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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규제와 음주운전 단속은 닮은꼴

중앙일보 2017.05.17 02:25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준호산업부 차장

최준호산업부 차장

늦은 밤 편도 4차선 대로를 막고 고기잡이 그물망처럼 음주운전 단속을 벌이는 장면. 우리에겐 너무도 익숙해 자연스럽게 여기지만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대신 미국에선 경찰이 유흥가에서 기다렸다가 술에 취한 채 운전대를 잡는 사람이나 좌우로 비틀거리며 달리는 차량을 따라가 단속한다.
 
한국 음주운전 단속이 언뜻 효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그물망식 음주운전 단속 저변에는 모든 운전자를 잠재적 음주운전 범죄자로 간주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물망식 음주운전 단속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음주운전 경력자를 찾는 일이 어렵지 않다. 국회의원이나 관료는 물론 19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예비후보 중에서도 음주운전 경력이 있을 정도다. 사고를 일으키지 않은 단순 음주운전이라면 최저 150만원의 벌금만 내면 된다. 반면 미국은 주(州)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소 1500만원은 내야 한다. 한국의 10배다. 단속은 치밀하지 않지만 걸리면 일벌백계(一罰百戒) 수준이다.
 
한국의 규제는 음주운전 단속과 닮은꼴이다. 소위 ‘포지티브(positive)’ 방식이라 법이 허용하는 것 외에는 모두 할 수 없다. 전형적 그물망 규제다. 그 속엔 허용하지 않는 모든 것은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전제가 숨어 있다. 15일 홍진기 창조인상 과학기술부문을 수상한 김진수 한국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단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유전자 가위 연구를 이끌고 있는 과학자다. 유전자 가위라는 것을 이용해 결함이 생긴 유전자를 잘라내고 대체해 인류의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획기적 기술이다. 동식물에 적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과거 황우석 사태 이후 강화된 엄격한 생명윤리법(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규제 때문에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임상시험과 치료에 제약이 많다. 인간 배아연구가 대표적이다. 유전병은 종류만 6000가지가 넘는데, 생명윤리법은 21개 유전병에 대해서만 배아연구를 허용한다. 그것도 인공수정 후 남은 냉동배아에 한해서다.
 
반면 미국·영국·중국 등은 제공자의 동의하에 폭넓은 연구를 허락하고 있다. 법으로 명시된 금지조항을 제외하고는 모든 걸 허용하는 소위 ‘네가티브(negative)’ 규제다.
 
유전자 가위는 ‘세상을 바꿀 기술’로 손꼽힌다. 생명공학의 혁명이라고까지 불린다. 그간 인류를 먹여 살려 온 정보기술(IT)의 바통을 이어받을 대표적 후보인 생명공학(BT)의 핵심 기술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세계 주요국들은 전쟁 수준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음주운전 단속이야 비용으로 따지면 기껏 교통체증과 짜증을 유발할 뿐이지만 규제는 과학과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아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김 단장의 마음은 급하다. “5년, 10년 후 규제가 풀린다고 해도 그때 뭔가를 하려 하면 이미 해외 경쟁 회사들이 다 차지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최준호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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