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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람의 미주알고주알] 묻는 이세돌, 답하는 이창호

중앙일보 2017.05.18 00:01
※ '미주알고주알(바둑알)'은 바둑면에 쓰지 못한 시시콜콜한 취재 뒷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다루는 코너입니다. ‘일기’ 컨셉이라 긴장 풀고 편하게 쓸 작정입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사가 아닌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글입니다. 신문에서 쓰지 못한 B컷 사진과 취재 현장에서 찍은 셀카도 함께 올립니다. :-)   

 
⑦ 묻는 이세돌, 답하는 이창호…72번째 '양이(兩李) 대결' 
17일 서울 마장로 한국기원에서 맞붙은 이세돌(왼쪽) 9단과 이창호 9단. [사진 한국기원]

17일 서울 마장로 한국기원에서 맞붙은 이세돌(왼쪽) 9단과 이창호 9단. [사진 한국기원]

 
화창한 봄 날씨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던 17일. 서울 마장로 한국기원 1층 바둑TV 스튜디오에서는 흥미로운 대국이 열렸다. 바로 '돌부처' 이창호(42) 9단과 '센돌' 이세돌(34) 9단의 맞대결이다. 둘의 대결은 공식, 비공식 대국을 합해 72번째다.
 
이번에 두 선수가 맞붙게 된 '유안타증권배 특별대국'은 공식 시합이 아니고 일회성 이벤트다. 국내에서 주최한 첫 번째 세계대회인 동양증권배를 후원했던 동양증권이 사명을 유안타증권으로 바꾸고, 2013년 이후 중단됐던 온라인 대회를 재개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서울 마장로 한국기원 입구.

서울 마장로 한국기원 입구.

 
'돌부처'와 '센돌'. 승패를 떠나 두 기사가 만났다는 것만으로 바둑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나는 대국장을 취재하고 오랜만에 두 프로기사를 만나 뵙기 위해 한국기원으로 향했다. 한국기원에 다다르자, 입구에서 특별 대국을 안내하는 입간판을 만날 수 있었다. 
 
대국 시작하기 전에 이세돌(오른쪽) 9단과 함께. 

대국 시작하기 전에 이세돌(오른쪽) 9단과 함께.

 
바둑은 오후 2시 정각에 시작됐는데, 두 선수는 20분 전쯤 한국기원에 와서 대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일찌감치 바둑TV 스튜디오에 가서 선수들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대국 시작이 가까워지자 이세돌 9단이 먼저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만난 이세돌 9단이 반가워서 근황을 물었다. 이 9단은 "요즘 엄지를 들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고 말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 유세현장에서 기호 1번을 지지하는 포즈를 하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는 말. 지난 6일 SBS에서 방송된 당시 문재인 후보 찬조연설을 잘 봤다고 하자 "당시 프롬프터가 잘 보이지 않아서 힘들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대국을 시작하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기념 촬영을 하는 두 사람. 

대국을 시작하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기념 촬영을 하는 두 사람.

 
이날 대국은 바둑TV에서 생중계로 방송됐다. 바둑TV PD가 대국 시작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이창호 9단이 스튜디오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72번째 '양이(兩李) 대결'이 시작됐다.
 
이날 대국은 오후 2시부터 바둑TV에서 생중계됐다. 

이날 대국은 오후 2시부터 바둑TV에서 생중계됐다.

 
대국은 제한시간 20분, 초읽기 30초 3회의 속기로 진행됐다. 1시간 반 정도 시간이 지나자 승자와 패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결과는 233수 만에 이창호 9단의 흑 7집 반 승. 이날 대국은 시종일관 이창호 9단이 반면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이날 이창호 9단의 승리로 둘의 상대 전적은 이창호 9단의 39승 33패가 됐다. 
 
대국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기원 2층에서는 김성룡 9단의 공개 해설이 열렸다. 

대국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기원 2층에서는 김성룡 9단의 공개 해설이 열렸다.

 
바둑이 끝난 뒤에는 곧바로 '복기(復棋)'가 시작됐다. 사실 내가 바둑을 볼 때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건 복기 장면이다. 승패가 결정난 뒤에도 프로기사들의 복기는 치열하다. 복기 장면을 보면 대국자들이 어떤 수순에서 가장 고심했는지, 대국 후의 감정이 어떤지 등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복기하는 내내 이창호 9단에게 질문하는 이세돌(왼쪽) 9단.

복기하는 내내 이창호 9단에게 질문하는 이세돌(왼쪽) 9단.

 
이날도 예외 없이 한동안 복기가 진행됐다. 인상적이었던 건 복기하는 내내 이창호 9단에게 질문하는 이세돌 9단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두면 어때요?" "이 수는 어떨 거 같으세요?" 등등. 이창호 9단은 이세돌 9단의 질문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바둑판 위에 펼쳐보였다. 그러면 이세돌 9단이 또다시 생겨난 궁금증을 질문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00년대 초, 이세돌 9단은 이창호 9단에게 1인자 자리를 물려받았다. 어린 시절의 이세돌 9단에게 이창호 9단은 존경하는 선배 기사이자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을 것이다. 과거 이창호 9단을 향해 품었던 이러한 감정들이 지금 이세돌 9단의 마음 한 켠에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복기에 합류한 박정상(가운데) 9단. 

복기에 합류한 박정상(가운데) 9단.

 
복기는 계속 이어졌다. 얼마 뒤에는 바둑TV에서 이 대국을 해설한 박정상 9단이 복기에 합류했다. 박 9단도 해설을 하면서 궁금한 게 있었는지, 두 대국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세 사람의 복기는 주거니 받거니 한참 계속됐다.  
 
공개해설장에서 소감을 밝히는 두 대국자. 

공개해설장에서 소감을 밝히는 두 대국자.

 
대결은 두 대국자가 2층 공개해설장으로 올라가 청중에게 대국 소감을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세돌 9단은 "승패를 떠나서 또 한 번 배울 수 있었던 기회라서 즐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창호 9단도 "즐거웠던 대국"이라며 "앞으로도 좋은 바둑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 덕분에 한국 바둑은 오랜 세월 압도적인 세계 1위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창호 9단은 어느덧 불혹을 넘겼고, 이세돌 9단은 3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시간이 흘렀지만 두 선수에 대한 한국 바둑팬들의 애정과 추억은 여전하다. 두 선수의 73번째 대결은 언제 열릴까. 또 그날의 승자는 누가 될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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