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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붙잡고 시간을 겹치고

중앙일보 2017.05.18 10:24
현재 '문화역서울 284'로 불리는 옛 서울역 출입문 앞에 2인조 작가 다이아거날 써츠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사진=이후남 기자

현재 '문화역서울 284'로 불리는 옛 서울역 출입문 앞에 2인조 작가 다이아거날 써츠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사진=이후남 기자

 고풍스런 옛 서울역 정문에 새로운 출입문이 덧씌워졌다. 거울처럼 반짝이는 외관이라 그 앞을 지나는 사람을 모습, 길 건너 빌딩 모습이 그대로 비춰진다. 1925년에 세워진 서울역 건물 위로 2017년의 현재가 중첩되는 모양새다. 이는 '문ㅣ펼쳐진 시공간'이란 제목의 설치작품으로 김사라·강소진으로 구성된 2인조 작가 그룹 다이아거날 써츠의 솜씨다. 
중앙홀에 설치된 홍범 작가의 '기억의 잡초들', 아크릴로 만든 식물의 형태 위로 몽환적 음향이 흐르는 작품이다. 사진=문화역서울 284

중앙홀에 설치된 홍범 작가의 '기억의 잡초들', 아크릴로 만든 식물의 형태 위로 몽환적 음향이 흐르는 작품이다. 사진=문화역서울 284

 안쪽 전시장에서도 또다른 시간의 중첩을 만날 수 있다. 조준용 작가의 '남쪽의 기억, 416km'는 작가의 아버지가 25세의 나이로 파병됐던 베트남전에서 직접 찍거나 수집한 과거의 이미지와 그 무렵 건설돼 지금도 서울-부산의 416km를 잇고있는 경부고속도로 주변의 요즘 풍경을 다양한 방식으로 겹쳐서 보여준다. 

전시와 공연 아우르는 문화역서울 284 기획프로그램 '시간여행자의 시계'

과거와 현재, 베트남전과 경부고속도로 주변의 이미지를 중첩한 조준용 작가의 작품 '남쪽의 기억, 416km'. 사진=이후남 기자

과거와 현재, 베트남전과 경부고속도로 주변의 이미지를 중첩한 조준용 작가의 작품 '남쪽의 기억, 416km'.사진=이후남 기자

 이들 작품은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프로그램 '시간여행자의 시계'의 전시작 중 일부다. 7월 중순까지 10주간 이어지는 이번 프로그램은 시간을 주제로 국내외 작가 17팀의 미술작품과 더불어 공연과 영화상영을 병행하는 복합 문화행사다. 공연과 전시의 구성은 '과거:긍정시계', '미래:지향시계', '현재:쾌락시계'라는 세 가지 소주제로 나뉜다. 작품 배치나 관람순서와는 관계가 없지만 흔히 꼽는 '과거-현재-미래'의 순서 대신 '과거-미래-현재'를 제시, 결과적으로 현재를 강조하는 게 눈길을 끈다. 신수진 예술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긍정''지향''쾌락'같은 부제는 시간과 관련해 심리적으로 가장 만족스런 조합을 의미한다. 즉 과거에 대한 긍정적 기억과 미래지향적 상상을 품고 지금 현재 즐거움을 누리는 게 최상이란 얘기다.  
전시장 벽면에 투사된 박제성 작가의 작품 '의식102-인위'. 오래된 시계를 8명의 각기 다른 사람이 각자 주관적으로 느끼는 1시간 동안 돌리는 과정을 담았다. 사진=이후남 기자

전시장 벽면에 투사된 박제성 작가의 작품 '의식102-인위'. 오래된 시계를 8명의 각기 다른 사람이 각자 주관적으로 느끼는 1시간 동안 돌리는 과정을 담았다. 사진=이후남 기자

엉거주춤한 자세의 사람, 아니 조각은 다니엘 피르망의 작품 '플로렌스(태도)'. 사진=이후남 기자

엉거주춤한 자세의 사람, 아니 조각은 다니엘 피르망의 작품 '플로렌스(태도)'. 사진=이후남 기자

 구체적인 전시작품이 모두 이같은 소주제의 함의를 깊이 파고드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시간 자체의 의미를 성찰하거나 때로는 시간이란 대주제에도 얽매이지 않는 듯 보인다. 그렇다고 작품의 본래 의도나 관람의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는다. 이번 전시장에 맞춤하게 설치된 유럽 작가 올리비에 랏시의 영상작품 '델타'도 그렇다. 직선과 굴절, 평면과 입체를 혼란시키는 시각적 효과가 흥미롭다. 하석준 작가의 '수도자-고통의 플랫폼'은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이 신선하다. 센서가 포착한 관람객의 모습이 2대의 대형 TV모니터에 기하학적으로 변형되어 실시간 그려진다. 
올리비에 랏시의 작품 '델타'. 입체적인 구조물에 평면적 영상을 투사해 깊이에 대한 감각을 교란시킨다. 사진=이후남 기자

올리비에 랏시의 작품 '델타'. 입체적인 구조물에 평면적 영상을 투사해 깊이에 대한 감각을 교란시킨다.사진=이후남 기자

 손영득 작가의 '외발자전거로 그리다'는 관람객 참여와 시간, 그리고 서울역이란 역사적 공간이 결합된 작품이다. 외발자전거의 페달을 관람객이 밟는 속도에 따라 서울역과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영상이 흐르는 속도가 달라진다. 황문정 작가의 '사이넘어사이_Y동' 역시 서울역과 관련이 있다. 과거 이 주변에 유명한 빈민촌 양동이 있었다는 기억을 가상의 유물 등을 통해 불러낸다. 
손영득 작가의 작품 '외발자전거로 그리다'. 페달을 밟는 속도에 따라 영상의 속도가 달라진다. 사진=이후남 기자

손영득 작가의 작품 '외발자전거로 그리다'. 페달을 밟는 속도에 따라 영상의 속도가 달라진다.사진=이후남 기자

 옛 서울역 건물의 특징을 따서 '3등대합실'로 불리는 공간에서는 배우 박정자의 낭독콘서트 '영영이별 영이별'(6월 15·16일 오후 8시)를 비롯해 퍼포먼스, 현대무용, 강연 등 11개 공연이 10주간 차례로 펼쳐진다. 그 중 7월에 열리는 팀 스푸터의 '망원경'은 고장난 망원경을 소재로 영상과 인형극이 결합된 작품이다. '백투더퓨처''사랑의 블랙홀'등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 상영은 오전 10시부터 하루 네 차례씩 상영작을 달리해 이어진다. 관람료 무료.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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