? 외부에 들키면 추악한 거래로 비친다. 천지가 개명했는데 여전히 영감놀이하며 짬짜미하는 것으로 오해받기에 충분했다. 개혁의 칼자루를 쥔 쪽에선 불감청고소원이다.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인사보다 먼저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장 발탁으로 일찌감치 판을 뒤집어 놓았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과 검경 수사권 조정에 저항할 수 있는 세력을 쳐내는 정지작업이 됐다.
 
더 이상 깎을 뼈도 없다는 검찰 역시 이번엔 끽소리 못하게 됐다. 가장 중요한 건 수사권이다. 검찰은 “지금도 수사 지휘권이 명문화돼 있지만 경찰이 지휘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경찰 수사권이 자유로워지면 국민을 자유롭게 못살게 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수사권 남용을 걱정한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크든 작든 수사권 이양은 불가피하다. 차제에 견원지간이 돼 버린 검찰과 경찰 간의 관계 복원도 필요하다. 두 기관의 극한 대립은 1990년대 후반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갈등과 함께 시작됐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궁극적으로는 검찰 불신의 근원인 특수수사 기능도 넘기고 검찰이 사법의 주재자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물론 자치경찰제로의 경찰 개혁이 전제다.
 
공수처를 도입한다면 중복수사 등 옥상옥이 되지 않도록 수사 대상자와 범죄의 종류를 잘 설계하고 범죄정보 수집 루트의 다변화 방안이 확보돼야 할 것이다. 아예 미국의 연방수사국(FBI) 같은 수사기구를 만들어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 검찰과 경찰의 특수수사 기능을 통합하는 것도 고려해 봄 직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관 신설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사고와 시스템, 원칙을 지켜 내는 사람의 힘임을 절감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로버트 뮬러 특검을 임명한 이가 법무부 부장관임을 지켜보면서다. 행정부의 부장관이 “내 결정으로 대통령을 수사할 특검을 임명했다”고 발표하는 건 우리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모든 적폐는 법과 절차를 무시한, 잘못된 삶의 방식에서 생겨난다. 상하 관계가 아니라 직무에 따른 ‘적확한 권한 사용 문화’가 정착돼야 검찰도, 나라도 바로 선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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