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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하늘만 바라보는 평창올림픽

중앙일보 2017.05.18 02:42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재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년 전 덜컥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을 맡은 게 화근이었다. 송승환 감독은 요즘 후회막급이라고 했다. 다 그놈의 날씨 때문이다. 가끔 악몽을 꾼다. 악몽의 내용은 늘 같다.
 

예상 체감온도 영하 20도
돈 없어 방한 대책 못 세워

‘2018년 2월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회 날이다. 걱정했던 대로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알펜시아 스타디움이 얼어붙었다. 급히 군 장병을 투입해 얼음을 깨고 좌석을 녹여보지만 어림없다. 3만5000석을 언제 다 치운단 말인가. 오후 8시인 개막식까진 1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관객들은 오후 6시면 입장을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빌었건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고대했던 이상 고온도 없었다. 되레 혹한에 폭설이다. 밤 아홉 시 예상 기온은 영하 12도, 풍속은 시속 10m다. 체감 온도는 풍속 1m당 1도씩 떨어질 것이다. 관객들은 영하 22도의 혹한에 꼼짝 않고 네 시간을 앉아 있어야 한다. 공연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만들면 뭐하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등 따뜻하고 배불러야 감동이고 탄성이고 나올 것 아닌가. 급기야 대통령 연설 중에 관객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자리를 뜬다. 외국 정상들도 북풍한설에 안절부절못한다. 참사도 이런 참사가 없다.’
 
송 감독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했다. 이게 다 돈 때문이다. 알펜시아 스타디움엔 지붕이 없다. 공사비를 아끼고 철거를 쉽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혹한에 무대책이 됐다. 좌석에 열선을 깔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수십억원의 예산이 감당 안 돼 접어야 했다. 방한 장비라도 제대로 나눠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달랑 무릎 담요 한 장과 손난로 하나가 고작이다. 역시 돈이 없어 1인당 1만6000원 안에서 준비해야 했다. 그러니 두툼한 전신 담요나 방한모, 방한 마스크 등은 엄두도 못 낸다.
 
송승환은 올 2월 9일 밤 8시에 알펜시아 스타디움에 나가봤다. 아니나 다를까. 영하 5~6도에 바람이 세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는 될 듯했다. 잔뜩 방한복을 껴입었지만 소용 없었다. 동행한 이병남 올림픽조직위 국장과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1시간을 넘어가니 얼어 죽을 것만 같았다”고 했다.
 
정부가 평창올림픽에 쓴 돈은 모두 13조원이다. 여기엔 물론 고속도로·고속철 건설비 같은 인프라 투자가 포함돼 있다. 그 많은 돈을 쓰면서 몇 십~몇 백억원이 없어 혹한에 무대책이 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우선 유치 당시보다 종목이 16개가 늘어난 게 컸다. 86개 종목이 102개로 늘면서 운용 인력·장비·시설비가 더 들어가게 됐다. 예정보다 4000억원 정도 늘었다. 그런데 돈을 마련할 길이 콱 막힌 것이다.
 
이런 데 쓰는 대회 운영비는 정부 지원을 안 받는다. 스포츠 토토와 입장권을 팔고, 기업 후원을 받아 조달하는 게 관례다. 기업들은 지금까지 8800억원을 후원했다. 목표액 9400억원의 93.6%다. 그런데 지난해 말 최순실 사태로 기업 후원금이 뚝 끊겼다. 재계 관계자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댔다가 그 곤욕을 치렀는데, 또 돈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올림픽조직위원회는 아끼고 아껴도 3000억원 정도가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다보니 당장 덜 급한 혹한 대책은 후순위로 밀렸다. 조직위는 궁여지책 끝에 지난달 공기업에 손을 벌렸다. 하지만 공기업들도 할 말은 있다. 공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예산을 사용하기 싫어 공기업 팔을 비트는 쉬운 방법을 쓰려고 한다”며 볼멘소리다.
 
국정 농단 사태와 대선 정국을 지나면서 쏟아지는 현안들로 평창올림픽은 거의 잊혀졌다. 올해 말부턴 본격적으로 운영비가 들어간다. 돈이 없으면 자원 봉사자도 쓸 수 없고, 임시 텐트 하나도 설치할 수 없다. 20만~150만원짜리 입장권을 사서 들어온 관객이 엄동설한에 발을 동동 굴러도 5만~6만원짜리 방한 키트 하나 나눠줄 수 없다. 이러다 평창이 나라의 명예를 높이긴커녕 악명만 날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신세가 된 평창,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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