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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알맹이 있는 교육을 위하여

중앙일보 2017.05.18 02:46 종합 32면 지면보기
김기현서울대 교수·철학과

김기현서울대 교수·철학과

되돌아보니 교육이라는 직업에 몸을 담은 지 25년이 되었다. 대학원생으로 수업 조교와 시간강사를 하던 시기까지 더하면 족히 30년을 넘긴다. 우리의 교육 현실을 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더욱 어두워진다.
 

인재상의 논의가 제도에 대한 논의에 우선돼야
미래지향적 교육 비전 마련 작업이 시작되기를

치열한 경쟁 구조 속에서 어린 그리고 젊은 영혼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나쁜가에 관한 온갖 이야기가 들려온 지가 꽤 되었는데도 상황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교육의 문제는 청소년들의 삶의 질뿐 아니라 학부모들의 삶의 질마저 어지럽히며 고질적 사회문제가 되어 있다. 대선 때만 되면 교육 문제는 관심의 초점이 되고, 이번 대선에서도 후보들 사이의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교육부를 폐지할지, 대학 입시제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어떻게 사교육을 통제하고 공교육을 활성화할 것인지,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교육제도는 어때야 하는지 등 이전의 단골 메뉴가 다시 되풀이됐다.
 
그런데 교육에 대한 담론에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대선후보들의 공약과 토론에서 우리 아이들이 교실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성품으로 성장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보이지 않았다.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고 인격을 함양하여 미래시대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알맹이다. 그렇다면 교육에 대한 비전은 시대가 요청하는 지식과 기술은 무엇이며, 어떤 품성을 함양할 것인가를 우선적으로 성찰하고, 다음에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와 정책을 구성하는 순서로 만들어져 가야 한다. 교육 제도는 알맹이를 보호하기 위한 껍데기인데, 제도적 측면에만 논의를 집중하는 것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고, 우리 교육의 근본 문제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착시효과를 가져온다.
 
우리나라의 초·중등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학업에 할애함에도 불구하고 그 경쟁력은 의심스럽다. 간간이 청소년들의 학업성취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상위에 속한다는 통계가 뉴스로 보도되기는 하지만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암기 위주의 기계적 학습으로 달성한 높은 순위는 이후 고등교육의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한국 교육에 대한 칭송은 공허하게 들리고,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한 앨빈 토플러의 말이 우리의 귓전을 아프게 울린다. 지식경제에서 창조경제로 이어지는 세계적 조류에서 시작되어, 4차 산업혁명에 의하여 가속화되는 지식 생태계의 변화는 지식 습득보다 창의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의 교육은 아직도 과거에 갇혀 있다.
 
청소년들의 품성도 상호존중의 시민의식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간다. 추격경제에 의하여 기반이 마련된 무한경쟁 문화가 대학 입시 위주의 서열화된 교육 환경과 결합되어 우리의 아이들은 적자생존의 한가운데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유치원에서부터 선행 학습이 시작되고 있다는 슬픈 현실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협동하는 기회가 일찌감치 박탈되고 있음을 알려 준다. 자율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진로 탐색이라는 중·고등학교의 창의적 체험활동이 보완책으로 도입되었지만, 서열적 경쟁문화에 대한 해독제로서는 아직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의 교육 공간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이견을 합리적으로 조율하는 훈련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과도한 경쟁에 갇혀 꿈을 잃어가는 청소년들이 즐겁게 생활할 여건을 마련하고, 공동체 의식을 갖추어 사회에 활력을 제공하며, 창의성을 계발하여 국제경쟁력의 자양분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당면 과제다. 이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교육 관련 교과과정과 교사양성 체계 등을 포괄적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교육체계의 수정은 장기적 비전을 갖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단기적 효과에 연연하지 말고 뚝심 있게 국가의 근본을 다시 놓는 마음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시작하는 시점에 사람이 중심에 있는 교육의 비전을 마련하는 작업이 시작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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