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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자유한국당, 지금 밥그릇 싸움 할 땐가

중앙일보 2017.05.18 02:42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정하정치부 차장

김정하정치부 차장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뉴질랜드로 출국해 장기 외유에 나선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상 자신의 꿈은 달성됐기 때문에 권력 주변에 머물 이유가 없다는 게 퇴장의 변이다. 개인적으로 양 전 비서관과 일면식도 없을뿐더러 솔직히 그가 노무현 정부 때 기자실 폐쇄에 앞장섰던 이력 때문에 썩 좋은 인상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이번 처신만큼은 박수를 보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가 나중에 컴백할진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인생 최고의 순간에 주군의 성공을 위해 남들에게 자리를 비켜 주는 충성심만큼은 순도 100%짜리 아닌가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의 또 다른 핵심 측근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과 실세 소리를 들었던 최재성 전 의원도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선거 때 놀기만 했던 사람도 정권만 잡으면 자기 때문에 대통령이 당선된 양 떠들어 대면서 자리를 요구하는 게 정치권 생리다. 역대 정권마다 집권 초기에 논공행상 때문에 늘 잡음이 일었다. 그런데 이번엔 특등 공신들이 스스로 전리품을 포기한다니 어느 누가 자리 안 준다고 청와대에 불평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일들이 최근 한 지인들 카톡방에서 자유한국당의 행태와 맞물려 화제가 됐다. 한 후배는 “떠나는 문 대통령 측근과 어떻게든 자기희생은 피하려는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들을 비교해 보니 왜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고 정권이 교체됐는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양 전 비서관이 나중에 복귀를 하든 말든 간에 지금 자유한국당엔 책임지겠다고 쇼하는 사람조차 한 명도 없는 것 아니냐”고 개탄했다. 훨씬 노골적인 표현들도 나왔지만 언론 품위상 소개는 생략한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자유한국당 돌아가는 꼴이 가관이다. 마치 대선 패배를 기다렸다는 듯이 선거 다음날부터 차기 당권을 놓고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있다. 대선후보였던 분은 특정 계파를 겨냥해 “박근혜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었고, 박근혜 감옥 간 뒤 슬금슬금 기어 나와 당권이나 차지해 보려고 설치기 시작하는 자들”이라고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자 바퀴벌레 취급당한 한 중진이 공개회의에서 “탄핵 때 본인은 뭘 엄청난 일을 했냐. 제정신이냐. 낮술 한 거냐”고 받아쳤다. 본인 잘못만은 아니지만 대선 사상 최다 표차로 패배한 후보가 선거가 끝나자마자 당권 접수에 나선다는 것도 난센스고, 대선에 졌는데 당 지도부가 멀쩡하게 자리를 유지하면서 차기 당권까지 노리는 것도 기괴한 일이다. 여기다 일부 친박계 중진들도 당권도전설이 나돌고 있으니 전부 그 나물에 그 밥인 멤버들로 새 지도부를 뽑아본들 무슨 감동이 있을까.
 
자유한국당이 여당을 해오다 야당 신세로 내려앉은 건 19년 만의 일이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무거운 상황인식과 자기희생이 뒤따라야 재기할 수 있다. 대통령 최측근도 권력을 포기하는 판인데 야당 권력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밥그릇 싸움부터 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김정하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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