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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손에 대하여 말하다

중앙일보 2017.05.15 05:10
소설가 김훈이 '손에 대한 생각'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있다. 손민호 기자

소설가 김훈이 '손에 대한 생각'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있다. 손민호 기자

 손(手)에 대한 생각.
 14일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소설가 김훈(69)이 붙든 화두다. 김훈다운 화두라 할 수 있었다. 아직도 연필을 들고 원고지에 글을 쓰는 아날로그 작가가 손에 대한 생각을 밝힌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연필로 쓰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고지를 북북 찢어 버리지 못하고 지우개로 지운 다음 다시 쓴다.  

아날로그 작가 김훈 14일 저녁 제주도에서 '손에 대한 생각' 강연
"지금 인간은 세계와 직접 접촉이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어
손과 발은, 인간이 세계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유일한 수단
스스로 몸을 움직여 인간과 세계 사이의 장벽 걷어내야 해"

 이날 김훈의 강연은 서귀포시가 주최하고 ㈔제주올레가 주관한 ‘길을 묻다-우리 시대 지성들이 던지는 화두’라는 주제의 인문학 강연 첫 번째 순서였다. 오는 22일 도시건축가 김진애씨가 ‘왜 공부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는 등 모두 5차례 강연이 더 열릴 예정이다. 14일 오후 7시에 시작한 첫 강연에는 서귀포 시민 등 약 80명이 참석했다.  김훈은 “나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육체적 직접성을 말했는데 제주올레는 자전거라는 기구를 통하지 않고 오로지 발로 세상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인간적이다”이라고 밝히면서 강연을 열었다. 김훈 강연의 주요 대목을 요약해 소개한다.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열린 김훈 강연회장.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열린 김훈 강연회장.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 인간은 소외되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모순과 역설이 있다. 인간은 세계와 직접적으로 접촉하지 못하고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기나 미디어 매체를 통해 세계와 간접적으로 접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신과 세계의 직접성을 회복하고 인간의 육체성으로 삶을 메워야 한다는 인간의 욕망은 점점 더 살아날 것이다.  
 이는 아날로그적 삶에 대한 우리의 그리움일 것이다. 그러나 아날로그적 삶이 디지털적인 삶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아무리 자전거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무리 걷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자동차를 버리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걷기와 자전거, 그리고 인간의 육체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이 포기할 수 없는 영원한 꿈으로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의 또 하나의 방향은 육체성과 직접성을 향해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제주올레는 그러한 직접성의 최첨단에 서 있다.  
 나는 인간은 육체의 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연애도 육체적인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육체의 아날로그적 질서가 없으면 우리는 사랑의 느낌을 체험하기 어렵다. 인간의 정신과 인간의 육체가 플라토닉(platonic)한 것과 에로틱(erotic)한 것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구분하는 것은 아주 야만적이고 인간성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손과 발, 이 문제를 얘기해 보려고 한다. 발바닥으로 우리가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수만 년을 거슬러 올라 직립보행을 시작한 인류의 대열에 들어간다. 우리의 육체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관념이나 추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육체의 실존의 행동이다. 우리가 걸어갈 때 손발을 움직이는데 손발이 어떠한 리듬에 맞춰 흔들린다. 이 동작은 개나 말이 앞으로 진행할 때의 동작과 똑같다. 우리가 올레길을 걸어갈 때 거대한 포유류의 형제 속에 포함되는 것이다. 우리는 개나 말의 동작과 똑같은 동작으로 앞발과 뒷발을 흔들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걸어가는 것의 기쁨이다. 그리고 발바닥의 기쁨이다. 발바닥이 대지를 밟는 기쁨이다.
 손은 발보다 훨씬 섬세한 조직이다. 손은 쓰다듬고 공격하고 노동하고 복합적인 기능을 가진 도구다. 박물관에 가면 신석기 시대 돌도끼가 있다. 나는 돌도끼를 보고 눈물이 났다. 돌도끼는 원래 손잡이가 없다. 그런데 돌도끼를 자세히 보니 인간이 손으로 잡던 부분이 닳아서 반들반들했다. 석기시대에도 나 같은 놈이 있었던 것이다. 처 자식을 벌어 먹이려고 이걸 들고 얼마나 사냥을 했으면 손잡이 부분이 반들반들해졌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구석기시대의 사내와 동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못 잡고 돌아오는 저녁 사내의 쓸쓸함을 나는 상상했다. 그러니까 손은 정말 대단한 도구다. 인간을 직접 표현할 수 있는 신체의 일부다. 인간의 육체성, 인간의 삶과 인간이 갖고 있는 직접적 관계를 다 표현한다.  
 그런데 발바닥은 더하다. 발바닥을 보면 굳은살이 있다. 개 발바닥에도 굳은살이 있다. 개 발바닥을 들여다보면 개가 땅을 딛고 한평생을 돌아다닌 고통의 자취가 있다. 개 발바닥은 개의 역사다. 개의 『삼국사기』가 개 발바닥에 쓰여져 있는 것이다. 개가 땅을 밟고 다니는 것은 개의 아날로그적 삶의 완성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올레길을 걸어갈 때 우리의 삶이 관념이나 추상, 기호나 언어가 아니고 삶의 육질을 회복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가 주변과 직접적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 주변을 직접적으로 파악하거나 만지거나 주무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매스 미디어가 아니면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매스 미디어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벽이다. 매스미디어는 인간과 세계의 소통의 길이지만 인간과 세계를 차단하는 장벽도 된다. 아주 역설적인 존재다. 인간을 세계와 연결하면서도 인간이 세계를 직접 경험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벽이다. 여기에서 매스미디어는 언어, 책, 기호 이런 것들을 다 포함한다.  
 이러한 장벽을 어떻게 하면 걷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내가 글을 쓰는 하나의 욕망이다. 이룩할 수 없는 욕망인데 단념할 수도 없다. 인간과 환경, 인간과 세계 그 사이에서 개입하는 것들을 걷어내고 어떻게 직접적인 관계를 설정하는가. 나는 그런 세상, 그런 언어를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대개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걸 알지만 단념하기도 어렵다.  
 자연은 그 안에 인문적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은 영원한 물리적 법칙과 생물학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유물론적 상황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현상이 어떻게 인간을 위로해줄 수 있는가, 이는 인간이 영원히 대답할 수 없는 신비다. 
 나는 무의미한 자연, 도덕이나 윤리의 의미가 없는 자연에 매혹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참 난해한 질문인데, 아마도 그것은 우리 마음 안에 선천적으로 자연이 존재하기 때문에, 내부에 존재하는 자연이 외부에 존재하는 자연의 아름다움, 자연이 주는 위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차피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라는 것은 자연을 들여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자연에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만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은 신바람나는 일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할 때 개념이 등장한다. 그러나 나는 개념어가 개념에 해당하는 실체가 있는 것인지, 실체는 없고 개념만 있어 헛것으로만 존재하는 것에 대해 많은 회의가 있다. 개념어를 쓰지 말고 인간이 자기의 육체성과 일상의 구체성을 통과해 나온 언어와 감성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몸으로써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생각이다. 나의 손과 발과 제주올레, 그리고 걷기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나의 소망의 전부다.”  
강연이 끝난 뒤 방청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훈 작가. 

강연이 끝난 뒤 방청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훈 작가.

 
 정리=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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