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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태어난 아기 알몸 그림 수정하라고?

중앙일보 2017.05.17 01:02 종합 22면 지면보기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로 창작의 자유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눈여겨 볼만한 전시회가 17일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열린다.
 

‘한국 만화 검열의 역사’ 전시회
이현세 ‘공포의 외인구단’ 인물들
눈밑 그늘 짙어 우울하다 지적 받기도

한국 만화 검열의 역사를 주제로 한 ‘빼앗긴 창작의 자유전’(한국만화영상진흥원 주관)이다. 전시는 한국 만화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는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된다.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 ‘검열의 시간’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만화 검열의 역사를 10년 단위로 시대순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 만화가 겪었던 사건들이 당시의 사회·정치적 상황을 알려주는 다양한 자료와 함께 전시된다.
 
두 번째 파트는 ‘빼앗긴 창작의 자유’다. 검열로 피해를 본 대표작들이 시사만화와 대중문화로 나뉘어 시대별로 전시된다. 시사만화 부문에서는 1909년 일제의 검열 때문에 먹칠 된 채로 ‘대한민보’에 발표됐던 이도영의 삽화에서부터 1950년 이승만 정권을 비판했던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 등 9개 작품이 전시된다.
 
대중만화부문에서는 주인공 이름을 변경해야 했던 박기준의 『두통이』에서부터 미성년자보호법 위반혐의로 6년간 법정 다툼을 치른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등이 공개된다. 이번에 공개될 작품은 총 40여점이다. 전시는 7월 19일까지. 일부 전시된 작품과 당시 검열당했던 이유를 소개한다.
 
◆이희재 『거미줄』
 
1982년 이희재는 만화 『거미줄』에서 갓 태어난 쌍둥이 형제를 알몸으로 그렸다고 당국으로부터 수정 요구를 받는다. 하지만 작가가 이를 거부했고, 결국 편집부에서 기저귀를 그려 넣었다.
 
◆장태산 『야수라 불리운 사나이』
 
“날로 먹는다”는 요즘 시쳇말이 검열의 이유가 된 작품도 있다. 1979년 장태산의 『야수라 불리운 사나이』에서 작가는 주인공의 공허한 감정을 어두운 빈 칸으로 그려넣었다. 이를 두고 당시 당국 심의실에서는 “날로 먹으려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해 지적을 받아야 했다.
 
◆김종래 『삼팔선』
 
1969년. 김종래의 『삼팔선』은 국군의 후퇴장면이 담고 있었다. 이때문에 “국군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심의에 걸렸다.
 
◆길창덕 『0점 동자』
 
1981년 길창덕의 『0점 동자』는 책 제목이 저속하다는 이유로 작품 연재가 조기 하차됐다. 하지만 정작 무엇이 저속하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박기정 『레슬러』
 
1965년 박기정 『레슬러』의 최초 표지는 당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표지 그림 속의 여자가 남자에게 물을 뿌린다는 이유였다.
 
◆이현세 『공포의 외인구단』
 
인물 표현도 함부로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1983년 이현세 작가는 『공포의 외인구단』을 그리며 인물의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 눈 밑 그늘을 진하게 그려넣었다. 이에 당국에선 “눈 밑 그늘이 짙어 우울하다”며 눈을 그려 놓도록 지적했다.
 
◆이상무 『비둘기 합창』
 
남녀칠세부동석도 검열의 기준이 되던 시절이었다. 1987년 이상무는 『비둘기 합창』에서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모여 자는 모습을 그려넣었다. 이를 두고서도 “큰 누나와 어린 남동생이 한 방에 자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지적을 받았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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