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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 못 드리지만…학생들 '마음' 선물은 빛났다

중앙일보 2017.05.15 17:53
서울 강남구 자곡초 학생들은 스승의 날인 15일 교사들에게 천사 날개를 배경으로 사진 찍어주기 선물을 준비했다. 천사 날개는 감사의 말을 담은 전교생의 포스트잇을 붙여 만들었다. 학생회가 아이디어를 내고 학교가 현수막과 필름값 등 10만원을 지원했다. 조문규 기자

서울 강남구 자곡초 학생들은 스승의 날인 15일 교사들에게 천사 날개를 배경으로 사진 찍어주기 선물을 준비했다. 천사 날개는 감사의 말을 담은 전교생의 포스트잇을 붙여 만들었다. 학생회가 아이디어를 내고 학교가 현수막과 필름값 등 10만원을 지원했다. 조문규 기자

스승의 날인 15일 아침 서울 강남구 자곡초등학교 이윤신(46·여) 교사는 학교 정문을 통과하다 놀라서 멈춰섰다. 본관으로 가는 통로 위에 20m 길이의 빨간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카펫 중간엔 현수막이 하나 걸렸는데 하늘색 바탕에 흰 글씨로 '선생님, 카네이션 길만 걷게 해드릴게요. 자곡 어린이 올림'이라 적혀 있었다. 
"선생님! 이리 오세요. 여기 날개 앞에서 서주세요. " 전교회장 황지민군(6학년)이 현수막 앞으로 안내했다. 현수막의 글귀 아래에 천사 날개가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깃털 하나하나가 메모지였고 한결같이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선생님 사랑해요.' '저희를 잘 가르쳐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 학교 전교생 568명의 감사 인사로 천사 날개를 만든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맞은 첫번 째 스승의 날
생화 카네이션 금지에 학생들 이색 아이디어
전교생 '감사' 쪽지에 교문 앞 작은음악회도
'천사 날개' 앞 기념 사진에 깜짝 동영상 선물도
교사들 "카네이션보다 더욱 뜻 깊고 고맙다" 감동

 
“어머 너희들이 준비 한 거야? 언제 이런 걸 다….
이 교사는 5학년 박민주양의 요청에 양 날개 가운데에 서서 양팔을 벌려 포즈를 취했다. 박양은 “선생님 웃으세요~ 하나둘 셋 김치~"하며 이 교사를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담았다. "너희들 덕분에 오늘 정말 행복한 하루를 선물 받은 것 같아. 너무 고맙고 너무 사랑해.” 이 교사는 황군과 박양을 껴안았다. 옆에 있던 장승필(5학년)군과 김보영(6학년)양은 이 과정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었다. 김양은 “선생님들 사진을 모아 영상으로 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자곡초 교사 60여 명은 이렇게 학생들의 '천사'가 됐다. 
스승의 날인 15일 오전 서울 자곡초 학생회 임원 학생들이 천사 날개를 배경으로 교사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조문규 기자  

스승의 날인 15일 오전 서울 자곡초 학생회 임원 학생들이 천사 날개를 배경으로 교사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조문규 기자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이 시행된 뒤 첫 번 째 맞은 스승의 날 전국 학교에선 예년과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지난해까진 학생 일부가 개인적으로 카네이션을 가져와 교사에게 달아주는 게 흔했다. 하지만 김영란법에 따라 학생·학부모가 개별적으로 교사에게 생화 카네이션을 전달하는 것이 금지됐다. 대신에 많은 학교가 자곡초처럼 색다른 방법으로 스승의 날을 기념했다. 
서울 자곡초의 한 교사가 스승의 날 기념 선물로 학생들에게 받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줄을 걸어 전시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서울 자곡초의 한 교사가 스승의 날 기념 선물로 학생들에게 받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줄을 걸어 전시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자곡초의 '천사 날개' 이벤트는 학생회가 아이디어를 냈다. 학교 측은 현수막 제작비, 날개에 붙일 포스트잇, 폴라로이드필름 구입비로 모두 10만원을 지원했다. 황군은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학생들끼리 아이디어를 모았다. 깜짝 선물을 하고 싶어 전교생이 이틀간 선생님들 몰래 포스트잇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2학년 담임 이지승 교사는 “아이들이 뭔가 준비하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 멋진 선물일 줄 상상도 못했다. 오늘 최고의 하루를 선물 받은 것 같아 너무 기분이 좋다”고 기뻐했다. 홍성철 교장은 “선생님들께서 카네이션 한송이보다 훨씬 의미 있고 값진 선물을 받은 것 같다”고 반겼다. 다른 교사들도 “형식적인 꽃 한송이보다 아이들이 이렇게 노력해 준비한 선물이어서 더 고맙고 마음에 와 닿는다. 정말 오늘은 우리가 주인공이 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송파구 풍성초에선 15일 스승의 날 출근하는 교사들 앞에서 학생들이 축하 연주회를 열었다. [사진 풍성초]

서울 송파구 풍성초에선 15일 스승의 날 출근하는 교사들 앞에서 학생들이 축하 연주회를 열었다. [사진 풍성초]

이밖에도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학교가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학생과 학교가 함께 스승의 날 행사를 만드는 곳이 많았다. 서울 송파구 풍성초는 이날 아침 '교문 앞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학생들이 바이올린·리코더로 ‘스승의 은혜’ 노래를 연주해 출근길 교사들에게 선물했다. 학생회가 아이디어를 내고 연주 할 학생들을 모집했다. 
또 종이로 접은 카네이션을 교사 한 명 한 명의 가슴에 달아줬다. 이와 별도로 외부 오케스트라를 섭외해 학교 강당에서 교사와 학생 모두가 관람하는 음악회도 마련했다. 지난해까진 스승의 날 행사는 반별로 하는 게 보통이었다. 이 학교 허윤호 교감은 “'함께 하는 음악여행' 콘셉트로 스승의 날을 준비했다.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추억을 만드는 것이 스승의 날을 되새기는데 더욱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세대'다운 이벤트도 곳곳에서 펼쳐졌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중에선 8분가량의 영상을 이날 내보냈다. 이 학교 학생회가 일주일간 전체 31개 학급을 돌며 학생 인터뷰를 영상으로 모았다. 영상이 나가는 순간 교사들은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그 시각 학생들은 교실에서 TV로 영상을 봤다. 자기 반 영상이 나올 때 아이들은 휴대폰을 꺼내 담임 선생님에게 '선생님! 감사합니다''사랑해요' '이제 착한 학생이 될 게요' 같은 문자를 보냈다. 
 
1학년 담임 황세정 교사는 “영상 속 우리 반 아이들이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말하는데 쉴새 없이 ‘감사합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교사가 돼 이렇게 멋진 하루는 처음이었다”고 행복해 했다. 전교회장 홍준혁(3학년)군은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수는 없지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학생들끼리 선생님 몰래 준비했다”고 소개했다.
 
김영란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교사와 행정직원들에게 생화 카네이션을 달아준 학교도 있다. 서울 용산구 한강중이 이런 사례로 학교 예산으로 전체 교원 숫자에 맞춰 카네이션 72송이를 준비했다. 이 꽃을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교사에게 달아주도록 했다. 이처럼 학교 예산으로 카네이션을 사는 것은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참여해 매해 열던 백일장과 사생대회도 올해는 스승의 날로 옮겨 열었다. 여난실 교감은 “학생들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 보는 것 또한 중요한 교육 중 하나다. 법을 지키면서도 스승의 날의 의미를 새기려고 고민하다 이런 방법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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