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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랑할 수 있게…"희귀 조류들 종 차이도, 계절도 이겼다

중앙일보 2017.05.18 11:49
인천 강화도 각시암에서 사진에 잡힌 암컷 저어새(오른쪽)와 수컷 누랑부리저어새 부부 저어새 종류는 암수가 번갈아 알을 품는다. [사진 한국조류연구소]

인천 강화도 각시암에서 사진에 잡힌암컷 저어새(오른쪽)와 수컷 누랑부리저어새 부부 저어새 종류는 암수가 번갈아 알을 품는다. [사진 한국조류연구소]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인 저어새는 여름 철새다. 대만이나 중국 남부 등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부터 가을까지 한반도에서 번식한다. 반면 멸종위기 야생생물 II 급인 노랑부리저어새는 겨울 철새다. 여름에는 북쪽 시베리아에서 번식하고, 가을부터 봄까지 한반도에서 지낸다.  
 

저어새·노랑부리저어새 이종간 '짝짓기' 확인
여름철새·겨울철새로 한반도 생활시기 달라
수컷 노랑부리, 암컷 저어새 사이서 9마리 부화
한반도 태어난 잡종 개체, 중국 랴오닝서도 발견
오리·기러기는 잡종 흔해도 저어새류에선 드물어

두 종은 길고 주걱 같은 부리를 가진 점이 공통적이며 분류학적으로 같은 저어샛과(科), 저어새 속(屬)에 속하지만, 엄연히 종(種)이 서로 다르다. 한반도에서 보내는 시기 역시 다르다. 그런데 종과 번식기 차이를 극복하며 한반도에서 만나 사랑을 하고 번식까지 한 사실이 확인됐다. 오리나 기러기 종류는 자연계에서 잡종이 드물게 나타나지만, 저어새 종류에서는 거의 보고되지 않았다.
서해 무인도에서 번식하는 저어새.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90%가 한반도에서 번식한다. [중앙포토]

서해 무인도에서 번식하는 저어새.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90%가 한반도에서 번식한다. [중앙포토]

전남 완도군 노화도 갯벌 습지에서 발견된 노랑부리저어새. 부리 끝이 노란색인 것이 특징적이다. [사진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변남주 연구교수]

전남 완도군 노화도 갯벌 습지에서 발견된 노랑부리저어새. 부리 끝이 노란색인 것이 특징적이다. [사진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변남주 연구교수]

18일 한국조류연구소와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인천 강화도 각시암에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노랑부리저어새 수컷과 저어새 암컷이 짝짓기하고 알을 낳은 장면이 지속해서 관찰됐다. 수컷은 동일한 개체였고, 암컷은 2마리 이상이었다. 이들은 낳은 알 11개 중 9개가 부화해 '잡종' 개체로 자랐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태어난 새끼들은 양쪽 특성을 고루 가졌다. 
 
하지만 아빠 쪽인 노랑부리저어새를 더 많이 닮아 어미 쪽인 저어새보다 몸집이 크고 부리와 다리가 길었다. 또 콧등에서 눈까지 검은 줄이 있었고 주걱처럼 생긴 부리의 끝도 노란색이었다. 다만 목 주위가 깃털로 덮인 것은 엄마 쪽인 저어새를 닮았다.
노랑부리저어새 수컷과 저어새 암컷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가운데). 부리의 노란색이 주변의 다른 저어새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사진 한국조류연구소]

노랑부리저어새 수컷과 저어새 암컷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가운데). 부리의 노란색이 주변의 다른 저어새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사진 한국조류연구소]

이렇게 태어난 새끼 중 한 마리는 각시암에서 북쪽으로 380㎞ 떨어진 중국 랴오닝(遼寧) 성에서 2014년 5월에 저어새 사이에서 관찰됐다. 2015~2016년에는 다시 각시암에서 목격됐다.  
 
한국조류연구소 권인기 연구원은 "잡종으로 태어난 새끼가 아빠 쪽인 노랑부리저어새보다는 엄마 쪽인 저어새를 따라 이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잡종 개체가 아빠 쪽 월동지인 대만 등지에서 관찰됐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잡종 개체의 존재를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 세심하게 관찰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어새(A)와 노랑부리저어새(C) 사이에 태어난 잡종(B). 노랑부리저어새는 턱에 깃털이 없지만 잡종은 깃털로 덮여있다.[사진 한국조류연구소]저어새 잡종 [사진 한국조류연구소]

저어새(A)와 노랑부리저어새(C) 사이에 태어난 잡종(B). 노랑부리저어새는 턱에 깃털이 없지만 잡종은 깃털로 덮여있다.[사진 한국조류연구소]저어새 잡종 [사진 한국조류연구소]

학계의 관심사는 잡종 개체들의 번식 여부다. 일반적으로 잡종은 번식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이 번식을 할 경우 새로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게 돼 진화적으로 의미가 크다는 설명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이날 낸 보도자료에서 "인천 영종도 수하암 인근에서 확보한 알껍질 2개에서 노랑부리저어새와 저어새의 잡종 유전자형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안정화 연구관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수컷 저어새와 암컷 노랑부리저어새 사이에 번식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육안 관찰 외에도 유전자 분석을 통해서도 두 종 사이에 짝짓기가 이뤄졌음을 확인한 것이다. 
저어새 잡종 [사진 한국조류연구소]

저어새 잡종 [사진 한국조류연구소]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의 개체수는 지속해서 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엔 전세계적으로 1000마리, 2010년엔 2000여마리였으나, 최근엔 3900마리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의 90%는 한반도에서 번식한다. 권 연구원은 "월동지와 번식지에서 보호 노력이 지속해서 이뤄진 덕분에 개체수가 늘어난 것 같다. 질병으로 인한 집단 폐사나 포식자로부터 위협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물자원관은 국내 저어새 번식지 5곳에서 확보한 63개의 유전자 시료를 분석한 결과, 유전자 다양성이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국내 번식집단에서 유전자 다양성 지수 평균은 0.6  이상으로  유전자 다양성니 높은 것으로 판단하는 기준(0.5)을 넘었다. 5개 번식지별로 고유한 특성이 나타나지 않아 유전적으로 서로 격리된 상태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번식집단들 사이에서 유전자를 서로 주고 받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권 연구원은 "월동지에서 뒤늦게 도착한 저어새가 적당한 번식지를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유전자가 섞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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